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지적장애 2급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조금 부정확한 발음으로 누구에게나 반말을 합니다. 그는 숙련된 자전거 수리공입니다. 그의 자전거 수리점은 허름하고 아주 조그맣지만,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한적한 도로변에 있어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연둣빛 새싹이 움트는 봄이거나, 매미 울음소리 시원한 여름이거나, 거리가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물드는 가을, 언제나 기름 묻은 장갑을 끼고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띠고 성실하게 일합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며 그런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이란 행복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풍경 속에 행여 그가 보이지 않을라치면 두리번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자전거 수리를 하러 들르게 될 때면, 괜히 친밀감이 느껴져서 인사도 건네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보다 20년쯤 어려 보이지만 역시 나에게도 반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어눌한 반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도 적당히 반말로 이야기합니다.
마치 사이좋은 친구처럼 말입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이 자전거 수리점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주인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단골인 고객들도 많다고 합니다.
요즘은 자전거 동호회들도 있어 고객들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고객 중에는 대학교수도 있고, 박사도 있고, 각양 각계의 전문가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에 관한 한 자신이 최고 전문가라며 씨익~ 웃습니다. 어떨 때 보면,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 앞에서 특유의 함박웃음에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 반말로 자전거학(?)을 열변하는 걸 보면, 정말 어느 전문가 못지않은 자신감과 당당함이 엿보입니다. 전문가 대 전문가로서 손색이 전혀 없습니다.
멋진 K씨! 선천적으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그는 그의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이변을 봅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일수록 행복하지 않은 표정으로 사는 것을 볼 때가 그렇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추진동력같이 새로운 에너지가 휘몰아치는 수학능력시험의 계절, 대학원서 쓰기가 한창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LG전자 창사 54년 이래 처음으로 고졸출신 사장이 탄생했다고 대서특필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훈훈하다기보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어떤 단체의 장이 되는 데 학력이 필요한가 봅니다. OECD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1인당 GDP가 2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선진 경제국가로 불리고 있지만, 행복지수 순위는 34개국 중 26위로 거의 최하위라고 합니다. 어느덧 나는 환갑이 되었지만,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이든 간에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바빠도 인생에 대해 한번쯤은 고요히 생각해보아야 할 연말입니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온 우리, 한 해 잘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각자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당당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자전거 수리공 K씨의 환한 표정처럼 GDP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는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글·유금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