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장어는 ‘아나고’라는 일본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바닷장어다. 사실 장어류는 종류가 많아서 헷갈린다. 게다가 표준명과 통용되는 이름이 달라서 더욱 어렵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갯장어는 ‘하모’라는 일본 이름으로 더 잘 통하고 턱뼈가 없는 먹장어는 흔히 곰장어라고 부르는 종류이며, 뱀장어는 민물장어의 표준 이름이다.
장어류의 이름에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유난히 많이 남아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조상은 뱀을 닮은 모습 때문에 장어를 잘 먹지 않았는데, 그 시절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을 보고 식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05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업조사보고>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어류에 대한 기호 차이를 소개하고 있는데, 붕장어와 갯장어는 “한국인으로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을 정도다.
1908년에 나온 <한국수산지>도 붕장어가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나고 특히 남해안에서 많이 산출되는데 일부러 잡지는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난히 큰 서양 붕장어를 서양 사람들도 싫어했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문어, 대형 새우와 함께 붕장어를 ‘바다의 3대 괴물’로 지칭한 바 있다. 최근 영국의 한 낚시꾼은 길이 3미터에 무게가 무려 4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초대형 붕장어를 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붕장어는 지방에 따라 붕어지, 꾀장어, 벵찬, 장관, 참장어, 짱애, 진질장어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데 중국에서는 옆줄구멍이 별모양 같다 하여 싱캉지만[星康吉鰻] 또는 싱만[星鰻]이라고 한다. 콩거(conger)라는 영어 이름은 그리스어로 ‘구멍을 뚫는 고기’라는 뜻의 콩그로스(congros)에서 유래했고 아나고[穴子]라는 일본명 역시 모랫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습성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붕장어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모랫바닥과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나와 어린 물고기, 게, 새우 등을 습격해 잡아먹기 때문에 ‘바다의 갱’이라는 점잖지 않은 별명도 따라다닌다. 어쨌거나 장어류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 맛도 뛰어난 것이 붕장어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도 붕장어를 해대려(海大 )라 하며 “눈이 크고 배안이 묵색(墨色)으로 맛이 좋다”고 했다.
붕장어는 무덥고 쉬 지치는 여름철의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동맥경화·뇌졸중 등과 같은 생활습관병 예방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 A의 함량이 생선류 중 가장 많아 야맹증과 약시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체력보강에도 좋고 칼슘도 많아 골다공증과 노화 방지 등에도 효험이 있는 보신식품이다.
붕장어는 흔히 회로 먹지만 여름의 보양식으로는 구이나 탕이 더 윗길이다. 숯불에 소금을 뿌리거나 양념장을 발라 구운 붕장어를 마늘, 고추 등과 함께 깻잎에 싸먹으면 없던 입맛도 되살아난다. 붕장어를 토막 치고 콩나물과 부추 등을 듬뿍 넣어 끓인 장어탕은 추어탕에 전혀 뒤지지 않는 맛과 영양을 자랑한다. 아쉬운 것은 장어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붕장어의 명산지인 부산 기장 칠암리의 ‘꺼먹동네’는 붕장어구이로 오랜 세월 이름을 떨쳐온 식당이고, 여수 교동의 ‘7공주식당’은 구이도 잘하지만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장어탕으로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아온 집이다. 서울에서는 삼전동의 ‘갯돌흑산홍어바다장어’가 붕장어 소금구이를 간판 메뉴로 내걸고 있는 드문 곳이며, 잠원동의 ‘진동횟집 둔’에 가면 우거지를 듬뿍 넣고 끓여 독특한 향의 방아 잎을 첨가해 먹는 경상도식 장어탕을 맛볼 수 있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