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보내면서 ‘천국에로 이르는 길’을 생각하다 문득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떠올렸다. 소설의 제목도 제목이지만 동상(銅像) 때문이기도 했다.
동상이라니?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어느 대학 교정에 전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대학에서는 대통령 리더십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초대 대통령부터 직전 대통령까지 모두의 동상을 같은 크기로 조성한 것인데, 직전 대통령의 동상만을 누군가가 사진으로 올리면서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도 동상의 문제는 매우 인상적으로 제시된다. 현역 대령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동상이나 천국의 문제가 쟁점이 된다.
조백헌은 한센병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지렛대를 안겨주고자 애쓰는 의지적 인물이다. 그는 이 섬에 천국을 세워야 한다는 신념이 남다를 뿐만 아니라 그 실천 행동 또한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록도의 한센병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일념으로 득량만 매립공사에 착수한다. 21개월에 걸친 공사 기간 동안 한센병환자들과 그는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자신의 의지와 현실 사이에서 정신적인 방황과 갈등 및 현실적 고난도 겪는다. 갈등의 요체는 자신의 순수 의지가 현실적으로 소통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병원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 원장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인물로 제시된다. 이전의 병원장들이 소록도에 천국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한센병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동상’ 세우기에 급급했던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이상욱이다. 조백헌 또한 자신의 명예욕이나 과시욕을 충족하고자 천국을 운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상욱은 회의의 시선을 보낸다.
이에 조백헌은 자신이 그 어떤 명예나 보답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동상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섬 사람들을 설득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워낙 동상의 그림자가 섬 사람들 마음속 깊이 드리워져 있던 탓이다.
지친 다리 쉬게 해주던 밴쿠버 ‘송덕 의자’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동상에 관한 의혹의 그림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오래전 여행길에서 그런 그림자를 벗어난 장면을 보고 환호한 적이 있다. 캐나다 밴쿠버 섬이었다. 밴쿠버에서 배를 타고 나나이모로 건너가 토피노까지 갔다가 다시 빅토리아까지 다닌 여정이었다.
공원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차를 멈추었다. 문득 벤치 등받이를 보니 동판에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 아마도 그 지역의 관리였나 보다. 성명과 생몰 연도가 적혀 있고, 작은 글씨로 그가 생전에 이 지역 사람들을 위해 했던 훌륭한 봉사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하! 일종의 송덕(頌德) 의자가 아닌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름을 남기는 방식, 혹은 남긴 이름을 기리는 방식은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밴쿠버 섬에서 본 송덕 의자는 가장 멋진 방식으로 여겨졌다. 지친 다리를 편히 쉬게 하는 의자가 되어주는 일은 가장 낮은 방식으로 가장 높게 송덕의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닐 수 없겠다. 송덕비나 동상은 대개 높은 방식을 택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높이 우러러보게 하지 않았던가. 낮은 데로 임한 그 의자의 주인은 아마도 천국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부활절 주간에 새삼 떠올렸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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