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재호 ‘흐르는 고양이’
김재호 작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환골탈태다.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됐다. 한강에 홀로 남겨진 어린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새로운 삶의 거처를 찾아 주몽재활원에 입소했다. 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장애인시설로 보낸 것이다.
김 작가는 뇌성마비로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언어장애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심한 장애로 양육을 포기했을 것이다.
주몽재활원에서 보낸 청소년 시절은 즐거웠다.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눈여겨본 생활교사가 장애인미술 모임인 화사랑을 알려주었고 그 모임에서 그림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주몽재활원에 있는 동안 특수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한국재활복지대학 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해 대학 생활을 했다. 전문대학이라서 미술학과가 없고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는 전공이 애니메이션학과였는데 그곳에서 2년 동안 학업이 미술 작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주몽재활원에서 그는 아주 성공한 원생이었다. 원생들이 부러워하는 롤모델이었다. 그는 대학생이 돼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도 주말이나 방학에는 주몽재활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만 18세가 되면 재활원을 퇴소해야 한다. 성인 시설로 이관되거나 장애인복지의 목표인 자립 생활을 위해 독립을 하게 된다. 그도 2004년 대학을 졸업한 후 자립을 준비했다. 이듬해 국민임대아파트에 당첨돼 드디어 자립의 꿈을 이루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아보겠다는 꿈에 잔뜩 부풀어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월세와 생활비 등 다달이 지출되는 기본적인 생활비 문제로 그의 삶은 생계와의 전쟁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업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자기 전공을 살려 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돈을 벌 수 없었기에 무조건 절약하다 보니 영양실조로 위염이 생겨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다.
그는 그 힘든 시기에도 그림을 놓지 않았다. 그의 본분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기에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결과 2005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서양화 부문에서 특선을 하며 자신감을 갖고 전문적인 미술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건강을 회복한 2008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가 됐다. 작업실이 생기자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던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더 이상 입주 작가로 연장될 수 없었던 2012년 이후 침체기에 빠졌다.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었지만 발표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두려웠지만 이런저런 장애인 미술 모임에 참여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버티었다.
참고 기다리자 살며시 희망이 찾아왔다. 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돼 전시회 비용 걱정 없이 전시회를 준비할 수 있었고 지금은 고인이 된 조각가 이원형 화백이 상금을 기탁해 운영되는 이원형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의 수상 소감에서 그의 삶의 고뇌와 작품에 대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하나둘 익혀가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취감입니다. 다른 작가님들은 누군가가 버팀목 역할을 해주시지만 저는 오로지 제 자신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기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림이 제 삶 자체입니다.”
물감을 통해 보이는 평등 세상
김 작가 그림의 소재는 물감이다. 그는 이것을 평등이라고 말한다. 물감을 통해 보이는 세상의 사물들을 그리면서 세상살이는 똑같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감은 한 가지 색이면서 다른 색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듯 그도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1980년생인 김 작가는 이제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도 그리움도 없다. 그에게는 그림이 그 모든 아픔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커다란 위안과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주 가끔 그림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자신의 작품이 인정을 받는다는 벅찬 기쁨에 자기 인생을 스스로 토닥거린다.
김 작가는 물감 튜브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선이 굵은데 그것이 강한 터치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흐르는 고양이’는 화폭 가득 고양이 얼굴인 고양이 자화상인데 고양이 코를 비롯해 고양이 얼굴에 일곱 개의 물감 튜브가 위에서 아래로 물감을 뿌리고 있다. 붉은색 계통이 많고 나머지는 노랑, 초록, 흰색 물감이기 때문에 고양이 얼굴 색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옆 모습이라서 눈이 하나만 보이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있어서 고양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배경이 파란색 보석이 박힌 벽처럼 보여 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흐르는 고양이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