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크고 작은 모임이나 언론매체 보도에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난과 비평, 고발의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는 것을 보면 걱정을 넘어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은 무자비한 비판을 퍼붓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남을 꾸짖던 사람이 정작 자신은 언행의 불일치를 저지르는 경우를 본다. 왜일까.
첫째, 자신의 행동 선택에 대한 자유는 책임지는 만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연습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둘째, 나쁜 행동이라도 자기에게는 관용하거나 핑계 대기가 일쑤면서, 남의 경우는 비판과 비난의 잣대로 보려 하기 때문이다.
셋째, 친구·친인척·이웃의 사소하고 작은 위반을 봐주는 것이 의리있고 대범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다.
넷째, 남들도 다 그러는데 이것쯤이야 하면서, 나만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융통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라도 이웃의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는 심리·정신적으로나 또는 정신의학적으로나 분명 미성숙한 태도이다.
이런 태도들은 이미 경계의 도를 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행위들이 얼마나 끔찍한 사회악의 씨앗이 되는지 깨달아야 하며, 결국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을 자주 되새겨야 한다.
여기에 고백하는 심정으로 나누고 싶은 나의 사례가 있다. 나는 수년째 집 근처 유료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패스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집 근처지만 통행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에 사는 친척이 자신을 우리의 동거인으로 전입해서 그 통행 혜택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대학교 재직 당시 한 출판사에서 교과서 채택 사례금 몇십만원을 가져왔던 이가 있었다. 그 사례금을 받는 대신 기대하지 않았던 여분의 이익을 포기해야만 했다.
또 80년대 우리 연구소 뒷길에 좌회전이 금지된 곳이 있었다. 나는 잘못된 교통 규정을 비난하면서 좌회전을 했다. 하루는 바로 그 지점에 경찰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좌회전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즉시 나의 차를 세웠고 나는 같은 구민끼리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했다. 경찰은 이번 한 번만 봐줄 테니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다시는 안 그런다고 약속했지만 그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계속 그 골목을 나오면 또 좌회전을 예사로 했다.
크고 작은 우리의 행동 선택들이 우리 사회와 후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우리는 적당히 봐주고, 남들이 다하니까, 친척이니까, 동창이니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하면서 부담없이 옳지 않은 선택을 예사로 한다.
크든 작든 옳지 않은 이득을 힘써 포기할 줄 알아야 성취 욕구가 충족돼 행복 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어른들이 역할모델이 되고 멘토가 되어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역할은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이 바쁘고 신나게 사는 일거리가 되고, 나아가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악이든 선이든 뿌린 대로 거두는 이치를 깨닫고 남을 향해 비판과 비난을 쏟아붓는 대신 저마다 개인행복은행을 개설하고 양심통장을 만들어 차곡차곡 쌓인 행복을 후세대에 물려주자.
김인자(서강대 명예교수·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