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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지방에 사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네 근처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는 시위를 하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골프장을 건설하는 쪽에서 동원한 사람한테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말을 전하는 지인의 목소리에 사뭇 노기가 서려 있다.
“요즘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짓는 요소는 딱 두 가지야. 그걸 하면 손해냐, 이득이냐? 그것만 따지면 돼. 그 일을 하면 옳으냐, 그르냐? 그 일이 정말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가 아냐. 그저 돈 생기면 좋은 일이요, 돈 안 생기면 나쁜 일이야.”
젊은 사람도 아닌 노인이 맞았대서가 아니라, 지인은 근본적으로 ‘요즘 세상’에 절망하고 있었다.
지금 온 나라가 ‘수능 후유증’을 앓고 있다. 수능이 있기 전부터 우려했던 ‘첨단 디지털 방식의 부정 행위’가 그 후유증의 한 단면이다. 사립대학 혹은 사설 학원이 개최하는 대학입시 설명회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자식을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부모들로 가득 찼다. 수능 시험이 치러지는 날은 또 이 나라 모든 매스컴의 톱뉴스가 수능 관련 소식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대학 입시’에 온 나라가 들썩들썩해야 하는 것일까? 대학입시가 단순히 한 개인의 조용한 선택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대학입학시험이 치러지는 날 혹 나올 수 있는 대입 관련 뉴스거리로는 ‘오늘 무슨 무슨 시험문제가 있었는데, 온 국민이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재미있는 혹은 의미 있는 문제인 것 같다’는 정도. 그러니까 그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화두가 될 수 있는 시험문제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그런 세상을 언제쯤 살아볼 수 있을까?
텔레비전 화면에 언뜻 비치는, 휴대전화로 부정 행위를 저질렀다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솜털이 보송보송해 보인다. 아직 스물도 안 된 아이들로 하여금, 소지하기만 해도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놨는데도 휴대전화를 감추고 고사장으로 들어가도록 한 것은 과연 누구 잘못일까?
일차적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법을 잊었거나 몰랐을 아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그 아이들로 하여금 그 ‘무시무시한 엄포와 감시망’을 뚫고 휴대전화라는 ‘비장의 무기’를 소지하게 했던 것은 일부 언론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둥 핏대를 올리며 말하는 것과 달리 어쩌면 공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엄포와 감시망에 대한 공포보다 수능이라는 공포, 초,중,고는 물론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오직 ‘대학’ 그것도 ‘일류대’에 ‘올인’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공포, 채 스물이 되기 전의 그 아이들이 살아온 그 어느 한 날도 대학입시라는 괴물 아닌 괴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날 동안 쌓였던 그 공포들이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무모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제 자식이 아무리 교육부 방침대로 ‘착실하게’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시험장으로 갔다손 치더라도, 이 땅의 부모들이 ‘휴대전화 부정 행위’를 시도했던 아이들을 향해 제 자식과 견줘 분노하기보다 그 아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한 원인이 무엇인가, 이 땅의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나는 그 아이들 앞에 떳떳한가를 한 번쯤 묻기를 바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것이 이득이 나느냐 안 나느냐를 따지는 것처럼, 내가 혹 과정의 정당성보다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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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