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오전 9시 세종시 호수공원 바로 북쪽의 ‘주말농장’.
평일인 데다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30여 명 이상이 나와 밭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윤철호(77)씨는 40대인 아들 두 명에게 작업 지시를 하며 밭고랑 사이를 분주히 왔다 갔다 했다. 한데 삼부자가 이랑에 비닐 씌우는 모습이 좀 엉성했다. “허허, 내가 시골 출신이지만 농사를 지어봤어야지.” 젊은 시절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다 세종시로 이사했다는 윤씨는 농사 초보다. 그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아들 덕수씨는 “손을 부지런히 놀리라”고 동생을 채근한다. 회사원인 덕수씨는 이날 휴가를 내 밭 가꾸기에 나섰다. 그는 “연로한 아버지께 힘든 일을 맡기기 곤란한 것 아니냐”며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올 것 같아 평일에 나왔다”고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올해로 두 해째 마련한 주말농장이 세종시 입주민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주말농장은 약 850가구에 분양됐는데, 경쟁률은 2 대 1에 육박했다.
이 주말농장의 전체 면적은 1만3,300평방미터로, 참여 가구 숫자가 단일 지역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4월 28일 농장이 처음 문을 연 날은 2천여 명이 쇄도해 말 그대로 농장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말농장은 세종시의 야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숨은 명소’가 될 전망이다.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작물을 가꾸러 오는 등 ‘밭 주인’들의 열정이 전업 농부의 그것을 무색케 한다.
농장 개장 이래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50대 주부 김모씨는 ‘아마추어 농부’ 그 이상을 목표로 세웠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식구들 먹을거리만큼은 내 손으로 길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가구당 12평방미터씩인 분양 규모가 양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김씨는 “세종시 외곽으로 농토를 아예 사려고 알아보는 중인데, 땅값이 올라서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밭을 일구느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던 김씨는 “어차피 농사를 할 생각이기 때문에 관리기 같은 농기계 구입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시의 ‘도시농업 전문가 과정’도 인기
세종시의 주말농장 열기는 최근 우리 사회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귀농·귀촌과도 맞물려 있다. 말하자면, 급속한 산업화에 대한 회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변의식의 변화가 먹을거리, 나아가 농업에 대한 인식 등을 바꾸었고, 주말농장에 대한 호응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가 주관하는 도시농업 전문가 과정에 등록한 주민 박병남(48)씨는 특히 이런 면에서 ‘이론 무장’이 철저했다. 그는 “공짜로 텃밭을 분양받아 작물을 기른다지만, 경제적으로 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큰 방 면적이 채 안 되는 손바닥만한 농토에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이며, 정성을 따지면 오히려 사먹는 게 이익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박씨는 주말농장을 통해 식구들에게 믿을 만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서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건 작물 가꾸기를 통한 치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나 공연을 보듯 흙을 만지고 작물을 가꾸면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세종시 주말농장의 밭 주인들은 농사 기술이나 농업 지식은 초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욕만큼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여기저기서 푹 썩은 거름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짙은’ 농사의지를 품은 가족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텃밭 분양에 당첨됐다는 한 주민은 “작물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5~6월에는 (경작자들 사이에) 경쟁열기도 한층 뜨겁게 달아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쑥쑥 자라 열매를 튼실하게 맺는 옆 밭의 작물들을 보고, 그에 못지않은 결실을 거두려 하는 주말 농부들의 의욕이 농장 전체에 넘쳐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첨단 도시 세종. 아이러니컬하게도 농부 마인드로 충만한 사람들이 유독 많은 곳이 또한 세종시이기도 하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