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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길은 멀다. 하지만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나눌 동행이 있다면 먼 길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아주 특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그 때문. 첫 주자로 햇빛과 비바람 속을 오가야 할 이해찬 국무총리를 초대했다.
말벗으로는 도명정 한양대 교수가 나왔다.
올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35도 안팎을 수시로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한 달여 동안 계속됐다. 이 즈음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표정은 노심초사(勞心焦思) 바로 그것이었다. 8월 중순 비바람을 몰고온 태풍 ‘메기’는 중부권 일부 국민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손님’같았다. 그러나 그때도 이 총리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정부의 가장 큰 책무’가 바로 그것임을 강조했었다. 땡볕이든, 태풍이든 어느 때나 이 땅을 곱게 지나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래 저래 걱정을 팔자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자리가 바로 국무총리직이다.
이 총리는 6월30일 그 무거운 책임을 맡았다. 취임 이후 “출근 길에 차가 막히면 교통문제 해결책부터 고민하게 된다”는 이 총리로부터 국정 현안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도명정(都明正) 한양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대담자로 나섰다.
도명정 :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을 때 저를 비롯한 서울시 공무원들이 긴장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정 활동을 하시는 동안 날카롭고 매섭게 국정을 추궁하는 이 총리의 모습 때문이었죠.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매우 합리적이었고,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 총리의 자세는 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 뒤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는데, 그런 경륜이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십니까.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이해찬 : 국무총리는 말 그대로 국정을 모두 보살펴야 하는 자리입니다. 국민의 안전한 생활에서 국가의 장기적 비전까지 일의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제가 당에서는 주로 정책위 의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서울시 행정에는 외교·국방을 빼놓고는 한국에 있는 문제는 다 들어 있습니다. 국정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죠. 제가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17년째입니다. 지금까지 큰 경험들이 다 도움이 돼요.
도명정 : 마침 노무현 대통령께서 일상적인 국정운영은 국무총리가 총괄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최근에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을 두고 언론에서는 ‘분권형 국정운영’이나 ‘책임총리제’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노 대통령의 이런 말씀을 이 총리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해찬 : 분권형 국정운영이나 책임총리제 개념은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기획하는 큰 국정 과제 중심으로 일을 하시고 거기서 정해진 방향을 가지고 실행, 관리, 집행하는 일은 국무총리 중심으로 하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헌법에도 그렇게 되어 있죠. 그렇게 역할분담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정해진 국정과제를 집행하는 쪽에 역점을 둘 생각입니다. 대통령께서 거들어 주셔야 할 일이 많이 있죠. 그런 때는 대통령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조정하려고 합니다.
도명정 : 취임하시면서 한편으로 ‘정부혁신’과 ‘부정부패 청산’을 강조했습니다. 해묵은 이런 과제에 대해 지난 모든 정부가 출범 초기 같은 말을 했지만 국민은 큰 성과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 총리의 가장 큰 장점은 추진력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이 총리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것 같은데 희망을 가져도 좋겠습니까.
이 물음에 이해찬 총리는 “두 가지 문제는 공직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라면서 ‘부정부패 청산’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이해찬 : 지난 4월 총선 과정에서 2002년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경유착 고리는 많이 끊어졌어요. 이를 계기로 공무원 사회에서 부패 고리들을 끊어 나가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방정부에서는 아직도 자잘한 비리들이 많이 있거든요. 거기까지 부패 고리들을 걷어내야 비로소 국민이 체감할 것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차차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B]“공무원 의식, 국민 요구 못 따라가”[/B]
그러고 나서 이 총리는 ‘정부 혁신’에 대한 방향을 이렇게 정리해 말했다.
“지금 공무원들은 신분이 안정돼 있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 공무원들이 자기혁신을 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시대 상황, 국민의 요구는 자꾸 바뀌어 갑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아 그런 요구에 못 따라가는 겁니다. 공무원들이 자기혁신,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시대 상황과 요구, 수요에 맞춰 발전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역점을 두고 있고요.”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앞서 말한 새로운 공무원 시스템 혁신의 일환으로 ‘고위 공무원단’이라는 처방을 1차로 내놓았다.
“3급 이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고위 공무원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소속 또한 각 부처가 아니라 중앙인사위원회로 하고요. 그래서 각 부처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스카우트하는 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공무원들도 특정한 부처 소속이 아니라 국가 소속이라는 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부처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B]“경제위기 일관성 있게 대처”[/B]
도명정 : 저도 공직생활을 오래 했습니다만 ‘정부 혁신’ ‘부정부패 청산’ 작업은 과거 정부 때부터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요즘 국민은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들 말하고, 저 또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이해찬 : 수출 쪽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 국민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 이유를 4가지 정도로 꼽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로 이 총리는 ‘건설시장이 극도로 침체되어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규모가 아주 큰데 가장 침체돼 있는 부문입니다. 물론 정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강도 높은 정책을 펴왔죠. 투기는 잡았는데 건설 경기는 전반적으로 침체돼 이를 연착륙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부동산이 아닌 건설 부문, 예를 들면 사회간접자본시설(SOC) 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필수 시설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쪽에서 건설 경기를 진작시키는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이 총리는 두번째 이유로 ‘신용불량자’ 문제를 들었다.
“두번째는 신용불량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낭비하듯 하다 신용 불량으로 더 이상 소비를 하지 못하자 내수가 얼어붙은 거죠. 신용불량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 총리는 또 ‘상류 계층의 소비 행태’ ‘고유가’ 등도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드리우는 요인으로 꼽았다.
“상류 계층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소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골프·관광 등으로 말입니다. 그들이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다음 하나가 고유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예상보다 유가 상승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유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대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 현주소에 대한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이 총리는 단계별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런 어려움을 가져온 요인들을 일시에 해소하기는 어렵죠. 지금부터 차근차근, 일관성 있게 대처해 나갈 생각입니다. 우리 경제가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듯 그렇게 위기는 아니거든요. 국민도 그런 점을 이해해서 저축도 해야 하지만 소비도 좀 하시도록 부탁드립니다.”
도명정 :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후보지까지 선정하는 등 정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국민 사이에 여러 논란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격적 추진 이전에 국민적 합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또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꼭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해야 하느냐는 식의 여론에 대해 이 총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해찬 :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관련법이 아무런 이의 없이 통과됐습니다. 국민적 합의의 법적 요건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습니다. 다만 국민에게 설명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전국을 돌면서 신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의견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공청회를 했죠. 그리고 행정수도를 지금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실제로 공사가 시작되는 것은 2007년부터입니다. 30년 동안 도시를 만들어 가는 장기 사업이죠. 2007년까지 정부가 투자하는 예산은 사실상 없습니다.
도명정 :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언론 보도를 보면 행정수도 이전을 ‘천도’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B]“‘천도’ 주장은 국민 현혹 의도”[/B]
이해찬 : 서울이 600년 동안 수도 역할을 해 왔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수도는 으레 서울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죠.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행정과 경제 중심이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서울 전체가 옮겨가면 천도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서울은 경제 중심지로서 더 발전해 가고, 행정 기능만 신행정수도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대법원과 국회는 별도로 판단할 것입니다. 대법원은 제가 보기에는 서울에 있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합니다. 국회는 행정부와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신행정수도로의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굳이 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쪽에서 국민을 현혹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도명정 :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 사이에는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서울과 수도권은 황폐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 총리는 출신 지역구도 서울이시고, 서울 시정 책임도 맡은 바 있어 누구보다 서울 시민의 생각을 잘 읽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걱정에 대해 국무총리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또 행정수도가 이전하면 서울과 수도권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해찬 : 서울은 만원이라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40년이 넘었잖아요? 지금은 만원이 아니고 초만원이거든요. 그만큼 서울 시민들의 생활의 질이 열악해진 것 아닙니까. 그리고 서울에 행정기관이 있음으로 해서 규제가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규제 또한 선택적으로 완화할 수 있어 서울은 오히려 경제활동을 하기에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죠.
도명정 : 국무총리로 지명됐을 때 과거에 모셨던 경험을 기억하면서 국정이 안정을 찾으리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국민의 기억 속에 어떤 국무총리로 남고 싶습니까.
이해찬 : 시작할 때부터 일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께서 기대한 것 또한 바로 그런 것이고요. 이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선진 민주사회로 가야 하거든요. 그것을 국정의 큰 방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첫째 인적자원 개발, 둘째 기술력 제고, 셋째 개방경쟁 체제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토대를 구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총리는 오전 5시30분 새벽별을 보고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이 대담이 있던 날인 8월24일에도 이 총리의 하루는 ‘아침 직원조회’부터 ‘공관 국회의원 만찬’까지 모두 12개의 일정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이 총리는 국무총리직을 ‘만인지상’(萬人之上)이 아니라 ‘만사지관’(萬事之官)자리로 생각한다. 그러니 이처럼 바쁠 수밖에 없다.
외동딸(현주)과 모처럼 약속했던 여름 휴가도 태풍 메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날아가 버렸다. 가족들에게 따지 못한 점수를 국민으로부터는 반드시 따야 하는 자리가 바로 국무총리직인지도 모른다.
[U]<<인연 ‘괘씸죄’와 ‘발탁’사이>>[/U]
이해찬 국무총리는 1995년 7월1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다. 그가 그해 4월 민선 1기 선거 때 조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조순 서울시장 취임과 함께 옮겨 앉은 자리였다.
도명정 교수는 당시 서울 강서구청장을 막 그만둔 상태였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도 전 구청장은 당시 마지막 관선 구청장들과 함께 대기발령을 받고 4개월째 방학 아닌 방학중이었다. 그 무렵 서울시의 마지막 관선 구청장들은 갓 취임한 조순 시장과 이해찬 부시장의 시울 시청 집무실을 축하 인사차 방문했다. 하지만 당시 도 교수는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성격상 그 대열에서 유일하게 빠져 이해찬 부시장을 만나지 못했다.
그 즈음 이해찬 부시장은 서울시 기획관리실장감을 공들여 찾고 있었다. 자신과 호흡을 맞춰 혁신적인 서울 시정을 구상하고 실행할 적임자를 물색중이었던 것이다. 이 부시장은 당시 서울 시청 직원들을 상대로 기획관리실장 후보에 대한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었던 것으로 나중에 알려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해찬 부시장은 축하 인사조차 오지 않아 ‘괘씸죄’로 찍힐 만도 한 도 전 구청장을 서울시 기획관리실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끈으로 작용하는 지연(이 총리는 충남 청양, 도 교수는 경북 경주)도 학연(서울대 사회학과, 경북대 법학과)도 없는 사이여서 사실 얼굴을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그 무렵 서울시에 1급 공무원이 7명 있었지만, 이 부시장은 그들 모두를 제쳐놓고 도 전 구청장을 1급으로 승진시키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이었다.
1972년 8월 대구시청에서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도 교수는 1976년 1월 서울 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는 서울시에서 기획조정계장, 기획담당관 등 주로 기획 분야에서 근무했다. 서울시청 직원들 사이에서 기획 능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던 도 교수는 이 부시장이 찾는 적임자임에 틀림없었다.
이렇게 해서 일면식도 없던 이 총리와 도 교수는 첫 대면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3개월 만에 ‘서울시정3개년계획’을 완성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줬다. 이번 대담자로 도 교수가 나선 것은 이 총리가 “행정과 정책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국정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직접 추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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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