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중턱에 있는 왕산중학교는 전교생이 18명입니다. 개교 이후 42년 동안 졸업한 학생 수는 1천3백명이 넘지만, 올해는 달랑 한 명입니다. 화전을 일구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이사가면서, 산골 마을엔 낡은 함석집들과 노인들만 남았기 때문이지요. 이상한 일은 산새같이 짹짹거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들면서 마을의 꽃밭도 적막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왁자지껄한 졸업식 날, 선생님들의 가슴마다 붉디붉은 카네이션이 피었습니다. 졸업식을 축하하러 각계각층에서 손님들도 오셨습니다. 강릉 상수원인 맑은 오봉댐을 돌아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교육청에서 교육장님도 오시고, 왕산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오시고, 왕산면 우체국장님, 면장님, 이장님, 총동창회장님도 속속 도착하십니다.
늘, 야구모자에 장화를 신고 다니시던 이장님도 이날은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고 오셨습니다. 교육장님과 선생님들은 얼굴이 하얗고, 이장님과 총동창회장님은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까맣습니다. 한 줄로 나란히 서 있으면 꼭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지만,
모두 엄숙한 차렷 자세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경례하고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졸업생은 단 한 명이지만 방송국 기자들도 왔습니다. 커다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감격스러운 이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교장 선생님께서 졸업장을 수여하시고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표창장과 상품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교육장, 강원도의회 의장, 강릉시장, 그리고 면장님, 우체국장님, 총동창회장님도 격려의 메시지와 상품을 주며 졸업생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노인정에서 허리 구부정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참석하셔서 마디 굵은 손으로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졸업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교장선생님께서 길고 긴 연설을 하셨습니다. 드디어 길고 긴 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길고 긴 겨울도 끝나고 새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가다 보니 교실 밖 양지 쪽에 아주 조그만 새싹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보니 너른 꽃밭에 달랑 하나 올라온, 이 조그맣고 여린 새싹을 축하하러 먼 우주에서도 각계각층의 손님들이 오셨더군요.
높고 푸른 하늘과 촉촉이 비를 머금은 흰 구름과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햇볕도 속속 참석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새싹은 어른들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새싹과 어린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미래를 향한 희망의 출발점이자 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봄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어린 새싹들이 두터운 흙 속에서 스스로 움트며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가난과 질병이라는 무거운 돌덩이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새싹은 없는지. 따돌림을 당해 그늘에 갇혀 혼자 울고 있는 새싹은 없는지, 주변을 살펴주시기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2월과 3월은 졸업식과 입학식이 많은 달입니다. 아직 새싹은 어리고 바람결은 조금 차갑지만, 카메라를 든 햇빛이 셔터를 반짝거리며 분주한 오늘은 우리나라의 ‘입춘’입니다.
글·유금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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