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직후 ‘베이비붐’ 세대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1958년생 앞에는 파란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가난, 반공, 무조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유신(維新), ‘뺑뺑이’로 알려진 첫 번째 무시험 고교 입학, 역대 최고의 대학입시 경쟁률, 5공과 6월항쟁, 그리고 IMF 외환위기와 명퇴·정리해고…. 경쟁과 굴곡 끝에 ‘잡초’처럼 살아남은 그들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개띠 해가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데, 6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황금개띠 해를 다시 맞은 58년 개띠는 올해의 주인공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산전수전, 아니 공중전(空中戰)까지 다 겪은 세대 58년 개띠들의 새해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 ‘58년 개띠’들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사진은 각계각층의 개띠 인사들이 <58개띠들의 이야기> 출간을 기념해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정식집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연합
방송인 임백천

ⓒ연합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덕수초등학교 시절, 임백천은 1600여 명의 개띠 동기들과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다. 그는 “한 반에 70명씩 2부제 수업을 했다”며 “학생이 너무 많다 보니 수업 빼먹고 영화 보러 다녀도 선생님께 들키지 않았다”고 했다. ‘땡땡이’의 명수였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을 듣고 가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5·16군사정변을 맞고 고등학교 입시 때는 소위 ‘뺑뺑이’(고교 평준화)로 제도가 바뀌면서 격동의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는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내기였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전쟁 세대라 생활을 생존의 개념으로 이해했고, 우리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죠. 어릴 때 친구들이 많아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큰 힘이 됐어요. 그게 58년 개띠들의 장점이자 특징이에요. 그땐 사는 형편이 다 비슷해서 아버지가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자영업자이든 전혀 상관없었어요. ‘너희 아파트 몇 평이냐’ 같은 얘기는 아예 없었고, 친구가 마음에 들어 대화가 통하면 그때부턴 부모가 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임백천은 대학 1년 때인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입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수상을 계기로 각종 프로그램의 MC를 도맡으며 승승장구했다. 대학 2년 때 ‘젊음의 행진’ 전신인 MBC ‘젊음이 있는 곳에’ 진행을 맡아 국내 최초 TV MC로 기록됐다. 튀지 않고 신뢰성 있는 진행으로 각 방송사가 앞다퉈 섭외하는 인물이 됐고, 이 중 한 방송사는 ‘특채’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인기가 치솟을 때 방송의 불안한 미래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전공인 건축을 살려 공영토건 건축기사로 5년간 현장을 누볐다.
임백천은 “58년 개띠의 특징은 어떻게든 버티는 것, 저는 그걸 ‘젖은 낙엽 정신’이라고 불러요. 약간 살얼음이 낀 늦가을 낙엽은 쉽게 쓸리지 않거든요. 악착같이 땅에 붙어서 살아남지요”라고 말했다. “58년 개띠 세대는 군사정변부터 IMF 외환위기까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매번 겪었다”며 “지금처럼 자기 홍보를 하면 되레 눈총받던 시대였고, 그래서 베이비붐 세대는 인내하고 나를 고집하지 않는 스타일을 공통점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지금의 유재석처럼 ‘국민 MC’로 통했던 가수 겸 MC 임백천. 그는 올해 7년째 이어가는 KBS 2라디오 ‘라디오 7080’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는 “라디오 단일 프로그램으로는 최장수 프로그램이에요. 이 또한 58년 개띠의 젖은 낙엽 정신을 보여준 최고의 모델”이라면서 웃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 중 1958년 출생자가 가장 많아 제일 목소리가 큰 세대라는 말도 있지만 실제론 안 그래요.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을 냈는데, 그 책 제목처럼 58년 개띠는 억울하거나 기뻐도 무엇을 요구하거나 소리치지 않아요. 많이 참는 세대”라고 했다. 위로는 선배나 부모를 모시고, 아래 후배들은 챙기고, 그렇다고 좋은 세대라는 말은 듣지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 채 ‘낀’ 세대 로 살았다. 그는 “건국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는 젊은 후배들도 ‘헬조선’을 외치며 소리만 내서는 더욱 불편한 현실이 될 것”이라며 “21세기까지 살아남은 58년 개띠들도 여생이 편하려면 천지개벽해가는 21세기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적응해야만 한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정철수(가명)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좋겠다”
77학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 패스트푸드 계열사 대표까지 지낸 58년 개띠 정철수 씨(가명). 그의 스토리는 58년 개띠의 인생과 딱 들어맞는다. 그가 꼽는 첫 인생의 변곡점은 고교 입학시험이 사라진 것이었다. 소위 ‘뺑뺑이’로 진학하는 바람에 명문고 서열을 벗어나 기가 죽지 않았고, 직업을 구할 때도 고교 서열 같은 것 상관없이 덤빌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점이 57년생과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58년 개띠들에게 박정희 대통령 서거는 또 하나의 인생 변곡점이었다. 정 씨는 부마항쟁, 12·12군사반란, 5·18민주화운동을 군인의 신분으로 이 모든 사건을 겪었다. 동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서 군대에 있던 이들과 밖에서 데모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정 씨에게 충격이었다. 이 때문에 58년 개띠들은 어느 쪽이든 사회 현상을 남 일 보듯 넘길 수 없도록 ‘훈련’을 받았다.
정 씨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경쟁은 있었지만, 취직만 하면 회사가 금방 성장하는 바람에 일하는 데 신바람이 났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해도 70~80%는 성공하던 시절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살던 개띠들에게 IMF 외환위기는 ‘복날’이 다가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일하면 큰 보상은 못 받아도 위험한 일은 없을 거란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 씨 부부는 젊었을 때 4대가 함께 방 세 개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아이와 나란히 누울 공간도 없어 아이를 머리맡에 두고 함께 잤다. 그래도 요즘 결혼을 두려워하는 젊은 세대와 달리 과감하게 결혼에 골인했다. 퇴사할 때 회사는 ‘내가 31년간 땀 흘린 회사가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매정하게 정 씨에게 사직통고를 했다. 퇴직하고 보니 온갖 자격증을 따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회사 일에 매달려 살아온 정 씨에겐 운전면허증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 씨는 “그때 마침 부모님이 중병으로 교대로 입원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지냈다”며 “아내와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안했지만, 다행히 많이 이해를 해줬다”고 했다.
정 씨는 그래도 돌아보니 직장 생활에서 가장 큰 가치는 동료애라고 했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사람’이 안 보였다고 한다. 이제는 은퇴 후 진급할 이유도 없고 승진할 일도 없으니 남을 도와가면서 일하는 것을 즐긴다. 정 씨는 2017년 2월부터 지자체에서 중·장년층에게 사회공헌일자리를 연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 씨는 올해 환갑을 맞는 58년생 개띠 친구들에게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한비야

ⓒ한비야
“‘1그램의 용기’를 드립니다”
‘58년 개띠’ 한비야는 ‘바람의 딸’이라는 호칭보다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불리길 원했다. 2007년 그가 세운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에서 24명의 정규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2017까지 50만 명의 학생을 교육했고, 100% 재능 기부로 이 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2015년 출간한 에세이집 〈1그램의 용기〉 인세 수입 중 2억 원을 기부했을 만큼 큰 애정을 갖고 있다.
한비야 교장은 “지금 세계는 지구촌이 아니라 유리로 된 지구집”이라며 “지구 가족의 어려움을 함께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세계 시민으로 만드는 게 우리 학교의 목표”라고 했다.
한 교장은 “58년 개띠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이 됐다”며 “피원조국 대한민국이 원조국으로 국제무대에 섰을 때,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58년 개띠 여자로 받은 프리미엄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했다.
한비야는 “콩나물 교실에서 초등학교를 세 차례나 옮겨가며 공부했고,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동생의 대학 졸업을 위해 6년 동안 고졸 여성으로 세상의 온갖 ‘갑질’을 경험해야만 했다”며 “당시엔 그것이 희생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지냈지만, 지금의 인도적 지원 임무에 얼마나 값진 경험이 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한 교장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세계 일주를 떠났을 때 나이가 서른셋(1991년)이었고, 오지 여행가로 경력이 쌓일 즈음 국제 NGO 월드비전에 들어가 마흔둘(2000년)의 나이에 국제구호 전문가로 전 세계 재난 현장을 누볐다. 그렇게 9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한비야는 다시 떠났다. 쉰둘(2010년)에 유학을 떠나 미국 터프츠대학교 플레처 스쿨에서 인도적 지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한비야는 ‘선생’, ‘박사 학생’, ‘월드비전 인도지원팀’의 1인 3역을 소화했다. 2012년 1학기부터 이화여대에서 국제구호개발협력 강의를 맡아 현장과 유학을 통해 배운 지식을 나누며 ‘한비야 키즈’를 배출하고 있다. 2014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 올해 가을 졸업을 목표로 논문을 쓰고 있다. 여름·겨울 방학에는 시리아 난민촌 등 긴급한 구호 현장에서 일하며 시의적절하게 도울 방법을 고민한다.
한비야는 58년 개띠 여성을 “유행가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일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특유한 에너지도 그곳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여행 에세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시작으로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의 베스트셀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한비야는 에세이 〈1그램의 용기〉에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담았다.
“책 제목인 ‘1그램의 용기’는 평소 제가 자주 하는 말이에요. 그 작은 용기를 내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보태주고 싶었어요. 작은 용기들이 삶을 바꿉니다. 저 역시 힘이 떨어지고 지칠 때가 있는데 다시 저를 세워준 것이 작은 용기들이었어요.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우리 58년 개띠 동기들에게 ‘1그램의 용기’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지만, 한비야의 수첩은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하다. 앞으로 10년은 구호 현장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이후에는 숲 해설가로 나설 예정이다. 구호 현장을 떠나 시간이 허락되면 전업 작가로 나서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다. 한비야 교장은 “묘비명은 ‘몽땅 다 쓰고 가다’로 이미 정해두었다”며 “새해엔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이 할 일이 없을 만큼 세상이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58년 개띠 유명인사들
재계
전문경영인은 ‘58년 개띠’들이 주축
위성호 신한은행장,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홍봉성 라이나생명 사장, 황수영 더케이손해보험 사장, 이태운 DB생명보험 사장,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고원종 DB금융투자 사장, 황종섭 하나저축은행 대표, 김원 삼양홀딩스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김해성 이마트 대표이사,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원 농심 부회장,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오흥주 동국제약 대표,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 김만훈 셀트리온헬스케어 사장,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 사장<사진>,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조기행 SK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박한우 기아차 사장, 송대현·권순황 LG전자 사장, 민경집 LG하우시스 대표이사 부사장, 황용기 LG디스플레이 TV사업부장 사장, 손옥동 LG화학 기초소재사업본부장 사장, 박종석 LG이노텍 사장, 오인환 포스코 사장, 윤동준 포스코에너지 사장,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이태종 한화 방산부문 대표이사 부사장, 옥경석 한화 화약부문 대표이사 사장, 정승인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부사장, 김창권 롯데카드 대표,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 김용수 롯데제과 사장, 표현명 롯데렌탈 사장 등
정계
환갑 맞은 ‘58년 개띠’ 여의도 전성시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사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심재철 국회부의장(자유한국당),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민병두·박남춘·이상민·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양석·박순자·경대수·홍철호·박성중·이은권·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 김성식·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 등
연예계
환갑 맞는 58개띠 스타들 … 빛나는 활동 기대하시개
심형래, 설운도, 이문세<사진>, 임백천, 조덕배, 홍서범, 김연자 등
스포츠계
4전5기 신화 보고 자란 58년 개띠 스포츠인들
김시진, 김성한, 김경문, 조병득, 정해성, 신문선<사진>, 문병철, 박성수, 고수대, 유병준, 조철상, 김성호 등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