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새와 매미, 그리고 계곡물 소리가 효과음이 되고,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은 무대 장식이 된다.”
덕유산 자락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 오지 경남 거창이 ‘거창국제연극제’를 10년여째 개최하면서 국제적 연극 도시로 거듭난 가장 큰 이유다. 거창은 또 연극제가 열리는 때가 마침 피서철이어서 관람객들이 바캉스까지 동시에 즐기는 ‘문화 피서지’로도 인기가 높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거창은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연극인과 관람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떠들썩해진다. 고색창연한 서원과 물소리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는 정자 옆에 마련된 야외무대 주변의 풍광 또한 축제의 운치를 더한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사실 동네 연극제에서 출발했다. 1989년 10월의 일이다. 이때부터 97년까지는 거창지역 10개 극단만 참여해 실내 소극장에서 열린 산골의 작은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5회째인 1993년 2개 해외극단이 참여하면서 거창국제연극제로 확대됐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물론 국내에서도 별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숱한 대도시에 거창한 연극제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교통마저 불편한 거창에서 열리는 전혀 ‘거창하지 않은’ 연극제에 눈길을 줄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동네 연극제가 유수한 국제연극제로 발돋움하게 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연극은 실내에서 공연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연극제의 국제적 도약을 꿈꾸던 거창의 연극인들은 주변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연극공연의 무대이자 세트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수렁에 빠진 거창연극제를 극적으로 구해 낸 것은 바로 이 야외무대였다. 지금 거창에서는 큰 자갈을 쌓아올린 울타리가 둘러쳐진 돌담극장, 한국의 옛 정취가 그대로 배어 있는 서원 마당, 감나무 고목이 즐비한 나무그늘 아래 등 어느 곳이든 연극 무대가 된다. 덕유산·가야산·지리산 등 명산을 끼고 있는 거창의 빼어난 자연 풍광과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최대한 활용한 게 적중한 것이다.
연극무대를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실내에서 탁 트인 야외로 옮겨보자는 아이디어는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에게서 나왔다. 계기는 프랑스 배낭 여행이었다.
그는 1996년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국제연극제를 보러 갔다. 아비뇽은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인구 8만의 작은 도시다. 아비뇽에는 14세기 때 로마 교황이 거주했던 교황청과 도시를 에워싼 성벽, 그리고 고딕 건물들이 즐비한 중세 유럽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B]‘무대를 야외로’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세계화[/B]
전 세계에서 몰려온 500여 개의 극단은 아비뇽 거리와 건물 곳곳에 자리잡은 115곳의 야외무대에서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별도로 극장 건물을 지어 실내에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비뇽연극제는 이종일 위원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는 매년 7월 한 달간 열리는 연극제 수입으로 아비뇽 시민들이 거의 1년을 먹고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영철 거창국제연극제 홍보국장은 “아비뇽은 인구가 거창과 비슷하다. 거창의 고택과 누각·정자를 이용해 야외무대를 설치하면 관중의 호기심을 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거창 사람들은 거창국제연극제를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과 곧잘 비교한다. 국제연극제로 쑥쑥 자라고 있는 거창의 이 행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런 꿈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뀐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야외에 무대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실례로 거창의 대표적 관광지인 수승대 내 구연서원에 야외무대를 설치하려 했으나, 문중 어른들이 “신성한 서원에서 깽깽이를 울릴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연극제 관계자들은 문중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2년 동안 설득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98년 10회 연극제부터 구연서원을 비롯한 야외무대 두 곳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한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유서 깊은 서원과 풍광 좋은 계곡에 야외 무대가 설치됐다는 사실을 내세워 유치활동을 벌인 끝에 해외 극단 5개팀을 참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포함해 이 해에 국내 8개팀 등 13개팀이 참가함으로써 침체일로를 걷던 거창국제연극제의 활기가 되살아났다. 비록 오지에서 벌이는 축제지만 거창국제연극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거창군청도 이에 가세했다. 국·도비 등 1억8,000만 원을 처음으로 연극제에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올해로 17회째 행사를 치렀다. ‘감성의 숲에 꽃들이 피어나다’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7월29일부터 8월17일까지 수승대 일대 야외극장과 거창연극학교, 거창문화센터 무대 등에서 말 그대로 화려하게 펼쳐졌다. 참가 극단과 작품 수도 45개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특히 프랑스·독일·루마니아·러시아·우크라이나 등 유럽 지역과 페루·브라질 등 남미, 그리고 일본 등지의 극단들도 참가해 모두 199회의 공연을 가졌다.
지난해에는 10개 국가에서 모두 42개 극단이 참가, 150회 공연을 한 것에 비하면 양적·질적으로 풍성함을 더해 가고 있는 것이다. 관객 수도 11만3,060명에 달했다. 2003년 관객 6만4,000여 명에서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유료 입장권 발매 숫자만을 집계한 것이다. 무료 입장객을 포함하면 올해 목표였던 관객 15만명은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주최측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객석 점유율이 최고 140%를 넘은 공연도 있었다.
[B]“100만 찾는 관광·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날 것”[/B]
매년 휴가를 겸해 가족과 연극제를 보러 거창에 들른다는 강효선(42) 씨는 “다른 피서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겨움이 있는데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됨을 경험한다”며 “국내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과 문화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아비뇽 페스티벌과 비교해 비록 역사는 짧지만 그곳 못지않은 특징과 개성이 있다.
피서철에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는 이제 10만 이상의 관객이 몰리고 있다. 또 연극뿐 아니라 마당극과 악극·국악 뮤지컬 등으로 점차 장르를 넓히면서 공연예술 종합 페스티벌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거창국제연극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은행나무 카페’. 수령 300년이 넘는 고목나무 아래 마련된 ‘카페’라는 이름의 야외 공간은 배우와 관객, 연극계 인사들이 직접 얼굴과 살을 맞대고 친교를 다지는 만남의 장이다. 즉석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며 배우들과 무대에서보다 더 뜨거운 뒤풀이를 통해 연극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평가 결과 지난해 거창국제연극제는 A등급이었다. 여기서 A등급은 ‘적극 지원해야 할 사업’이다. 연구원은 천혜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성공한 지역축제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여기에 거창군은 물론 경상남도 등 자치단체의 지원이 본격화하면서 더 많은 힘을 보탰다. 거창군은 여섯 곳의 야외극장을 2001년 5억여 원을 들여 새로 만들었다. 내친 김에 거창군은 2007년까지 58억 원을 투입해 미개발된 수승대 관광지 내 1만3,000평에 펜션단지·야영장·취사장·주차장 등을 만들어 연극촌 조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B]150억 원의 부가가치 창출[/B]
소속 자치단체의 지원금도 2000년 2억4,700만 원에서 올해 6억5,000만 원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해외 참가팀도 국제행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관람객도 1999년 2만8,625명에서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거창국제연극제로 인한 거창지역의 경제적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경남발전연구원 분석 결과 2004년 거창국제연극제의 경제 효과는 입장료·주차료 등 직접 수입은 2억5,000여 만 원에 불과하지만, 숙박·음식 등 관련 수입을 감안하면 모두 150억 원 정도의 파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창군은 이를 발판으로 연극제 관객 100만 시대를 열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08년까지 거창읍 김천리 일대에 연극문화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이곳에 국제연극문화센터를 건립하고, KIFT문화거리와 아비뇽 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말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수승대 문화관광 상품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이미 거창국제연극제를 통해 ‘세계적 문화관광지’의 기초를 다졌다고 판단하고 있는 거창군은 위천면 수승대에 연극공연 전용 실내극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현재 부지 7,000여 평에 지상 3층, 연건평 2,100평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1층은 객석 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만들고, 2층에는 전시장·세미나장·휴식공간, 3층에는 세계 연극박물관 등을 만들게 된다.
사계절 운영 계획인 주말 프로그램은 계절별로 테마를 달리한다. 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축제, 여름에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며, 가을에는 농촌 체험, 겨울에는 가족이 테마가 된다. 월별로도 주제를 따로 정한다. 예컨대 1월은 ‘연극, 눈썰매와 겨울이야기’ 식이다. 이는 어린이들이 연극인과의 만남을 통해 연극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무대의상 만들기와 분장하기, 대본 만들기, 연극 한 토막 따라하기 등 직접 연극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거창이란 이름 자체를 브랜드화한다는 구상이다.
강석진 거창군수는 “모든 계획이 현실화하면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거창을 찾고, 관광수입도 2,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며 “거창국제연극제를 통해 거창이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RIGHT]백창훈 기자[/RIGHT]
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