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곧잘 인용된다. 더운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시원한 그늘에서 온종일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의 처지가 겨울이 오자 뒤바뀐다. 더위에 땀 흘려 일한 개미는 추운 겨울 동안 비축해놓은 식량 덕분에 안락하게 지내나, 여름 내내 노래만 하던 베짱이는 추위에 양식이 없어 개미집에 구걸하러 온다는 내용이다.
이 우화는 세월과 더불어 풍자효과가 반감되면서 현대에는 다양한 패러디로 변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퐁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는 우선 이솝의 베짱이를 매미로 바꾼다. 추운 겨울날 굶주린 매미는 개미에게 곡식을 꾸어주면 그것에 대해 원금과 이자까지 갚겠다고 말한다. 천성적으로 빌려주는 데 인색한 개미가 여름 동안 일 안 하고 뭐 했느냐고 묻자, 일하는 그대가 지루하지 말라고 밤낮없이 노래를 했노라고 매미가 대답한다. 이 말에 개미는 덕분에 아주 좋았다고 비꼰 뒤, 그렇다면 이제 춤을 춰달라고 대꾸한다.
라퐁텐의 이 재해석이 20세기에 와서 또다시 변형된다. 그중 한 버전이다. 양식을 꾸러 온 베짱이를 돌려세우는 개미 아버지를 향해 개미 아들들이 나선다. 그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서 먹여주는 대신 춥고 지루한 겨울 동안 음악을 듣자는 것이다. 따뜻한 집에 먹을 것도 충분하지만, 사방은 꽁꽁 얼어붙어 아무 활동도 할 수 없으니 등 따시고 배부른 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어서다. 가난한 아버지 세대가 열심히 일해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그 자식들 세대는 의식주는 기본이고 여가와 오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교환가치와 더불어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된 해석이다. 그 이후에도 이 우화는 문화권에 따라 시대의 무늬를 입으며 거듭 변형되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도 널리 알려진 이솝우화다. 이 이야기에 담긴 풍자나 교훈도 이제 시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비록 느리지만 토끼와의 경주에서 마지막 순간에 결승점에 먼저 도달한 거북이는 이전 시대의 승리자일 뿐이다. 세계인을 상대로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보자면 느리나 꾸준한 거북이형은 2류의 재원에 불과하다. 21세기는 경쟁력 있는 인물상으로 토끼의 날쌔고 민첩한 행동에 거북이의 끈기를 모두 갖춘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선두에 나서서 조금도 경쟁자들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목적을 쟁취하는 인물이 진정 21세기형 인재일 테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우화를 경쟁지상주의적 해석과 달리 또 다르게 비틀 수도 있다. 갈수록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 언젠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백세를 훌쩍 넘기면서까지 활동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토끼와 거북이 상이 또 다르게 변형될 것이다. 결승점이 아주 멀든가, 너무 멀어서 무한대에 가깝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순위 정하는 일은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토끼가 중간에서 낮잠을 자든 거북이가 느릿느릿 쉴 새 없이 기어가든, 그것은 그저 그들의 타고난 천성에 따른 행동일뿐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천천히 걸어가니까 오래 걸을 수 있고, 빨리 뛰니까 금방 지쳐서 중간에 졸 수도 있는 것이 이치이다.
좀 늦게 도착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거북이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대로 행동했을 뿐이고, 토끼 또한 자신의 습성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여기서 낙오자와 승리자를 가리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뒤따라오는 토끼가 있어야 앞선 거북이가 있듯이, 토끼가 없다면 거북이의 일등도 없다. 두 주인공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물 유형이 아니겠는가?
더 이상적으로는 거북이가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기도 한다. 누구나 김연아가 될 수 없으며, 누구나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만약 모두가 이런 인물이 되려고 한다면, 한때 유행하던 말로 ‘소는 누가 키우나?’
글·전광호(부산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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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