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이산가족 영상편지
올해도 1000편 만든다
20년 동안 2만 7000여 편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그해 봄 아버지랑 유난히 많이 놀러 다녔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해요. 어서 가라고, 빨리 가라며 손짓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일 줄 몰랐어요. 사는 동안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 어떤 날은 펑펑 눈물이 쏟아져요.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그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저와 엄마를 보냈을지 마음이 아파요.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랑해요 아버지.”
흰머리 수북한 여든여덟 살 심인복 씨가 카메라 앞에 앉아 아버지를 불렀다. 말끝마다 떨림이 묻어났다. 아버지를 향한 영상편지를 촬영하는 내내 눈물을 닦았다. 그는 어느덧 열한 살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심 씨는 열한 살 되던 해 아버지와 이별했다. 1950년 서울 회현동 자택을 떠나며 나눈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납북된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75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같은 꿈을 꿨다.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꼬옥 안아줬다. 심 씨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실 거라곤 생각 안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부친이 살아있다면 올해 107세다.
심 씨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아버지가 어린 딸을 떠나보낼 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남편과 사별했을 때는 어머니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됐다. 그는 “그곳에도 아버지의 가족이 있었길 바란다. 많이 외롭지 않은 삶을 사셨으면… 오늘 찍은 이 영상이 아버지에게 닿지 못한다면 다른 가족들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 씨의 영상편지는 통일부의 ‘2025년 남북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사업(이하 영상편지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향후 남북 이산가족의 교류에 대비해 이산가족의 기록을 수집·보관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2005년 시작해 2024년 말까지 영상편지 총 2만 7102편이 제작됐다. 올해는 2024년 실시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를 통해 영상편지 촬영을 희망하는 대상자 약 1000명을 우선적으로 섭외해 ‘방문 촬영’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해외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영상편지 제작을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해외는 방문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사전 안내에 따라 해외 이산가족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편지를 제출하면 통일부가 영상 편집 등을 지원한다.
15년 동안 촬영을 맡아온 영상제작팀 관계자는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이산가족과 만났다. 북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편지가 전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촬영에 임하시더라”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100세가 넘은 할머님이 높은 계단을 단숨에 오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다른 가족들도 어디선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시다 꼭 재회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각 영상편지를 두 개의 이동식 저장매체(usb)에 담아 한 개는 촬영자 본인에게 제공하고 다른 한 개는 보관하고 있다가 북측 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까지는 2008년 우리나라와 북측이 각각 20편을 주고받은 일이 유일하다. 통일부는 많은 이산가족이 영상편지 사업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매체 방송을 통해 사업을 홍보해오고 있다. 대외 공개에 동의한 영상편지를 KBS ‘가요무대’와 라디오 ‘한민족방송’에서 주기적으로 소개한다. ‘남북 이산가족찾기’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통일부는 영상편지 제작을 희망하는 이산가족들을 위해 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 확산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근하 기자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 이산가족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이산가족의 약 75%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추진해야 할 정책 또한 ‘전면적 생사 확인’으로 꼽혔다. 통일부가 실시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 실태조사는 2011년부터 5년마다 이뤄져왔으나 이산가족 고령화를 고려해 조사 주기를 3년으로 단축했다.
통일부는 국내외에 거주 중인 ‘이산가족찾기 신청자’ 중 생존자 3만 6017명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변경사항을 확인하며 ‘이산가족 교류’에 관한 참여 의사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내 신청자의 62.3%가 ‘북한가족의 생사 확인’을 바랐다. 이어 ‘상봉 희망(57.2%)’, ‘서신·영상편지 교환(52.1%)’, ‘고향 방문(43.0%)’ 순으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교류 수요가 감소했고 ‘고향 방문’을 희망하는 비중이 대폭(26.7%포인트) 줄어들었다. 연령대별로는 80대 이상의 신청자(63.6%)가 가장 많았고 거주지는 수도권 지역(63.3%)이 두드러졌다. 해외 거주 신청자 또한 80대 이상(60.9%)이, 거주 국가는 미국(75.6%)이 가장 많았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이산가족 특집방송 제작(52.8%)’, ‘고향사진·영상 수집 및 전시(44.5%)’, ‘가족사진 복원(34.4%)’ 등이 제시됐다.
통일부는 “고령화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교류형태 선호도 변화 등을 토대로 이산가족들의 수요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