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전화 가입자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데이터가 폭주하는 초고속 인터넷은 망 증설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액제라서 수익을 늘릴 수 없다. 초고속 인터넷을 통한 부가수익은 포털 등 인터넷 업체가 독차지하고 있다. 망 사업자들끼리의 경쟁은 치열해 가격인하도 모자라 인터넷전화, 인터넷(IP)TV를 끼워 팔며 할인을 해 주고 여기에 더해 약정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동통신마저 데이터통신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통신사의 수익원이 사라지고 있다. 경쟁으로 인해 통신사 스스로 사용량만큼 요금을 받는 구조를 포기하고 데이터 정액제 상품을 출시했다. 이동통신만큼은 초고속 인터넷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했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한때 모바일 콘텐츠 유통망을 장악했던 통신사들은 스마트폰 플랫폼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이 시장도 내주고 말았다. 모바일 앱, 동영상, 책 등 각종 콘텐츠 유통망을 뺏겼으며 조만간 음원유통 시장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모바일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통신사의 문자 메시지 수익도 없애고 있다.
4G가 되면 음성통화 수익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사용자가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는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기기판매 수익도 얻을 수 없게 된다.
제조사들끼리는 성능으로 경쟁하게 되고 유통사들은 가격경쟁에 돌입하게 됨으로써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단말기 출고가를 부풀린 후 할인을 핑계로 약정을 걸어 사용자를 묶어 두던 방식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이동통신 분야에서 통신사에 남은 것은 매달 가져가는 사용요금뿐이다. 하지만 이 수익조차도 줄어들 위험에 놓였다. 통신사들이 구축해 놓은 망을 빌려서 재판매하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의 등장으로 요금인하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료도 없고 음성통화 요금 약정도 없이 데이터만 구매할 수 있는 상품도 등장했다. 음성통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대신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하는 젊은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다.
통신사의 미래는 어둡다. 인터넷 업체의 주가총액이 통신사 주가총액을 추월하고 있는 것은 이런 미래를 반영한 것이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유통망, 즉 플랫폼에 주력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리망 위주의 사업모델을 고수하는 한 통신사의 몰락은 가속화할 뿐이다. 통신사는 하루빨리 망 위주의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그중에서 통신사의 물리망 간소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이동통신 식별번호 통합 정책이다. 이 정책은 모든 이동통신 식별번호를 010으로 통합하겠다는 것이었다. 2G통신 시절에 통신사마다 달리 부여한 식별번호(011, 016, 017, 018, 019)가 브랜드화하면서 쏠림 현상이 생기자 독과점을 막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 한정된 번호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이동통신 식별번호를 010으로 단일화하면 016, 019의 자원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 모든 번호가 010으로 합쳐지면 휴대폰끼리는 식별번호 3자리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성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강제 번호통합을 위해 016, 019 번호의 3G 이동을 막는 바람에 식별번호와 2G가 연계되는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번호통합과 물리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정부의 번호통합 정책으로 인해 2G 사용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최근 한 통신사가 4G 서비스용 주파수 확보를 위해 2G 서비스를 중단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많은 피해를 본 것은 이 때문이다.
아직도 1천만 명 이상의 2G 사용자가 있다. 이들을 강제로 이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사업적인 이유로 번호를 바꿀 수 없는 사람도 많다. 통신사들은 2013년 말까지 기존 번호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기존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3G로 넘어갈 수 있는 상품을 출시했다. 휴대폰에는 010 번호가 부여되지만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통신사에서 기존의 번호로 바꾸어 서비스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품이다.
이 상품의 출현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선 기존 번호를 고수하는 사용자들이 2G 통신망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 상품 사용자가 많은 것은 같은 번호만 쓰게 해 주면 2G든 3G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술적으로 010 번호가 아니라도 3G는 물론 4G 사용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식별번호 통합과 2G망 연계정책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이다.
식별번호 통합을 추진할 당시의 명분은 이미 다 사라졌다. 번호이동 정책으로 인해 특정 업체에 대한 선호가 없어졌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번호를 기억해서 전화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세 자리 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큰 장점이 아니게 되었다. 한정된 번호 자원의 효율적 이용도 이슈가 아니다. 곧 010 번호도 모자라게 되어 또 다른 01X 번호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번호통합과 2G 통신방식을 연계했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2G망을 폐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강제로 2G망을 중단할 경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번호통합을 계속 추진하더라도 2G망과의 연계를 포기함으로써 2G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3G와 4G로 이동하게 만들 수 있다. 통신사는 2G망의 유지비를 줄일 수 있고 4G 사용자 확보에도 유리하다.
이런 여력을 플랫폼에 투자함으로써 물리망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가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통신사들도 통신료 인하에 꼭 부정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피해자 없는 번호통합 정책은 장기적인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그보다는 통신사가 물리망 위주의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번호통합 정책과 2G망 연계를 포기하면 통신비 인하도 가능하다. 관계 당국의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김인성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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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