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로 뒤숭숭했던 1994년 연말 무역실적 최종집계를 마친 통상산업부는 초상집이 됐다. 상승세가 유지되던 무역규모 국가순위가 싱가포르에 추월당해 한 단계 떨어져 13위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도 2.2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쪼그라들었다. 수출을 견인했던 반도체의 가격하락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외환위기의 전조임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당시 무역규모 6위까지 철옹성을 구축했던 상위권은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순서였다. 무역규모 6위였던 이탈리아는 국토면적은 남한의 3배, 인구수는 1.2배로 우리와 유사한 여건이었지만 무역규모에는 큰 격차가 있었다. 이탈리아 따라잡기는 당시 절망에 가까운 ‘희망사항’이었다.
2012년, 우리는 드디어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무역규모 1조달러를 초과하면서 올해는 국가별 순위에 있어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8위에 올라섰다. 한국이 20년도 못 되는 기간에 국가순위를 5등이나 끌어올린 것은 국민 모두 기뻐할 경사다.
우리나라 수출실적은 1964년에 처음으로 1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를 기념해 ‘수출의 날’이 제정됐고 1987년부터는 12월 5일로 날짜를 변경해 ‘무역의 날’로 확대 개편됐다. 올해 수출은 5천4백9억달러, 수입은 5천2백1억달러로 무역수지는 2백95억달러 흑자로 추정된다.
이는 국제경제 동반침체의 열악한 환경에서 얻어낸 소중한 성과다. 주요 교역상대인 미국은 재정절벽에 놓여 소비심리가 극히 위축됐고 유럽연합(EU) 각국은 자국 또는 회원국의 재정적자로 인한 경제 위축이 심각하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도 성장률 둔화의 영향으로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올해 수출의 효자상품은 석유제품이다. 원유를 전량 수입함에도 우수한 정제기술을 통해 석유제품을 중국, 동남아뿐만 아니라 남미까지 수출하고 있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 등 정유사 수출은 5백50억달러로 금년도 수출품목 중에서 최대실적이며 수출증가율도 지난해 대비 10.8퍼센트로 단연 1등이다.
수출경쟁에는 각국 정부가 직접 뛰어들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한다. 수출에 있어서 우리 정부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고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49차례나 해외순방에 나서면서 통상외교에 매진했다. 아세안국가에 대한 수출실적 증가와 중동지역의 대규모 원전공사 수주는 대통령 공이 컸다.
정부업무 중에서 지식경제부가 담당하는 수출지원은 정책고객 만족도가 아주 높다. 책상에 앉아서 보고서나 챙기고 일이 터진 후에 사후적 조치만 남발하는 무기력 행정과는 정반대로 지식경제부 수출지원은 현장 중심으로 뛰면서 돌출하는 장애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및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의 팀플레이 효율도 매우 높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의 신속한 확대는 적절했고 효과적이었다. 현재 미국과 아세안 등 8건의 FTA가 발효돼 45개국이 적용대상이며 터키 및 콜롬비아는 타결됐고 캐나다, 중국, 일본 등은 협상 진행 또는 준비 중이다. 한·미FTA는 올해 초 총선 정국의 복잡한 상황에서 야권의 폐기주장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무역협회 역할이 우리 무역 선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한덕수 무역협회장은 “FTA를 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무역협회를 이끌어서 기업이 한·미FTA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당당한 입장을 밝혔다.
무역협회뿐만 아니라 정부도 FTA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FTA 체결업무에 집중됐던 공무원 인력을 기업에 대한 FTA 활용지원 중심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무역규모 5억달러는 1964년에 달성됐으며, 2005년에는 5천억달러의 새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이로부터 6년 후인 작년(2011년)에는 2005년의 2배인 1조달러를 달성했다. 이제 무역규모 2조달러를 앞당기는 것이 새로운 과제다. 그러나 국제경제의 침체는 장기화되고 자국기업 보호성향은 강화되고 제품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을 통한 제품의 수월성을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조선, 자동차, 휴대전화, 석유제품 등에 몰려 있는 수출품목을 다각화하고 중국, 미국, EU 등에 과도하게 집중된 지역적 편중을 아프리카, 중남미, 아세안 등의 새로운 시장개척을 통해 다변화해야 한다.
수출품 가격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부담을 줄이고 노사협력을 강화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세금부담도 줄이고 환율은 안정적으로 관리해 환율변동 위험과 이를 헷지하기 위한 수수료 부담을 줄여야 한다. 전력체계도 합리적으로 운영해 환경 및 안전성을 우선하되 고비용 신재생에너지의 성급한 확대로 인한 전기료 부담 폭증이 없도록 해야 한다.
수출의 온기가 국내에도 퍼질 수 있도록 해외로 이전한 생산 시설의 국내 귀환을 촉진하고 해외 공사현장에서 우리 청년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세제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무역 2조달러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수출업체 기업경영과 ‘주식회사 대한민국’ 국가경영이 손을 맞잡고 힘차게 전진해야 한다.
글·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