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이자영 산업안전감독관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 이자영 산업안전감독관의 휴대폰이 울렸다. 관할 지역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알림이었다. 산업안전감독관이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다.
산업안전감독관(이하 감독관)은 고용노동부 소속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도·감독과 수사를 수행한다. 임금체불·부당해고 등을 다루는 일반 근로감독관과 달리 이들은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여부를 집중 수사한다. 산업현장에서 산재예방 지도·점검을 전담하는 감독관이 있는가 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 수사를 맡는 감독관도 있다. 이 감독관은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산재, 특히 산재사망사고 수사를 담당한다. 중처법이 적용될 만한 사고가 나면 현장에 출동해 전방위적 수사를 벌인다.
최근 감독관의 역할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정부가 잇따른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고 올해를 ‘산재사망사고 근절 원년’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요소를 찾아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가 나면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을 막는 것이 감독관의 핵심 임무다.
이재명 대통령도 감독관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7월 10일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근로감독관을 지금보다 대폭 늘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단속권도 강화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는 감독관 증원 여부를 직접 점검했다. 9월 10일에는 누리소통망(SNS)에 한 감독관의 명함을 사진으로 올리며 “근로감독관의 명함 뒷면에는 ‘떨어지면 죽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노동부 장관 명함에도 이 문구를 추가해 산업 현장의 경각심을 높이고 기업과 현장 관리자 등 모든 책임 주체에 대한 강력한 처벌 제도를 마련해 고질적 관행과 안전 불감을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관은 그동안 중대재해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산재사망사고 재발 방지에 힘써왔다. 2023년 12월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석포제련소에서 아르신(삼수소화비소) 누출로 하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이 감독관은 5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분석하고 44회에 걸쳐 참고인과 피의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안전보건총괄책임자와 경영책임자가 구속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원청 경영책임자가 중처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첫 사례다. 이 공로로 이 감독관은 올해 1월 ‘2024년 올해의 산업안전감독관’에 선정됐다.
아르신 누출 사고는 왜, 어떻게 일어났나?
옛날 사약을 만들 때 쓰던 물질 중에 비소가 있다. 비소에 산을 결합하면 기체가 되는데 이게 삼수소화비소, 즉 아르신이다. 사고가 일어난 공장에서는 당시 아연 제련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 불순물을 섞는 탱크 모터가 고장나 노동자들이 탱크 위로 올라가 4시간 동안 수리 작업을 했다. 탱크 위에 구멍이 뚫린 상태라 노동자들은 아르신을 그대로 흡입했다. 퇴근 후 몸에 이상을 느낀 노동자들이 병원을 찾았고 그중 뒤늦게 다음날 아침 병원을 찾은 노동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르신을 감지하는 기계가 없었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전에도 아르신 누출 사고가 발생해 비소 측정기가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 회사 관계자들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비소 수치는 기준치의 약 200배에 달했다고 한다. 더구나 회사는 작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작업책임자도 현장에 없었고 노동자들은 방독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방진마스크만 착용한 채 작업했다.
과거에도 사고가 있었는데 재발했다는 것이 납득이 안된다.
여러 산재사망사고를 수사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떤 형태로든 ‘전조 증상’이 있다는 점이다. 아르신 누출 사고의 경우도 과거 사고가 있었음에도 재발 방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 사건 이전에 누군가가 안전 문제를 지적했지만 묵살하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
통계를 보면 추락, 끼임, 부딪힘 같이 조금만 예방하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많다.
안전 문제가 현장에서 가장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떨어져 다치거나 죽는 사고만 하더라도 줄을 구조물에 매달기만 해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줄을 걸었다 뺐다 하는 것이 귀찮은 일이다보니 줄을 허리에만 감고 끌고 다니는 노동자가 많다. 하지만 이건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한 번 줄을 걸면 쭉 다닐 수 있는 안전대 걸이만 설치해주면 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회사 측이 설치를 꺼린다. 결국 자기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구조가 생기고 ‘아차’ 하는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을 잘 챙기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자신이 맡은 업무의 위험성을 제대로 모르는 노동자가 많다는 점이다. 아르신 누출 사고만 해도 노동자들은 비소를 흡입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방독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회사가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누구나 업무 중 실수를 할 수 있다. 노동자 본인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만 실수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실수 한 번에 목숨을 잃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안전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원인은 결국 비용 때문인가?
그렇다. 하청의 하청까지 이어지는 불법 하도급 구조에서는 비용 절감이 큰 과제다.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아무도 죽지 않는 것’은 티가 잘 나지 않는 성과다. 만약 누군가 목숨을 잃었을 때 보상비용·벌금 등이 안전장비를 갖추는 것보다 싸다면 회사는 비용이 적은 선택지를 고르려 한다. 생명과 안전을 비용과 저울질하는 낮은 안전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더 큰 손해가 온다’는 경고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감독관이 하는 일이 이런 ‘경고’를 하는 일일 텐데?
맞다. 사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타까운 사고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다시 말해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 규명과 엄중한 처벌이 중요하다. 원인을 밝혀 책임을 묻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산재사고가 일어나면 감독관은 언제 투입되나?
경찰이나 소방에 산재사고가 접수되면 관할 노동청에 보고된다. 사건을 살펴보고 중대재해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면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한다.
현장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고 원인에 대한 증거 수집과 이를 통해 고의성을 입증하는 데 특히 집중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하려면 고의적으로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 사장이 “이렇게 위험한 일인지 몰랐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고 주장하면 처벌이 어렵다.
아르신 누출 사고는 고의성을 어떻게 입증했나?
쉽지 않았지만 검찰·경찰과의 공조수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검찰·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체계적으로 공조한다면 까다로운 원인 규명은 물론 고의성 입증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공조수사를 통해서 수사 방향을 잡아나갔다.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처벌 외에 산재사망사고를 줄일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책임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는 원청에서 40년 동안 일하다가 퇴직 후 하청업체에서 경력을 살려 일하던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어느 회사에 다니시나”고 물었는데 “막노동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혹시나 회사에 피해가 갈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회사를 생각하는 만큼만 회사가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산재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안전 책임자들과 경영자들이 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남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 여겼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일이 없어서 한가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산재사고는 하루에도 다수 발생한다. 그중 중대재해가 의심돼 출동하는 일이 하루에 두 번 있을 때도 있다. 한 번 출동하면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다른 업무를 맡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다 보니 업무가 쌓이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는다. 모두에게 안전한 일터가 만들어져 감독관이 할 일이 없어지면 좋겠다.
김효정 기자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 가동
2만 6000곳 고위험 사업장 선정
12대 안전수칙 불시 점검
정부는 7월 23일부터 12대 핵심 안전수칙을 중심으로 산업안전감독관들이 사업장을 불시 점검하는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후진국형 사고 예방에 중점을 두고 12대 핵심 안전수칙을 선정했다. 고위험 사업장별로 전담 감독관을 지정해 밀착 관리하는 동시에 불시 점검을 통해 적발·시정 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기본은 추락, 끼임, 부딪힘, 화재·폭발, 질식 등 5대 중대재해 및 폭염 분야 12대 핵심 안전수칙이다. 12대 핵심 안전수칙은 과거 사고의 유형과 원인 등을 분석해 국민 누구나 쉽게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추락 재해를 막기 위해서 안전모·안전대 등 개인보호구를 지급하고 철저하게 착용하는 것, 끼임을 방지하기 위해 방호덮개, 안전가드 등 방호장치를 설치하는 것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고위험 사업장으로는 과거 산재 발생 이력 등을 고려해 전국에서 2만 6000곳이 선정됐다. 이들 사업장별로 전담 감독관을 지정해 사업장 대표 또는 안전관리자와 상시 연락체계를 구축하고 안전보건 위험상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사업장이 자체적으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일터 프로젝트 대상임을 알리고 자체 점검표를 송부해 개선 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전담 감독관들은 필요시 즉각 출동하는 등 현장을 밀착 관리할 방침이다.
산업안전감독관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인력 900명이 2인 1조가 돼 점검·감독을 실시하는데 사업장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불시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만 6000곳의 고위험 사업장을 최소 한 번 이상 방문해 점검할 계획으로 안전 위해 요소를 발견하면 즉시 시정 조치하도록 지도한다. 필요하면 추가 점검을 통해 확실히 시정했는지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