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간이역을 아는가. 간이역에 가본 적이 있는가. 어릴 적 간이역에서 놀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간이역이 있었다. 하루에 서너 번 기차가 지나갔다. 화물열차는 쉼 없이 묵중하게 지나갔고 객차는 잠시 섰다가 느리게 다음 역으로 움직여갔다.
우리 중 누구도 시계를 가진 아이는 없었지만 누구라도 기차가 언제쯤 지나가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간이역사 주변에서 놀다가 기차가 들어오기 전 우리는 큰 못을 철로 위에 올려놓고 먼발치에서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갈 때 튕겨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던 우리는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얼른 쫓아가 대못의 상태를 확인했다. 기대했던 대로 납작하게 눌려진 그것을 들고 나올 때의 뿌듯함이란. 변변한 스케이트를 마련할 수 없던 시절, 그렇게 썰매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톱밥난로가 있었다. 겨울철 간이역사 대합실의 톱밥난로는 추위로 얼어붙은 아이들에게는 은총의 불길에 값했다. 물론 간이역사를 통해 먼 길을 떠나거나 멀리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도 그랬으리라. 좀처럼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난로의 불길만 응시하던 이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
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 한줌
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문산에서 공덕까지 운행하는 경의선 열찻길이 새로 열린 이후 집에서 일터를 오가기가 편해졌다. 물론 내가 타고 내리는 역사 그 어디에서도 시인 곽재구가 노래하고 작가 임철우가 이야기했던 사평역의 분위기를,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놀던 고향 시골 역사의 풍경을 떠올릴 수는 없다.
아니, 떠올리려 하는 마음 자체가 우선 시대착오적일 터다. 그럼에도 나는 잘 포장된 대리석 타일 밑에서 혹시나 들릴지도 모를 옛 소리를 종종 떠올려보려 한다. 대학 시절 통기타를 들고 교외로 놀러갔다가 기타 줄을 퉁기며 함께 불렀던 노랫가락들이 어디엔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념에 젖어보기도 한다.
공덕에서 서강역, 홍대입구역을 지나 가좌역에 이르는 구간은 지하선로로 설비되었다. 예전 지상에 있던 철길이 거두어진 자리를 놓고 여러 곳에서 논의가 한창인 모양이다. 어떤 이들은 공원을 만들고 싶어 하고 어떤 이들은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기 싫어하는 눈치다. 또 어떤 이들은 책거리, 예술거리를 만들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벼룩시장을 만들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이 공간을 놓고 지역 운동을 하는 분들이나 예술 운동을 하는 분들, 생활문화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실험적인 상상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적지 않다. 메마르고 규격화된 도시적 삶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과연 좋은 일인가?
나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경의선 마포구 지상 선로의 새로운 모습을 통해 그렇게 꿈꾸는 이들이 줄어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미래의 꿈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유예하지 않고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거의 기찻길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기찻길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새로운 이야기 길을 열었으면 좋겠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