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막국수 입장에서는 오늘날 자신의 신세가 원망스러울 것도 같다. 같은 메밀국수 처지인데도 냉면은 일단 이름이 점잖은 것은 물론 가격이나 사회적 지위가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귀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냉면도 고향인 평양에서는 흔히 ‘국수’로도 통했는데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서는 고서에도 나오는 냉면이라는 품격 있는 호칭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노는 물도 다르다. 냉면은 단골이 줄을 서는 도심 전문점의 주인공이거나 유명 갈비집과 고깃집의 식사 품목으로 대접받는 데 반해, 막국수는 강원도 산골이나 도시 변두리의 허름한 막국수집 주 메뉴이거나 기껏해야 닭갈비집의 서비스 식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격 차이는 더 심해서 막국수의 두 배를 더 받는 냉면도 허다한 실정이라 도무지 같은 재료로 만든 비슷한 음식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곡절이야 여럿 있겠지만 우선 막국수라는 명칭도 그 연유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막국수에는 ‘막사발’이나 ‘막말’처럼 이름 앞에 ‘아무렇게나 함부로’라는 의미의 ‘막’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다. 이렇게 막 지은 이름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는 난망한 것이 아닐까.
사실 막국수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주장이 존재한다. 우선 닥치는 대로 대충 해 먹는 국수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정해진 조리법이 있어서 정교하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아무 때나 집에 있는 재료로 거충거충 해 먹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집집이 면의 메밀 함량이나 육수, 고명이 다르다는 것인데 일리가 아주 없는 견해는 아니다.
두 번째는 순식간에 뽑아서 금방 먹어야 하는 국수라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는 의견이다. 메밀국수는 옆집에도 배달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뽑으면 바로 들러붙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하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메밀가루의 품질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설이다. 재래식으로 맷돌에 타서 껍질을 벗기던 시절에는 갈아진 메밀 알을 키로 까불러서 과피가 벗겨진 것과 벗겨지지 않은 것을 선별했다. 그때 잘 벗겨지지 않은 알을 따로 모아서 제분한 것을 막가루라 했는데 그것으로 만든 국수를 막국수라고 했다는 것이다. 식품사학자 고 이성우 교수 같은 이는 사리에 “식초, 겨자, 육수, 앙념간장을 쳐서 마구 먹으니 막국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막국수라는 이름 하나가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어느 것도 정성이 듬뿍 들어간 고급 음식이라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막국수가 막된 대접을 받게 된 현실에는 일부 식당들의 부실한 품질관리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다. 메밀 함량이 턱없이 낮은 면에 고추장과 설탕으로 범벅을 한 양념장을 얹어내는 막국수로는 미각이 날로 세련되어가는 고객을 결코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음식의 상업적 성공에도 좋은 브랜드 네이밍과 철저한 품질관리라는 경영원칙은 예외없이 적용된다. 옛날에는 구황작물로나 알았던 메밀이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메밀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루틴은 뇌졸중과 동맥경화의 예방은 물론 고혈압과 당뇨병 등에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막국수의 명가로는 강원도 춘천의 유포리막국수와 대룡산막국수, 고성의 백촌막국수, 인제의 남북면옥, 봉평의 현대막국수, 홍천의 장원막국수 등이 손꼽힌다. 경기도에서는 여주 천서리의 강계봉진막국수, 파주의 오두산막국수가 유명하고 서울에서는 방화동의 고성막국수에서 메밀 함량이 높은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