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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바이오 코리아’로 ‘바이(buy) 코리아’를 복제한다>[/B][/U]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생약성분 비만조절 물질, 눈 흰 반점 치료기술, 조류독감 진단키트, 탄소나노튜브 상온합성기술, 초정밀회로 내 온도 차이를 극복한 신소재, 닭과 오골계의 생식세포를 한 몸에 지닌 ‘생식선 키메라’…,
올 한 해 국내 연구팀이 ‘세계 첫 개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세상에 내놓은 과학 성과물 가운데 일부다. 이들 연구성과가 모두 값진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백미를 꼽으라면 2004년 2월 전 세계를 흥분시킨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胚芽) 복제실험을 빼놓을 수 없다.
황 교수는 사람의 세포와 난자를 복제한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난치병 치료의 관건이 되는 줄기세포 배양은 그동안 동물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는 방법이 사용돼 왔다.
생명공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저 피터슨 교수는 18세기 산업혁명에 빗대 “이제 21세기는 한국이 생명공학의 싹을 틔워 인류 행복의 새 장이 열리게 됐다”며 황 교수의 업적을 평가했다. 전 세계의 주요 언론이 한국발 소식으로 이 뉴스를 다뤘고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황 교수를 선정했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묵묵히 연구에 몰두해온 황 교수의 지난 10여 년 세월이 있었다.
“우리 연구팀 모두 지난 10년 동안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어요. 3년째 휴일과 명절도 반납했죠. 젊은 연구원들은 1주일이 ‘월 화 수 목 금 금 금’으로 짜여 있다고 농담할 정도였으니까요.”
황 교수는 서울대 수의학과 연구진 40명을 비롯해 전국 13개 대학 184명의 분야별 연구진을 이끌고 있다. 그동안 국내 최초 시험관 송아지(1993년), 슈퍼젖소(1996년), 복제젖소와 복제한우(1999년) 실험에 성공했고 2003년에는 세계 최초로 광우병 내성을 가진 복제소와 장기이식용 무균돼지를 생산했다.
그 가운데 무균돼지 복제연구는 실용화 단계에 근접했다. 황 교수는 “몇 가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면 3~5년 안에 1형 당뇨환자(인슐린 의존성 환자)에게 무균돼지의 췌장세포 이식실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시장규모가 300조 원으로 예상되는 전 세계 2억 명의 당뇨병 환자들이 황 교수의 치료법에 따라 근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황 교수가 주도하는 ‘바이오(bio) 코리아’를 전폭 지원해 ‘바이(buy) 코리아’로 연결할 생각이다.
내년 한 해 140억 원을 들여 서울대 수의대 연구동에 황우석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개발비 125억 원을 지원해 무균 미니 복제돼지(30억 원)와 복제소(30억 원), 줄기세포(15억 원) 연구를 독려한다.
“사이언스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반드시 조국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미국 기업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친 황 교수의 말이다.
[U][B]<"수출시장에서 우리 유명 브랜드 덕도 좀 봤죠">[/B][/U]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수출 2,500억 달러’ 돌파는 올 한 해 회색빛 기운이 감돌던 한국경제에 뜬 무지개 같은 ‘사건’이었다. 그 무지개 일곱 빛깔 가운데 적어도 세 개는 중소기업이 색칠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올 상반기 수출액 1,232억9,800만 달러 가운데 중소기업 몫이 40%(477억4,200만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협회 관계자들은 “총량으로 보면 높은 비중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낮은 채산성, 해외 판로확보 등에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어려운 현실에서 이레전자는 낮은 채산성을 극복하기 위한 업종전환을 통해 단기간에 수출시장을 개척한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창사 14년째인 이레전자는 무선전화기·충전기 등을 제조하다 2000년 고부가가치 수출품목인 디스플레이 분야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업종전환 5년 만인 올해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1988년 미국의 한 전시회에서 보았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가 제 가슴을 하루 종일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했죠. 하지만 2000년 당시만 해도 국내 디지털 TV 시장 자체가 초기 단계여서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레전자는 2000년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로 시장공략을 시작한 이후 2001년 PDP TV, 2003년 LCD TV 시장진입 등 승승장구를 거듭해 왔다.
“역시 믿을 것은 기술력밖에 없습니다. 60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재산이지요.”
정 사장의 후덕해 보이는 웃음 뒤에도 고단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는 월세 10만 원짜리 5평 반지하 단칸방에서 중고 기계 2대를 놓고 이레전자를 시작해 5,800여 평 부지에 연매출 1억 달러의 중견기업을 키워냈다.
그의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1999년 무선전화기를 만들던 시절, 그는 허리에 전화기를 차고 헤드셋으로 통화할 수 있는 제품모형 하나를 달랑 들고 미국의 세계적 전화회사인 벨을 찾아갔다. 회로도면 한 장 없이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며 찾아온 낯선 동양인에게 회사의 문이 열릴 리 없었다. 회사 앞에서 3일 동안 기다린 끝에 결국 5분 동안의 면담이 허락됐다. “지금은 개발단계지만 6개월 내에 완제품을 보여드리겠다”는 정 사장의 말에 사장은 “당신의 열정을 사겠다”며 그 자리에서 5만 대를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이레전자의 프리폰이 탄생했고 벨과는 이후 70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런 그가 이제 디지털 TV를 들고 미국시장을 다시 찾아간다. 지난 6월 100만 달러를 투자해 캘리포니아주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는데 벌써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저 혼자 잘해서 가능했던 게 아닙니다. 기술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이미 우리나라 대기업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덕도 톡톡히 봤습니다. 이 힘을 그대로 실어 내년 한 해 1억5,000만 달러 수출도 자신 있습니다.”
[U][B]<“2005년은 FTA의 해 FTA국 신설로 적극 대비한다”>[/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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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0일 노무현 대통령과 리시엔룽 싱가포르 총리가 라오스의 비엔티엔에서 만나 양국 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함에 따라 한·싱가포르 FTA는 이르면 연내 서명과 내년 초 비준에 이어 내년 중반에는 발효된다.
우리나라는 칠레에 이어 두번째 FTA 체결로 1994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계기로 지구상에 불고 있는 ‘FTA바람’에 본격 합류했다.
이번 협정 체결로 한국은 자유무역항의 대명사격인 싱가포르를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싱가포르는 한국을 동북아의 연계 거점으로 삼을 수 있게 됐다.
세계는 바야흐로 지역간 무역협정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지난 5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지역간 무역협정 208건이 발효돼 있고 그 중 142건이 FTA다. 미국·중국·일본 가릴 것 없이 FTA 전선을 발 빠르게 확대하는 게 요즘의 대세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내년에는 세계 교역의 51%가 지역간 무역협정 체결국 사이에 이뤄진다고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은 FTA 체결이 글로벌 경쟁시대의 최우선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동북아 허브를 추진중인 한국과 동남아 허브를 추진중인 싱가포르 간의 이번 FTA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경제통합을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FTA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우리나라는 수세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통상교섭본부 내에서 FTA 협상의 실무책임을 맡아온 임영록 다자통상국장은 FTA의 중요성을 이렇게 누누이 강조했다.
“세계무역의 궁극적 무(無)관세화를 지향하는 WTO 협정이 존재함에도 양국간 협정인 FTA가 활발하게 추진되는 이유는 FTA가 다자간 협상의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고 자국의 특수성을 감안한 예외규정을 상호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FTA 확산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외교통상부는 통상교섭본부 안에 FTA국을 신설했다. 이로써 FTA를 총괄담당하는 통상교섭본부는 다자통상국·지역통상국·국제경제국 등 기존 3국에 FTA국을 추가해 4국 체제로 운영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부터 일본과의 FTA 협상을 시작했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는 내년 초부터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임 국장은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EU)·아세안이 우리 교역의 90%에 육박합니다. 때문에 5대 국가군과의 FTA 체결이 가장 큰 목표”라고 향후 대강의 로드맵을 밝혔다.
[U][B]<“개통 반년 만의 운행정착 유례 없답니다”>[/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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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갑신년은 대한민국이 ‘지상교통 시속 300km’를 달성한 원년(元年)이다. 12년을 준비해온 고속철도가 지난 4월1일 마침내 개통됐다. 멀게만 느껴지던 서울-부산이 2시간대의 ‘반나절 생활권’으로 다가섰다. 고속철도의 개통은 국민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출퇴근 거리가 비약적으로 확대된 것은 물론 주5일제와 맞물려 1박2일 코스로 전국 어디나 부담없이 떠날 수 있게 됐다. 또 고속철 정차역 주변으로 대학·연구소·공장이 몰려들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즐거운 비명이다.
황재경(42) KTX 기장은 4월1일 새벽 5시30분 서울발 부산행 첫 열차를 직접 조종해 한국 철도 역사의 새 장을 연 영광의 주인공이다.
“동료한테 미안하지요. 하지만 그야말로 ‘1호 열차’를 운전했으니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지요.”
“운이 좋아 발탁됐다”고 겸손해 하지만 황씨가 그간 ‘탈것’과 벌여온 과거사도 평범하지는 않다. 그 역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KTX 첫번째 운행열차의 기장에 발탁됐기 때문이다.
1981년 철도청에 입사해 기관사 경력만 18년이 넘는 그는 65만km 무사고 운행기록 보유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철도의 미래가 고속철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 그는 2001년 7월 KTX 기관사 공모에 지원해 선발됐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그는 3주간의 이론교육과 6주간의 시뮬레이터 교육 등을 이수하고 2002년 11월 처음으로 KTX 조종석에 앉아보았다고 한다.
시속 150km의 새마을호를 8년여 몰아왔지만 그가 처음 경험한 시속 300km는 크게 달랐다. KTX가 시속 300km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분8초. 거리로 치면 20km나 된다.
“막연히 시속 150km의 2배려니 했는데 체감속도는 그게 아니더군요. 워낙 속도가 빨라 눈에는 뿌옇게 흩어지는 잔상만 보였으니까요. 시시각각 컴퓨터가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 열차를 제어하느라 처음에는 식은땀을 닦아낼 여유도 없었어요. 화장실 가는 것도, 목이 마른데 물 마시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KTX 1호 기관사로 철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기쁘지만 그는 그만큼 책임감을 느낀다.
“개통 초기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은 KTX가 프랑스의 테제베(TGV)보다 훨씬 빨리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속철도의 미래가 밝다는 얘기겠죠. 무엇보다 세계 다섯번째 고속철 운행국의 기관사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U][B]<“고품질 쌀 ‘안성마춤’으로 소비자들 입맛 잡았죠”>[/B][/U]
[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쌀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로 개방 물결에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고품질 쌀 생산·유통’이었다. 농림부는 지난 3월 고품질 쌀 생산·유통체제를 본격 추진하기 위해 농림부 내에 차관보를 본부장으로 한 6개 실무팀 30명으로 운영되는 ‘고품질 쌀 생산유통대책추진본부’를 설치하고 농촌진흥청, 시·도(군), 농협, 농업기반공사 등에도 중앙과 지방에 684개소의 상황실을 운영해 기관간 유기적 협조 아래 고품질 쌀 생산·유통을 추진해 왔다.
농림부는 이러한 추진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 ‘2004 고품질 쌀 생산 최우수농가’를 선정했다. 주인공은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웅교리 유계형(48) 씨. 유씨가 생산한 쌀은 이미 시장에서도 최고 브랜드로 소문난 ‘안성마춤 쌀’이다.
유씨는 쌀 전업농으로 17ha(5만여 평)에 고품질 품종인 추청벼를 재배하면서 가을갈이, 규산질 비료 사용 및 볏짚 썰어넣기를 실천해 질소질 비료 사용량을 30% 이상 감축했으며, 농약 사용량도 50% 이상 감축하는 등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는 또 소규모 벼 재배농가에 우량 모를 싼 가격에 공급하는 등 우수 경영업체로도 평가받았다.
“겨울이면 호밀을 파종했다 볍씨를 뿌리기 한 달 전쯤 갈아엎습니다. 그러면 호밀이 썩으면서 땅의 유기질 함량이 높아지고 숨구멍이 많아지기 때문에 땅이 비옥해지죠. 땅이 좋아야 좋은 품질의 쌀이 나올 것 아닙니까?”
유씨는 올해 쌀농사로 1억5,000여 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유씨의 쌀은 다른 쌀에 비해 kg당 적게는 500원에서 많게는 5,000원까지 비싸게 팔리고 있다. 비료와 농약을 마구잡이로 쓰던 예전에 비해 생산량은 훨씬 줄었지만 소득은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유씨가 고품질 쌀 생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안성시의 지원도 컸다. 안성시는 2001년부터 읍면 단위별로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해 48개 단지(총 1,200ha)를 조성했다. 유씨는 바로 이 중 1개 단지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안성시는 단지조성 훨씬 이전인 1999년 친환경농법을 위한 쌀연구회를 조직해 농민들에게 교육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꾸준히 있었기에 ‘안성마춤 쌀’이 전국 최고 브랜드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시는 또 생산비 절감을 위해 공동육묘장을 설치·운영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농기계임대사업을 펼쳐 임대료의 50%를 보조하고 이를 매년 나누어 상환하도록 해 농가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유씨는 쌀협상 결과에 관계없이 쌀 수입증가와 수입쌀의 시장판매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고품질 쌀생산에 모든 농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 길은 품질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싼값의 외국산 쌀이 밀려들어와도 품질만 좋다면 소비자들은 다소 비싸더라도 꼭 우리 쌀을 찾으리라고 믿습니다.”
[U][B]<“내년에도 희망을 향해 쏠 겁니다”>[/B][/U]
[SET_IMAGE]7,original,left[/SET_IMAGE]지난 여름 아테네올림픽은 온 국민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은 더위도 잊고 밤잠도 미룬 채 TV 앞에 앉아 유승민 선수의 스매싱에, 김성현 선수의 활시위 하나에 울고 웃었다. 종합성적은 금메달 9개에 전체 9위. 1988년 서울올림픽 종합 4위 이후 7위-10위-12위로 내림세를 그리던 성적이 다시 1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시작되자 적지 않은 국민은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TV 카메라를 비롯해 아테네 현지를 생중계하던 상당수 취재진이 먼저 발길을 돌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82명의 장애인 선수가 13개 종목에 참가해 금메달 11개를 따내 종합 16위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런 메달 숫자나 순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도 사격 50m 3자세 부문 금메달리스트 허명숙 선수는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메달을 딴 뒤 오히려 “선수연금을 받게 되면 생활보호대상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는 소감을 밝혀 듣는 이를 안타깝게 했던 바로 그 선수다. 지난 11월9일 성북구 상월곡동 임대아파트 자택에서 만난 허 선수는 한결 안정된 표정이었다.
“요즘은 계속 연습하면서 지내요. 주위에서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난 게 가장 달라진 점이죠.”
그가 걱정하던 생활보호대상자 혜택은 어떻게 됐을까?
“일단 혜택을 모두 받고 있어요. 2년 뒤에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요.”
정부는 허 선수의 메달획득을 계기로 장애인선수연금(월 66만 원)을 받더라도 당장 생활보호지원(월 32만4,000원)에서 제외하지 않도록 지침을 바꿨다. 2년의 유예기간을 두되 3년째가 되더라도 다시 1년 동안은 무료의료급여 혜택을 받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생활보장과 임대식 사무관은 “일단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을 위해 유예기간을 두었지만 3년째가 되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뿐 아니라 일선 구청의 배려도 따뜻하다. 그는 얼마 전 구청의 도움으로 19층 맨 꼭대기 집에서 2층으로 이사했다.
“19층은 외풍이 세서 겨울이면 한낮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거든요. 이제 적어도 바람 걱정은 없어요.”
성북구청은 이사뿐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싱크대, 바람막이 새시와 붙박이장까지 설치해 줬다. 다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스물여덟 살 때 바깥나들이를 처음 해 봤다는 그는 요즘 얼마나 세상의 ‘외풍’을 느끼며 살까?
“저는 그래도 운동하면서 외국에도 나가 볼 수 있었잖아요? 저보다 더 어렵게 사는 분들도 많은데 저만 관심을 받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죠. 내년에는 더욱 운동에 전념할 생각이에요.”
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새로 산 소총을 만지며 웃어 보였다. 얼마나 닦고 닦았는지 반짝반짝 빛나는 그 총으로 그는 내년에도 새로운 희망을 겨냥할 것이다.
[U][B]<“평화 정착과 실질적 경협 활성화 기대 커”>[/B][/U]
[SET_IMAGE]8,original,right[/SET_IMAGE]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인 국도 7호선이 연말에 정식 개통돼 남북협력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계획을 세운 지 12년, 착공한 지 2년2개월 만이다. 정식 개통에 앞서 12월1일 임시개통한 고성 통일전망대~북고성 온정리에 이르는 4.17㎞의 남북 연결도로는 앞으로 남과 북이 평화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통로로서 큰 몫을 하게 된다.
그동안 임시로 마련한 비포장도로는 급경사와 노폭 협소 등으로 안전사고 위험이 있었지만, 남측 구간 2차선 포장도로가 조기 개통됨으로써 이 같은 불편이 모두 해소됐다. 한편 남측 도로와 연결되는 북측 구간에서도 군산분계선~금강산 온정리 구간 20㎞ 공사가 마무리 단계여서 경의선에 이어 남북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교통망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에 개통된 도로는 왕복 2차선에 지나지 않지만 서해안과 국토 중앙을 잇는 1번, 3번 국도와 함께 ‘화해의 시대’를 열어 나갈 기초를 닦은 것으로, 남북이 휴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상징적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원활한 수송과 안전운행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동해선 남북 도로연결의 실무를 진행해온 통일부 박흥렬 교류협력국장. 남북교류협력 계획을 수립·조정하고 남북 인적 물적 교류 및 협력사업을 승인하는 등 실무를 맡고 있는 그는 “이번에 완공된 동해선 북측 도로구간에 설치된 ‘속초 7Km’라는 이정표를 보면서 특히 가슴이 뭉클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로연결사업은 곧 통일과정의 시작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촉진하게 될 것입니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1시간30분, 고성에서 금강산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는 물류비 절감, 수송시간 단축 등 실질적인 경협활성화 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북측 지역을 통과하는 아시아 하이웨이로의 연결도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박 국장은 “남북 도로연결사업이 남북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도로연결사업 추진과정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사업이 비무장지대(DMZ)를 연결해야 하는 특수한 조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DMZ 안팎의 지뢰지대에 들어가 측량하는 과정에서 우리측 측량기사들이 선뜻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 군장병들이 나서서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이를 제거함으로써 사업은 초고속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밖에 북측과의 공사 협의 때도 남북간 기술규격과 용어 차이 등으로 상호 이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박 국장은 “정부는 향후 이 도로를 이용하는 인원과 물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도로이용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출입관리시설 등을 확충하고 출입절차도 최대한 간소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U][B]<“‘한류’의 핵심은 우리 문화의 우월성입니다”>[/B][/U]
[SET_IMAGE]9,original,left[/SET_IMAGE]1971년부터 매년 말 히트상품을 선정하는 <닛케이(日經) MJ>(옛 닛케이 유통신문)는 지난 12월8일 올해 일본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한류(韓流)’를 선정했다. <닛케이 MJ>는 ‘올 한 해 국경과 시간을 초월한 감동으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세대를 불문하고 마음도 몸도 파릇파릇하게 빛나고 싶다는 일본 국민의 마음이 <겨울연가>에 매달리게 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에서 ‘한류’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은 불과 5년여 전. 당시만 해도 잠시 부풀어 오르다 금세 꺼질 거품이라는 냉소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은 마침내 2004년 일본에 상륙해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다.
일본에 한류열풍을 주도한 것은 TV드라마 <겨울연가>(일본명 <겨울소나타>)였다. 일본열도를 휩쓴 <겨울연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주인공 ‘준상’ 역을 맡았던 배용준. 그는 일명 ‘욘사마’로 불리며 일약 일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비록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류열풍의 가장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 또 있다. 바로 <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호(47) PD다. 한국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본에서 그는 ‘준(準) 스타’다. 일본의 인기 드라마작가 구라모토 소오와 함께 작품을 만들 것을 약속했는가 하면, 교토통신은 그의 평전 <윤석호 감독의 작품세계>를 발간했다. 그는 또 지난 11월30일 창간 85주년을 맞은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가 주는 특별상인 ‘한·일 우호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1월24일 문화관광부 주최 ‘관광의 날 기념식’에서 그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외국관광객 유치 등 각종 드라마 관련 소품 판매로 4,225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외화획득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류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 측면에만 집중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
“대부분의 매체가 ‘얼마나 벌어들였느냐’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나 한류의 핵심은 우리 문화의 우월성입니다. 한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재외교포들이 자긍심을 갖게 됐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또 한류가 중요한 문화코드로 부각된 만큼 그 자체를 위한 기획이 많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품구상 때부터 국제적 감각이 필요한 것은 물론 연기자들도 이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참여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아시아권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은 심하게 말하면 ‘그들이 우리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죠. 한류가 한류(寒流)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좀더 내실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곧 그의 ‘사계절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이 될 <봄의 왈츠>(가제)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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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