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광복 직후 한국민의 여가생활은 척박했다. 전 국민의 90% 이상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가생활을 할 만한 경제적 여유는 물론 먹고사는 문제에 마음조차 쪼들리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바캉스니 여름 휴가 같은 말은 대부분의 국민이 잘 알지도 못했고 거의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유희정신, ‘놀이에의 욕망’은 그 기원이 그렇게 얄팍한 것이 아니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인간은 여가를 즐기고 놀이에 몰두한다. 우리 국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해마다 여름이면 뚝섬과 광나루, 노들섬 유원지 등을 찾아 수영을 즐기는 식으로나마 여가문화가 존재했다. 당시 봄·가을 ‘창경원 나들이’와 함께 여름철 한강 물놀이는 그나마 여유가 있던 시민들의 귀한 여흥이었다.
해방 직후 우리가 입었던 수영복은 평상복의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깔깔하고 질긴 삼베 잠방이, 보통 ‘사루마다’로 불리던 검은색 무명 팬티가 남성들의 수영복을 대신했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강과 개울에서 알몸으로 멱을 즐겼다. 수영할 때만 입는 수영복의 존재는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풍속도를 광복 직후 우리의 수영복문화 전부로 단정하는 것은 오류다. 광복 전 한반도를 지배했던 일본은 당대의 선진국으로, 패션이나 스포츠 측면에서도 세계적 흐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각기우동’ 한 그릇이 5전이던 일제 말기, 40원짜리 일제 수영복을 사 입었던 조선의 유산계급은 어엿하게 존재했다.
우리나라 근대 수영의 시작을 1916년 원산 수영강습회로 볼 때 수영복의 역사 역시 일천한 것은 아니다. 1929년 9월1일 모 언론사 주최로 열린 제1회 전조선수영대회에서는 여성 수영선수들이 처음으로 그 자태를 드러냈다.
1920년대 초 무릎과 팔꿈치까지만 노출했던 수영복 패션은 1920년대 말부터 어깨와 겨드랑이, 넓적다리를 노출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여성 수영복 패션은 1920년대 말부터 ‘노출’과 ‘섹시함’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1회 전조선수영대회에 나왔던 여자 수영선수들이 어떤 수영복을 입었는지는 불행히 남아 있는 사진도 없고 기록으로도 알려져 있지 않다.
해방 후 한국 수영복 패션의 진정한 개화는 1961년부터다. 이 해 (주)한국샤크라인의 전신인 백화사는 ‘상어표 수영복’이라는 브랜드로 한국 수영복 시장의 첫 문을 열었다. 당대의 화두는 단연 ‘비키니’였다. 1946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루이 레아는 비키니라는 이름의 새로운 투피스 수영복을 발표했다.
분위기는 1960년대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1960년 브라이언 헤이랜드가 비키니를 주제로 부른 노래가 유행하고, 히피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비키니는 점차 대중화됐다. ‘상어표 비키니 수영복’은 바로 이 시점에 태어났다. 그 비키니 수영복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지만 한국 여성해방의 상징물, 요즘 말로 젊은이들의 새로운 코드로 해석되기도 했다.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B]남성 수영복까지 ‘섹시한 노출’ 추세[/B]
1960년대 후반에는 철도와 국도의 교통 연계가 쉬운 서해안으로 여름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천·만리포·몽산포 해수욕장의 개발이 이때 이뤄졌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전국을 1일생활권으로 만들었고,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서해안으로 집중되던 여가 행렬이 동해안의 여러 해수욕장으로 옮겨가게 됐다.
1970년대는 미니스커트와 핫팬츠, 버버리 코트 등이 패션계를 주도했다. 뭔가 크고 헐렁하며 거친 듯한 자연스러움이 1970년대 패션의 흐름이었다. 수영복도 디자인보다 소재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비키니는 더욱 대담해져 ‘미니 비키니’가 출현했고, 단순한 복고 스타일의 원피스 수영복이 시장을 휩쓸기도 했다.
1980년대는 새로운 시대사조로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수영복 패션에 영향을 미쳤다. 팝스타 마돈나가 속옷차림으로 무대에 선 뒤 란제리 같은 수영복이 등장해 수영복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의 해수욕장과 수영장에는 남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과감한 형태의 수영복이 등장했다. 브래지어는 가슴이 거의 드러날 정도로 날렵했고, 하의는 옆선을 가는 끈으로 이어 만든 ‘아슬아슬 패션’이 유행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과감한 노출’이었다.
1990년대 수영복 패션계에는 다시 복고 바람이 불었다. 세기말의 불안과 과거에 대한 향수의 결합이라는 고상한 해석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에코로지·에스닉룩 등 신소재와 신디자인이 개발됐다.
2000년대 수영복 패션의 테마는 ‘섹시함’과 ‘스포츠’다. 중요 부분만 간신히 가린 디자인이 여전히 강세다. 더 이상 노출하면 위험수위를 넘을 만큼 아찔한 비키니에 상·하의 한 벌씩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룩’이 유행하고 있다.
수영복 시장은 한 해 1,2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수영복을 비롯한 피서지 패션에도 영상세대의 취향이 반영되고 있고, 소비의 주체 역시 그들이다.
남성 수영복도 ‘섹시한 노출’이 주된 추세다. T자형 팬츠, 치부가 드러나듯 움푹 패인 팬츠, 오색 꽃무늬가 들어간 띠 같은 팬츠가 유행이다. 뒷부분을 파 궁둥이가 ‘핼끔’ 드러나게 한 팬츠까지 등장했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야할 수 없는’ 남성 수영복들이 전국 바닷가와 수영장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RIGHT]한기홍 객원기자[/RIGHT]
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