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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한 학설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아름’에 대한 해석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비롯된 차이인데, 먼저 ‘아름’이 ‘알다(知)’는 뜻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알고있는 것’ 이라는 뜻이 아름답다는 말로 변했다고 말한다. 또 ‘아름’의 옛말에 ‘나(我)’라는 뜻이 있어 ‘나답다’ ‘나와 동일하게 여기다’라는 물아일치(物我一致)의 경지가 현재의 의미로 바뀌었다는 학설도 있다. 다른 하나는 ‘한 아름’ ‘아름드리’처럼 ‘아름’이 ‘양팔을 벌려 껴안은 둘레’를 의미하며 내 몸에 넉넉하게 들어오는 풍요로움이 지금의 뜻으로 의미가 넓어졌다는 견해다.
소송 서류와 법전 사이를 오가는 독서가 전부였던 내가 이런 어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름다운재단의 이사로 활동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안다는 것이나 나와의 동일시, 그리고 껴안는다는 의미가 모두 ‘나눔’의 마음씨와 어쩌면 그렇게 절묘하게 어울릴 수 있을까 가끔 감탄할 때가 있다.
나 혼자만을 생각하지 않고 주위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것이 나눔의 시작이다. 또 그 어려움을 나의 것으로 여겼다면 이미 이웃과 마음을 나눈 것이고, 양팔을 넉넉하게 벌려 어려운 이웃을 껴안는 것이 그 마음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제각각의 뜻에서 비롯됐을 아름다움의 의미가‘나눔’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인 것이다.
또 한 번의 겨울이 다가온다.
거리의 캐럴 소리와 백화점 앞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군고구마 냄새와 소담스러운 첫눈.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와 겨울의 거리 풍경을 만끽할 것이다. 그 설레임 속에서 연말연시의‘나눔’이란 장롱 속의 외투를 꺼내 입듯 계절적 반사조건으로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더러는 지난해 외투 주머니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묵은 영수증이나 메모 쪽지처럼, 나눔의 추억을 까맣게 잊고 지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눔은 그렇게 먼 곳에서 어렵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나눔은 겨울 거리의 캐럴과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군고구마 냄새까지 모든 사람이 유쾌한 마음으로 함께 느끼기 위한즐거움의 전염이다. 어떤 찬바람이 불어와도 모든 사람이 비슷한 온도의 추위를 체감하기 위한 따뜻함의 전염이다. 즐거움과 따뜻함을 나누는 소박함, 작은 나눔일수록 더욱 큰 울림으로 빛나는 이유도 그런 데에 있다.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에서‘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무엇에 그 정성을 쏟고 계신지? 혹 혼자만 잘살기 위한 재미에 정성을 쏟는 삶은 아니신지? 이 겨울을 정말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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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