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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가 김구 선생 집무실, 그 옆으로 국무위원실이 있었고 아래층에 식당 겸 의정원 회의실이 있었지.”
지난 14일 중국 충칭(重慶)시 롄화쯔 38호 ‘대한민국림시정부구지 진열관’. 40여 명의 생존 독립운동가와 유족 일행이 이곳을 찾았다. 학병을 탈출해 임시정부 경위대장을 지냈던 윤경빈 광복회 고문의 설명은 마치 어제 일을 기억하듯 거침이 없다.
독립운동가 2세들의 애틋한 눈길은 어느새 청사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있었다. 엄기남(69) 씨는 김구 선생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임시정부 선전부장을 지낸 일파 엄항섭 선생과 미당 연충효 선생의 막내아들.
“아버지가 활동하셨고 임시정부가 해방을 맞았던 이곳을 비로소 직접 보게 되니 감회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충칭은 역사적으로 중일전쟁 시기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로, 일본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는 가운데서도 ‘항일 정신’이 치열했던 도시다. 장제스 정부가 임시정부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현재 중국 정부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복원, 관리하는 데 적극적이다.
폭격과 재개발로 훼손된 이곳을 1994년 6월 독립기념관과 충칭시 대외인민우호협회가 복원협정을 체결해 1995년 8월11일 임정 청사를 거듭나게 했다. 충칭시는 이를 시급문물보호단위 65-38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2001년 독립기념관이 나서서 건물을 개수하고 전시 내용을 수정 보완해 오늘에 이른다.
11년째 롄화쯔 청사를 관리해온 이선자(李鮮子) 부관장은 “2002년 1만2,000여 명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는데, 지난해에는 7,600여 명으로 줄었다”며 “많은 분이 이곳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한국의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 작업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대표적 임정 청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은 상하이 노만구 마당로 청사. 김구 선생이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구상하고 준비한 곳이어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관람 코스로 사랑받는 이 청사는 1990년 상하이 노만구 문물보호단위 제174호로 지정받았으며 1993년 독립기념관과 삼성물산의 후원으로 원형을 복원한 뒤 2001년 확장·보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이후 일제 경찰의 체포를 피해 김구·이동녕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피난해 있던 자싱(嘉興)시 메이완(梅灣)가 유적 두 곳, 하이옌(海鹽)현 유적 한 곳도 문물보호단위(문화재)로 지정, 복원돼 최근 보수 공사를 마쳤다.
자싱시 문물보호관리소 관계자는 “메이완가 주변을 재개발해 오는 10월까지 한·중 우호의 거리, 미식거리, 고대문화거리 등 3대 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난처였던 하이옌현 남북호 주변 지역도 중국민속촌과 연계해 관광지로 개발될 전망이다.
[RIGHT] 최미랑 기자(국정브리핑)[/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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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