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우리와 친숙한 음식이다. 죽은 밥 대신 주식으로도 먹었지만 노인이나 환자들의 보양식, 아이들의 이유식으로도 먹이고 때로는 별미 음식, 식량이 부족할 때는 구황 음식의 역할도 했다.
죽은 다양하다. 조선시대 <요록(要錄)> <군학회등(群學會謄)> <규합총서(閨閤叢書)> <농정회요(農政會要)>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등 음식 관련 문헌에 등장하는 죽의 종류만 해도 40여 가지에 이를 정도이다.
죽은 주로 쌀로 쑤지만 율무·팥·콩·녹두 등 다른 곡물을 이용하기도 하고 곡물에 무·냉이·미나리·방풍·아욱·호박·콩나물 등 채소나 산나물을 섞어 쑤어 먹기도 했다. 잣·호두·은행·대추 등의 견과류와 우유·닭고기·소고기·홍합·전복·굴·미꾸라지 같은 동물성 식품과 매화의 꽃잎을 넣고 끓여 먹기도 했다.
죽은 왕실에서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즐겨온 음식이다. 조선시대 최대의 연회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圓行乙卯整理儀軌)>에 죽수라상이 올라 있고, <영조실록>에는 임금이 날씨가 추워졌다고 선전관으로 하여금 걸인들을 모아 선혜청에서 죽을 먹이게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 후기의 이덕무가 저술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서울 시녀(市女)들의 죽 파는 소리가 개 부르는 듯하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즈음에는 죽이 시중에서 판매될 정도로 흔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훌륭한 집의 며느리가 되려면 스무 가지 죽을 끓이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지겠는가.
그 많은 죽 중에서도 각종 물고기를 넣고 끓이는 어죽은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농촌에서 날이 더워지면 논밭 일을 일찍 마무리한 뒤 동네 근처의 개울가에 솥을 걸고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끓여 먹던 음식이 어죽이다. 어죽이라는 이름은 요즈음 유식한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이고 농민들은 그냥 ‘고기죽’이라고 했다.
<증보산림경제>에 붕어죽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큰 붕어를 창자를 빼내고 비늘째 푹 삶아 꺼내어 대나무 체에 내려 살을 발라내고 뼈와 껍질은 버리고 원 즙에다 멥쌀을 넣어 죽을 쑨다. 후추와 생강을 넣어 먹는다”고 했다.
시골의 어죽에는 붕어 외에도 피라미·모래무지·미꾸라지·꺽지·쏘가리·동자개(빠가사리)·메기·누치·꾸구리·치리 등 다양한 어종이 그날그날 잡히는 대로 들어간다. 충북의 옥천과 영동, 충남의 예산과 공주, 경남 함양, 전북 무주 등이 어죽으로 유명한데 지역에 따라 끓이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고 내용물도 차이가 난다.
어죽도 계속 진화한다. 충남 금산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인삼을 잘게 썰어 넣은 인삼어죽을 개발하여 보신 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어죽을 민물고기로만 끓이는 것은 아니다. 해안가 사람들은 바다생선으로도 끓여 먹는다. 비웃죽은 옛날부터 유명한데 <청장관전서>에 “청어죽(靑魚粥)이라 하여 바닷사람들이 식사로 대용하기도 한다”
는 구절이 나온다. 청어 외에도 대구·옥돔·감성돔·고등어·숭어·능성어 등이 어죽 재료로 흔히 사용된다. 평양의 향토 음식 평양어죽은 이름과는 달리 닭고기로 끓인 죽이다.
충북 영동의 가선식당, 충남 예산의 대흥식당과 금산의 저곡식당, 전북 무주의 금강식당이 어죽으로 오랜 세월 이름을 떨쳐온 집들이고, 바다 생선 어죽은 강원도 남애항의 대포횟집이 잘한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