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향후 2년입니다. 이런 시기에 FTA의 전반적인 정책을 입안해야 할 위치에 서게 돼 어깨가 무겁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지난 1월6일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국 초대 정책과장을 맡은 유명희(37) 외무관. 그는 “기쁜 마음보다 책임감이 앞선다”며 입을 뗀다. 외교부 내 과장급이 대개 외무고시 20~22기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행정고시 35회(외시 26회 해당)인 그의 발탁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그가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유 과장은 그동안 한·미 통상협상 과정과 지난해 말 한·싱가포르 FTA 타결 등 굵직한 협상 테이블에서 크게 활약했다. 특히 한·싱가포르 FTA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파트너들로부터 ‘협상을 아는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그때 보여준 협상력이 이번 발탁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B]국제 통상협상 이끌어온 한국의 ‘칼라 힐스’[/B]
외교부 내에서 그는 1993년 우리나라의 무역개방을 이끌어낸 칼라 힐스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비견되기도 한다. 전문적 식견에 시원시원한 성격, 추진력까지 갖춘 덕분이다.
그가 통상 전문가의 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은 미국을 비롯한 대외적 개방 압력이 거세지던 시기였다.
특히 그는 총무처 근무 시절인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통상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 1995년 통상산업부로 자리를 옮겼고, 1996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상에 참여하면서 국제 통상협상 무대에 데뷔했다. 그 뒤 1998년 통상교섭본부가 출범하면서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유능한 통상 전문가의 요건에 대해 유씨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경제와 법에 관한 지식, 다양한 실전 경험이라는 3박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법률 지식을 쌓기 위해 1999년 미국 유학을 통해 로스쿨 3년 과정을 끝낸 뒤 뉴욕주와 워싱턴D.C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우리 입장을 100%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협상 테이블 밖으로 나오면 신뢰 관계를 쌓는 데 주력합니다. 산책이나 식사도 같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자리를 빌려 우리 입장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거든요. 서로의 입장을 알게 되면 자국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됩니다.”
2005년은 유 과장에게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일본,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과의 FTA 협상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가 한·칠레 FTA가 발효되고 한·싱가포르 FTA가 실질적 타결을 이룬 FTA 원년이었다면, 올해는 FTA 추진이 본격화, 가속화 되는 해입니다. 올해 안에 일본, 유럽자유무역연합과 타결을 목표로 삼고 있고, 동남아국가연합과도 협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국제사회는 우리에게 무역규모 10위에 걸맞은 역할을 요구합니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만큼 우리 국민도 개방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국제 통상 무대에서 원칙과 실력을 겸비한 협상 전문가로 평가받고 싶다”면서 “그 목표가 이뤄진다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모아 통상협상 실무 안내서도 써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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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