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0여 년간 저술로 강연으로, 혹은 사적으로 긍정 코드의 노래를 고집스러울 만치 일관되게 불러왔다. 그랬더니 곧잘 반격의 질문들이 날아오기도 했다.
“스스로는 어떠신지요? 진짜 행복하세요? 책 보니까 고생도 많이 하셨던데, 혹시 자신이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세요?”
나의 답은 요지부동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지금도 행복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지도 못하면서 ‘행복’에 대해 말하고 다닌다면, 그게 바로 사기꾼이지 않겠어요?”
나는 행복에 대한 자신감을 영어 단어 ‘Happiness’에서 얻었다. 행복을 뜻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발생한다’는 뜻을 지닌 ‘Happen’이다.
이는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소유되거나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소유는 어려워도 발생은 쉽다. 발생은 발상의 전환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번 미소 지어보라. 큰 소리로 웃어보라.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보라. 다른 게 행복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행복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발생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이쯤에서 어떤 이들은 반문할지 모른다. “아, 누가 몰라서 그래? 망해봐, 웃음이 나오나. 회사에서 속상한 일 생겨봐, 애들이 속 썩여봐, 실패해봐, 어디 가서 안 좋은 얘기 들어봐, 표정이 굳어지는 걸 어떡해. 그런데도 웃으라고? 행복할 수 있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우리 삶에서는 불행의 요인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뇌, 생활고…. 그럼에도 한번 짚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 마음의 행복과 평화다. 이것을 깨뜨리는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막아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불행이라고 간주하는 것들도 관점을 바꿔서 보면 행복인 경우가 많다. 밥 러셀의 책 에서 한 농부가 우리의 행복을 위한 멘토가 되어준다.
농부는 자기 농장 안 호수를 관리해야 하는 게 늘 불평거리였다. 풀밭을 초토화하는 살찐 젖소들도 이만저만한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울타리를 치고 가축을 먹이는 일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농장을 매물로 내놓았다.
며칠 후 중개업자로부터 광고문을 확인해 달라며 농부에게 전화가 왔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이며 보드라운 목초가 쫙 깔린 곳. 깨끗한 호수로부터 자양분이 들어오고 가축은 무럭무럭 자라는 축복의 땅.” 이야기를 듣고 있던 농부가 말했다. “마음이 바뀌었소. 농장을 팔지 않겠소. 그 땅이 바로 내가 평생 찾던 땅이요.”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행복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 꽃은 꺾어서 화분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봄은 화분에 담을 수 없다. 누리는 것이 곧 지혜다. 장미 한 송이가 자신이 지닌 향기를 다 표현하는 데는 12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하나의 장미 향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12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얼마나 피상적으로 누리며, 순간적으로 사는가.
희망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절망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는 대개 우리가 사태를 건성으로, 피상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들에게 나는 설득 아닌 호소를 보내고 싶다.
“뒤집어 보세요. 희망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멀리 보세요. 희망이 아스라이 보일 것입니다. 폭넓게 보세요. 희망이 옆구리를 드러낼 것입니다. 꿰뚫어 보세요. 희망이 바닥에서 꿈틀거릴 것입니다.”
글·차동엽(신부,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