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르완다 투트시족을 떼죽음으로 내몬 후투족, 테러리스트들과 인종차별주의자들…. 역사적으로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이 같은 참극의 원인이 다름 아닌 ‘공감’과 ‘협력’이었다고 말한다면 다분히 역설적으로 들리기 쉽다. 대다수가 ‘공감’과 ‘협력’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공감의 진화>에선 공감과 협력이 ‘우리’를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타인’을 구분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생쥐가 냄새를 맡아 자신의 편을 알아차리듯, 인간도 본능적으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알아본다. 공감 능력 덕분이다. 태어난 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아기의 모방 능력과 비슷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안면인식 세포, 타인의 행동을 보면 자신이 행동하지 않아도 뇌에서 먼저 반응하는 거울신경 세포 등을 보면 이 같은 공감 능력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인 폴 에얼릭은 심리학자 로버트 온스타인과 함께 인간의 공감과 협력 능력이 가져온 변화를 분석했다. 나약한 생물종에 불과했던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하고 지배적인 생물종이 된 이유가 공감과 협력 덕분이란 것이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이러한 능력은 자연과 흉폭한 동물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는 훌륭한 수단이 됐다. 고작 수백만명에 불과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지구 곳곳으로 흩어져 오늘날처럼 70억 인구로 늘고, 국가·종교·도시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현재 인류가 처한 위기를 가져온 것도 그것이다. 공감과 협력이 ‘우리’와 다른 ‘타인’을 만들어 갈등하고 대립하는 역사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우리’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힐 때 거대한 비극을 피할 수 없다. 저자는 실험 사례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피부색이 인간의 사고와 판단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른 종교를 가진 포로를 왜 고문하고 학대하는지, 선거에서 정치인들은 타 후보를 어떻게 비방하는지 사례를 제시해 이해를 돕는다.
‘지구인은 외줄 위에 서 있다. 공감을 확대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공감의 진화>는 현 인류가 처한 문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도 여전히 수렵채집 사회 수준에 머물러 ‘우리’와 ‘타인’ 논리에 지배당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또 궁극적으로 70억 지구인이 과연 한 가족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보면 허황될 수도 있겠지만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내린 결론은 결국 공감과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타인도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과 다른 문화가 가진 차이를 인정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록 실천을 위한 해결책은 요원하지만 인류학, 생물학, 뇌과학 등을 통해 정확한 분석을 제공한다는 점은 특별하다. 지연·혈연·학연으로 엮인 ‘우리’에 대한 문화가 유독 심한 한국 사회를 생각할 때 더욱 절절히 와닿는 책이다.
글·남형도 기자 2013.09.09
새로 나온 책
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지음
반비·16,000원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인도의 뭄바이를 통해 현대 도시의 빈곤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정교하고 정확한 기록을 담아낸 책이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의 기자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저자는 거대한 빈민촌 중의 한 마을인 ‘안나와디’를 4년간 겪었다. 저자는 안나와디의 빈민촌에서 가난과 불행의 모습을 드러내며, 나아가 세계화가 양산한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지 드러낸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
김홍선 지음
쌤앤파커스·13,500원
지난 20여 년간 디지털 기술의 진보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안랩 CEO 김홍선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변화한 모습과 다가올 새로운 미래의 코드를 읽어낸다.
우리 사회의 다방면에 걸쳐 일어난 ‘IT 빅뱅’의 단면들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문제점과 현안들에 대해 명쾌한 해법과 전망을 내놓는다. 개인의 삶과 기업의 비전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저자의 폭넓은 시야는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 대안을 만드는 데 현실적인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