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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전통시대의 농악이나 농요, 연희 등은 모두
고된 노동과 지친 삶을 건너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생활의 일부였다. 그런 만큼
놀이꾼과 구경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데 섞여 추임새를 넣거나 춤을
추며, 말 그대로 한마당에서 한바탕 어우러지는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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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인형극의 형태를 띠는 ‘서산 박첨지놀이’ 역시 농한기나 추석 즈음의 어느날
마을의 큰 집 대청마루나 물 빠진 시냇가에 조촐하게 무대를 꾸미고,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던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는 무엇을 맡고 너는 무엇을 맡아 함께 즐기는
연희였다. 물론 여기에도 일정한 기술은 필요해 정작 인형을 잡는 놀이꾼은 누구누구로
정해져 있었다.
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형은 그 구조가 매우 간단하다. 홍동지 인형을 제외하면
모든 인형은 박으로 만든 얼굴을 긴 막대에 연결하고 몸통 부분은 천으로 덮은 ‘막대인형’이다.
인형의 손동작은 이 천 속에 놀이꾼이 팔을 넣어 움직인다. 그러므로 모든 관절에
줄을 묶어 동작을 표현하는 꼭두각시에 비하면 동작의 표현이 단순하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박첨지놀이가 가장 변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인형극으로 높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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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이 계승되는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주민들에 따르면 박첨지놀이가 고려시대에
시작됐다고 하지만 축첩에 대한 시비나 이야기에 등장하는 평양감사 등의 직제로
봐서 조선시대가 아닐까 추정되기도 한다.
극의 줄거리는 대표적인 권선징악 구조를 갖추고 있다. 축첩한 박첨지가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사냥의 쾌감에 빠져 백성들을 괴롭히던 평양감사는
잡은 꿩고기를 잘못 먹어 급사한다. 이 역시 서산 박첨지놀이가 우리 민족 정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셋째마당으로 넘어가면
큰 가슴으로 온 세상을 얼싸안는 대동세상이 열린다. 시주를 모아 절을 짓고는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첨단화하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가 파편화하는 요즘 서산 박첨지놀이는
우리 정서의 원형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이다. [RIGHT]사진·권태균 / 글·이항복[/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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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