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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빈곤에서 ‘탈출’해야 할 대상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정부가 추산하는 빈곤층은 어느 정도입니까?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가 130만 명 정도 됩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월수입이 106만 원에 미달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많아서 최저생계비의 120%에 미달하는 사람, 이른바 차상위계층까지 포함해 4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 가까이 됩니다.”
-국민 10명 중 1명이 빈곤층이라면 많은 편 아닌가요?
“선진국의 경우 5~10% 정도이니 우리나라는 조금 많은 편에 속하지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최근 7년여 사이에 빈곤층이 급격히 늘었다는 데 있습니다. 1997년 이전에 비해 현재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IMF를 겪은 후유증입니다.”
-빈곤층 급증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경기침체 때문입니다. IMF를 겪고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실직자가 늘어났습니다. 당시 회사를 나온 사람들이 지금은 실직자로 있거나 영세 자영업을 합니다. 장애·고령·편부모 등의 빈곤 원인도 있지만 고용 사정의 악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봅니다.”
[B]“일자리 양극화가 빈부격차 부추겨”[/B]
-우리나라의 빈부격차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소득분배 불균형 수치인 지니계수로 본다면 1997년 이전 0.283에서 지난해에는 0.306까지 올라갔습니다. 0.4를 넘으면 아주 심각한 수준이지만 미국·프랑스보다는 낮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실제 격차를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득분배 불평등뿐 아니라 부동산 등과 같은 자산분배 불평등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개선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역시 고용상황에서 찾아야 할 텐데요. 일자리 자체가 양극화하고 있습니다. 고소득 직종은 일자리가 계속 있고 저소득 자영업자도 생계를 꾸려가는데 ‘허리’에 해당하는 직종의 일자리가 줄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일자리라면 대부분 생산직과 화이트칼라 쪽인데, 이는 공장의 해외 이전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중산층이 얇아졌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지요.”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이 기존 지원책과 다른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책의 차별성은 제목이 뜻하는 그대로입니다. ‘웰페어’(welfare)정책에서 ‘워크 페어’(workfare) 정책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복지시설이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웰페어였다면 워크페어는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립하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입니다. 선진국이 겪은 복지의존 현상을 피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정책이 지원만 많이 해주면 된다는 생각의 단순 나열식이었다면 이번 정책은 새로운 사고방식,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주거·의료·교육 등 최소한의 복지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소득 1만 달러 국가 수준에 못 미칩니다. 그래서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복지도 확충해 나가야 하고, 워크페어도 진행해야 하고…. 그러니 좀 바쁘죠.”(웃음)
정부가 내놓은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정책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로 노동빈곤층(working poor)에게 일할 여건을 조성해 주고 기회를 확대하는 것과 낮은 임금을 보전해 주는 근로소득보전제도(EITC·Earned Income Tax Credit)가 그것이다.
먼저 일할 여건의 조성은 이 위원장이 말한 복지정책에 해당한다. 의료·교육·주거와 같은 기초적인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으로 근로빈곤층의 생활에 필수적인 복지 서비스가 부족한 데서 오는 고통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담하자는 취지다.
일할 의지가 있어도 일자리가 없는 경우에는 사회적 일자리나 자활근로 또는 창업지원 등을 통해 일할 기회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835억 원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 예산을 2005년 1,500억 원, 2006년 2,000억 원, 2008년 3,000억 원으로 늘려나갈 예정이다.
또 근로소득보전제도는 일하는 빈곤층을 지원하는 제도로, 일을 해도 낮은 임금을 받는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낮은 임금을 보전해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낮은 임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소득파악 여부가 관건이기 때문에 소득파악이 가능한 근로자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복지정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농업 부문을 보더라도 참여정부의 모든 지원 정책에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겠다’는 기조가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퍼주기식 지원은 곤란하다는 방향을 분명히 정해 놓고 가고 있습니다. ‘선의와 돈만으로는 가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많은 국가가 빈곤층에 대한 선의도 있었고 돈도 많이 투입했지만 결국 노동 기피, 생산성 하락, 경쟁력 악화라는 결과를 불러왔어요. 빈곤층이든 중소기업이든 농민이든 스스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정부의 정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가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편다’는 비판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과거 정부의 정책은 퍼주기식 인기영합주의 정책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참여정부는 오히려 인기영합주의와는 반대가 되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죠.”
-근로소득보전제도의 시행 시기는 언제입니까?
“일부 언론은 당장 시행하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하던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연구해 보고 연구 결과가 괜찮다는 판단이 들면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해볼 생각입니다. 본사업에 들어가는 것은 몇 년 뒤가 됩니다.”
[B]“여성 일자리 창출이 노동빈곤층 문제의 해법”[/B]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 전제인데,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책이 있습니까?
“일자리 창출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정책입니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입니다. 간병인 등과 같이 사회적으로는 필요한데 수익성은 낮은 일자리를 정부 지원을 통해 늘려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했던 사회 서비스가 공급되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일자리를 매년 2만 개씩 늘려나가 참여정부 임기 내에 모두 8만 개 정도 창출할 생각입니다.”
-근로소득보전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정책 수혜자를 공정하게 가려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한 소득파악이 힘든 우리 현실에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한 애로사항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소득파악이 잘돼서 이 정책이 성공했지만 우리는 소득세를 내는 사람이 근로소득자의 절반 정도이고, 자영업자 중에서도 부가가치세를 내는 사람이 얼마 안 됩니다. 그렇다고 소득파악이 제대로 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빈곤층 지원은 백년하청이 될 겁니다. 먼저 이 제도의 대상자가 되려면 소득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 신고내용을 점검해 가면서 소득 파악률을 높여 나갈 생각입니다. 정책검토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시범사업을 해보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근로소득보전제도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일을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노동빈곤층(working poor)의 등장이 세계적 추세이며 이를 막을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정책이 이 같은 세계적 추세를 늦출 수 있을까요?
“‘노동빈곤층’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도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보이면서 2대 8의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소득보전제도를 먼저 시행한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는 ‘노동빈곤층’ 문제를 늦출 수 있는 좋은 대안이 있는데, 바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늘리는 것입니다. 한국은 여성의 취업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제 남자가 혼자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개념은 지나간 시대의 얘기가 됐습니다. 부부 가운데 한 명은 풀타임으로, 다른 한 명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갖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것을 1.5인(人) 경제활동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여성 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보육 문제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육시설 확충이 대단히 중요하고 참여정부 들어 예산을 가장 빨리 늘리고 있는 부문이 바로 보육 예산입니다. 지난해 2,500억 원에서 올해 4,000억 원으로, 다시 내년에는 6,000억 원으로 늘 예정이어서 증가율이 50% 수준입니다. 아직은 피부로 효과를 느낄 단계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지원입니다.”
-위원회는 빈부격차뿐 아니라 차별시정도 국정 목표로 내걸고 있습니다. 위원장께서는 여성 차별에 대해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를 강조하시는데요?
“남녀차별 문제에 대해 과거에는 임금차별을 시정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여성들이 취직이 안 되는 상황에서 임금차별은 별 의미가 없는 얘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고용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나온 것이 여성채용할당제입니다. 하지만 실력이 나은 남성을 역차별한다는 인식 때문에 시행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적극적 차별 시정’은 비슷한 남녀 조건이면 여성을 채용하고, 남성이 우월하면 남성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현실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업에 상당한 자율을 보장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여성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정책이 될 것입니다. 올해 공기업에서 시범사업 중인데 내년부터는 대기업까지 확대하려고 합니다.”
[B]“약자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중요”[/B]
-위원회가 제시하는 사회의 비전은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입니다.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접적인 기부나 자원봉사 같은 실천에서부터 그런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지지, 그리고 생활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심정적 지지가 함께 어우러져야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정부 12개 장기 국정과제를 총괄하는 정책기획위원장도 맡고 계십니다. 지금의 한국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은 거품이 꺼지는 과정입니다. 2~3년 전에 카드 규제를 풀고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면서 거품 경기가 한창일 때는 식당 손님도 많았고, 택시 승객도 많았습니다. 그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는 층이 택시 운전이나 식당 운영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영세 자영업자가 워낙 많습니다. 자영업자 수와 가족 단위 사업체의 무급 종사자까지 합치면 전체 취업자의 37%로,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일 겁니다. 그래서 경기침체에 따른 고통이 큰 겁니다. 거품경제가 꺼지고 탄탄한 경제체계로 가는 과도기 단계를 잘 견뎌내면 지금 아랫목이 달궈지기 시작했으니 내년쯤이면 윗목까지 훈기가 돌 것으로 기대됩니다.”
-겨울은 특히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의 체온이 낮은 계절입니다. 올 겨울 국민을 따뜻하게 녹여 줄 ‘월동정책’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급식이 끊기게 될 저소득층 아동이 가장 먼저 걱정됩니다. 학기중에 급식을 지원받던 아동 25만 명 전원을 대상으로 희망자 모두에게 급식비를 지원하려고 합니다.
신고복지시설 1,000개소, 사회복지시설 1,000개소 등에 난방비를 지원하고 경로당 4만6,000여 곳의 난방비도 20만 원을 올려 50만원씩 지급할 계획입니다. 노숙인도 집중적인 상담을 통해 보호시설 입소를 적극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 불우이웃돕기에 참여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정 시간을 10여 분 넘긴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회의실 밖에서 그의 결재를 기다리던 직원들이 “위원장님, 10초만 시간을 내주십시오”라며 몰려 왔다. 이 위원장이 바쁠수록 2004년 겨울을 맞는 대한민국의 ‘덜 가진 사람’들이 따뜻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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