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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이른바 1970∼8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은사’ ‘지식인의 사표’로 불리는 리영희 선생의 삶과 사상을 담은 자서전이다. 그러나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여느 자서전과 달리 ‘사랑과 미움의 두 극단적 시대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지식인의 고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형식도 저자의 일방적 기술이 아니라 문학평론가 임헌영(64) 씨와의 ‘대화’ 형식으로 정리해 파격적이다.
리영희 선생의 일생은 말 그대로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은 1929년 평북 운산군 북진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한국해양대를 졸업 한 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군에 입대해 7년간 복무했다. 1957년부터 1971년까지 <합동통신> <조선일보> 등에서 주로 외신기자 생활을 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두 번씩이나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책을 펼쳐 들면 평생 아홉 번 연행되고 다섯 번 구속됐던 리영희 선생의 삶과 사상이 생생히 느껴진다. 서문에서 밝힌 대로 ‘사랑과 미움의 두 극단적 시대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지식인의 고뇌하는 모습’이며, 서글픈 현대사의 기록이다. 일제와 분단, 한국전쟁과 암울했던 군사독재를 거쳐 온 선생의 삶을 주요한 사건과 연관지으며 풀어 놓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현대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회고록의 통상적 형식인 1인칭 서술이 아니라 대화 형식을 따른 것은 개인사적 내용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질문자와의 비판적 토론 방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영희의 삶이 얽혀 있는 국내 상황과 시대정신, 20세기의 인류사적 격동과 가치를 그의 세계관과 함께 더듬지만, 더불어 이를 사상사적 담론으로 비판·평가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리영희 선생은 고희를 맞이한 2000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여파로 오른손과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겸 민족문제연구소장인 임헌영 씨가 그의 자서전 작업을 도왔다. 임씨가 리 선생의 구술을 녹취해 2년에 걸쳐 원고지 2,700매 분량으로 초고를 완성했다.
대담자는 구술자의 희미해진 기억을 복원하고 나름의 관점으로 구술자의 정신을 자극해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정교하게 약속된 대본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적당한 긴장감이 반복된다. 그래서 700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스로 “60% 저널리스트, 40% 아카데미션”이라고 말하는 리영희 선생은 무엇보다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생생하고 깊이 있게 제시한다. 자신의 글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대단한 이론이나 새로운 담론보다는 오직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RIGHT]최영재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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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