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 나무 우거진 숲길, 산길이 있고 강 따라 흐르고 바다를 벗 삼은 강변길, 해변길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길들 너머로 사람 살아가는 마을길이 있다. 숲길·산길·강변길·해변길을 걸을 땐 자연이 보내준 대가 없는 선물에 감탄하며 걷겠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마을길은 또 다른 감상을 준다.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시작된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어 부산의 중심, 부산의 종가라고 불리기도 하는 부산 동구에 위치한다. 차이나타운을 옆에 끼고 초량동의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골목길들을 숱한 이야기로 엮어낸다. ‘이바구’란 ‘이야기’의 부산 사투리. 이바구 길은 부산 사람들이 그 길에서 겪어낸 시대와 세월의 아프고 즐겁고 기쁘고 힘겹던 이야기를 길 따라 풍경 따라 조심조심 풀어낸다.
초량이바구길은 일제시대 부산항 개항의 역사를 시작으로 해방 후 피난민의 생활터로서의 1950~60년대, 산업이 일어서는 1970~80년대의 굴곡진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길이다. 시계가 멈추지 않는 이유로 파란만장했던 우리네 근현대사의 흔적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이끄는 힘 없이도 저 스스로 그렇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묻어나는 향수
박제처럼, 그저 지나간 시간 속이 앨범이나 추억으로 그치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로 인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눅진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1.5킬로미터의 길지 않은 길이건만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15킬로미터, 150킬로미터보다 더 길고 끈끈하다.
번잡한 부산역을 벗어나 이바구길로 들어서면서 바로 초량동의 옛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1922년 일제 때 부산 최초의 근대병원으로 쓰였던 백제병원 건물부터 부산 최초의 창고로 쓰였던 남선창고터,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라는 초량교회까지 최초라는 수식어는 이 길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현재의 삶 속에서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선 구 백제병원이나 아쉽게도 현대의 자본 논리에 밀려 건물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터와 담장을 남겨 지난 세월을 굽어보고 있는 남선창고터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간간이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부산 사람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깔 안 빼먹은 사람 없다.”
북쪽에서 오는 신선한 명태를 보관하는 등 당시 부산의 생선창고로 활약했던 탓에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던 남선창고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여전히 옛시절을 기억한다. 과거로 묻혔던 이야기는 남선창고터를 찾은 객으로 인해 다시 부활한다. 이야기에는 이토록 힘이 있다. 과거도 되살리고 추억도 끄집어낸다. 자꾸만 자꾸만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마을은 비단 현재에만 존재하지 않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들을 만나고 그때 그 시절을 되살린다.
조금 더 걸어가면 동네 벽에 설치한 담장 갤러리와 동구 인물사 담장을 만난다. 그 시절을 살았던 어른들에겐 골목의 과거를 상기시키고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은이들이나 외지인에겐 이런 시절도 있었다고 옛이야기 들려주는 장소다.
“여기 요 이쁜 아가씨가 나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사진을 가리키며 장난삼아 던진 말은 아주 농담만은 아니다. 스물두 살에 이곳으로 시집와 여든여섯이 된 지금까지 이곳에서 여전히 온몸으로 삶을 사는 이말남(86) 할머니의 주름진 웃음 속에서 희노애락의 세월을 짐작한다.
패널에 붙은 사진과 시를 보며 어렴풋이 그 시절 골목의 정서를 상상해본다. 더불어 역사 속에 나고 진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는 일은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시공간의 의미를 또 다른 의미로 재생한다.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는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학교이자 교회다. 세월을 잇는 징검다리이면서 여전히 생활의 중심에 들어앉아 있다. 현재를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과거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현재를 맞닥뜨리는 것. 이것이 사람 사는 골목을 걷는 맛이자 묘미다.
길은 고불고불 골목을 헤매며 아기자기한 길을 내다가도 문득 가파른 계단을 내놓기도 한다. 168계단 앞에서 문득 다리가 후들린다. 나는 마실삼아 놀러온 길이라지만 이 길을 밤낮으로 오갔을 사람들에게는 이 계단 역시 생활의 부분이었을 게다. 누군가는 물지게를 지고 날랐을 계단, 누군가는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렸을 계단, 누군가는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고사리손발 오므리고 다녔을 계단, 그 계단을 오르며 그 계단을 오르내렸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계단은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듯 한 번에 오르기엔 힘에 부친다. 다행히 몇 계단 오르지 않아 카페테리아를 갖춘 아담한 전망대가 발길을 쉬게 한다. 김민부전망대는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인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따 지었다. 그 시절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장소다. 확 트인 시야가 마음마저 훤하게 터준다.
동구와 중구, 남구 일대는 물론 부산역과 부산항, 공사 중인 북항대교와 영도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부산에 와서 이곳을 지나친다면 영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썩 훌륭한 전망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파란 바다와 그에 맞닿은 하늘이 주는 청량감,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하고 기분을 들뜨게 한다. 혼자만의 사색을 위한 곳으로도, 연인들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없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김민부전망대를 둘러가면 168계단도 금세다. 계단을 올라 마을의 당산을 지나 이바구공작소에 잠시 멈춘다. 이곳 역시 해방부터 6·25전쟁을 거쳐 월남 파병의 역사를 간직한 산복도로의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 전시 등을 통해 풀어낸다. 산의 배를 둘러 길을 낸 산복도로에서 사연 많은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숨 쉬어 가기도, 이바구길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좋은 곳이다.
“닭 두 마리를 처방하라” 장기려 박사의 일화 생생
공작소를 지나면 이내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고 박사의 뜻을 십분 살려 주민들의 복지시설을 들인 ‘더 나눔’ 기념관을 만난다. 국내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한 장기려 박사의 헌신적인 생애에 관한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못살던 시절 약 대신 “닭 두 마리를 처방하라”는 이야기는 요즘같이 팍팍한 시절에 마음을 울리는 유명한 일화다. 기념관 내에는 주민들을 위한 무료 운동 프로그램, 검진시스템, 작은 도서관 등이 마련되어 있다.
부산역을 오가는 333번 버스가 다니는 망양로에 있는 ‘유치환의 우체통’은 부산 동구에서 살고 진 유치환 시인을 기려 만들어졌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카페에서 차 한잔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엽서나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으면 6개월 후에 배달해준다.
혼자 온 여행자라면 나 자신에게 편지 한 통 써보는 일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테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곧 까꼬막 게스트하우스다. 언덕빼기에 있어 까꼬막이다. 까꼬막이라 전망도 좋다. 복층의 게스트하우스를 통째로 빌려쓸 수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2층 방에서 바라본 부산은 언뜻 그리스 산토리니를 닮은 것도 같고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나 아말피 해안을 떠올리게도 한다. 밤이 되자 왠지 이국적인 바닷가 마을,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며 부산에서의 시간여행을 지는 해를 얹은 검푸른 바다로 마무리한다. 부산 여행의 낭만루트 하나를 찾은 즐거움을 안고.
글과 사진·이송이(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