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파주 교하 땅은 예전부터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조선 후기 광해군(1608~1623) 시절 천도(遷都)를 생각할 만큼 명당으로 쳤다. 심학산은 교하 벌판과 한강 하구를 굽어보는 야트막한 봉우리다. 산의 이름은 애초 심악(深岳)이었다고 한다. ‘물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자리’라는 뜻으로 홍수 때 한강이 범람하면 내려오는 물을 막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다가 숙종(1724~1776) 때 전설이 담겼다. 궁중에 있던 학 두 마리가 날아 도망갔는데, 이 산에서 찾았다 해서 ‘학을 찾은 산, 심학(尋鶴)’으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다. 학이 둥지를 틀 만큼 품격이 있는 산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파주출판단지 동쪽으로 산이 올려다 보인다. 참나무가 촘촘해 언뜻 봐도 학이 둥지를 틀 정도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또 심학산 앞 한강 어귀는 실제로 겨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차를 끌고 가면 약천사 주차장에 세워두는 편이 좋다. 내비게이션에 ‘심학산’을 입력하면 대개 약천사 주차장을 알려준다. 파주시청 홈페이지에서 길의 윤곽만을 대강 훑어본 뒤 차를 몰고 약천사로 향했다.

참나무 낙엽 깔린 호젓한 오솔길
지난 11월 26일 오후, 절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기상이 급변했다. 화창했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서쪽에서부터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태세였다. 길이 멀지 않아 딱히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터였다.
약천사 주차장 맞은편에는 이 절에서 가장 큰 법당인 지장보전이 있다. 약사여래대불 위편에 있는 대웅전은 소소한 규모다.
으레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가람의 한가운데에는 높이가 13미터나 되는 거대한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약사여래대불은 심학산을 등지고 한강 하구와 북녘을 지긋이 바라본다.

약사여래대불 옆으로 난 길을 오르자마자 각각 3곳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을 만났다. 심학산둘레길에서는 이런 이정표를 내내 만나게 된다. 왼편을 가리키는 ‘산마루가든 580미터’ 이정표를 따라가면 둘레길을 시계 방향으로 돌게 된다. 올라가는 방향으로 곧장 가면 심학산 정상이다. 오른편 ‘수투바위 650미터’를 택했다.
길은 푹신했다. 돌멩이나 나무데크 없는 순흙길이었다. 거기에 손바닥 만한 참나무 낙엽이 깔려 있어 더 푹신했다. 까무잡잡한 흙길 위로 살포시 내린 빛바랜 낙엽, 그리고 빗방울에 젖어 진갈색을 발하는 참나무 둥치가 아늑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수투바위는 둘레길 아래에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약 5분 정도 내려가니 큰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수투바위쉼터가 보였다.
심학산의 지표는 대부분 흙이지만 더러 이런 큰 바위가 놓여 있다.

한강 하구, 북녘땅 보이는 낙조전망대
수투바위 이정표에서 15분 정도 더 가면 낙조전망대가 나온다.
여기까지 오는 길의 풍경은 비슷하다. 낙엽을 떨군 참나무 아래로 더러 진달래와 철쭉의 앙상한 가지만이 숲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구간에 소나무는 없었다. 참나무 낙엽이 쌓여 있지 않았다면 을씨년스러운 길이 됐을 것이다. 날은 더욱 어두워지고 가는 빗방울은 진눈깨비가 돼 흩날렸다.
낙조전망대의 전망은 훌륭했다. 파주시는 시야가 트이는 자리에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눈에 보이는 산과 들판이 어느 지점인지 안내하는 해설판까지 부착해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해설판의 여러 지점 중 한가운데 있는 ‘봉성산(129미터)’이 눈에 띄었다.
한강과 마주한 야트막한 산으로 낙조전망대에서 보면 정면으로 보인다. 썰물 때 한강의 물이 빠져나가면 봉성산 동쪽 면과 맞부딪는 형국이다.

낙조전망대는 서쪽을 바라보고 설치돼 있다. 하지만 서쪽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일몰을 보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먹구름 아래 북녘땅이 보였다. 해설판에는 ‘북녘 개풍군이 보인다’고 했지만 맑은 날일 경우다. 개풍군 대신 두루미들이 날아와 월동한다는 한강 하구 갈대밭이 보였다. 아직 두루미는 오지 않았는지 들판이 휑했다.
심학산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쭉한 모양이며 정상은 서쪽의 중심에 솟아 있다. 낙조전망대는 서쪽 끝이다. 그러니까 약천사에서 시작해 이곳까지 길의 4분의 1 정도 되는 셈이다. 시간은 약 30분 걸렸다. 이정표·해설판의 설명이 딱 맞아떨어졌다.

길은 다시 산의 남면 7부 능선을 훑으며 이어졌다. 산 아래는 출판단지와 전원마을이 자리한다. 남쪽 길 역시 삼나무와 소나무 숲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교하배수지에서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교하배수지는 심학산 둘레길의 서쪽 끝으로 이 지점을 지나면 다시 북면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산행 시작점인 약천사까지 약 30분 걸린다.
길의 막바지 부분에서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만났다. 조림을 한 것처럼 키 큰 소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빽빽하게 도열해 있었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약천사에서 10여분 걸으면 정상 도착
약천사를 기점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10분 걸렸다. 눈비 때문에 제법 빨리 걸었지만, 사진 촬영을 하느라 조금 지체됐다. 약천사에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심학산의 주능선은 동쪽 교하배수지에서 정상, 그리고 서쪽 낙조전망대로 이어진다. 약천사에서 곧장 오르는 길은 지름길이며, 그래서 10여 분이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 전망이 한눈에 들어와 일산과 파주, 한강과 임진강까지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가 있는데, 관람용 팔각정자와 조망데크가 있어 구경하기 좋게 만들었다. 일몰 시간 아름다운 낙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전망대였다.
이때 거짓말처럼 진눈깨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물러나는가 싶더니 붉게 물들고 있는 서쪽 하늘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김포방향 하늘이 붉게 타고 있었다.
글과 사진·김영주(여행 칼럼니스트) 2013.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