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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 이용섭(54) 전 국세청장을
초대 혁신관리수석비서관에 임명했다. 청와대가 조직을 부풀린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혁신관리수석실을 신설한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혁신에 쏟는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혁신 전문가다. 이 수석은 국세청장 재임 시절 ‘접대비실명제’를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간부들이 접대비실명제를 거북스럽게 생각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가뿐하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수석은 혁신관리수석비서관에 임명된 후 “정신없이 바빴다”고 말했다. 다른
수석실은 기존 업무를 계속하는 것이지만 혁신수석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수석은 이를 경제학자인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비유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업무여서 쉽지는
않지만 혁신 성과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접견실에서 이 수석을 만났다. 참여정부의 핵심
과제인 혁신에 대해 듣기 위해서였다. 혁신관리수석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설명은 명쾌했고 논리는 정연했다. 혁신에 대한 방향과 철학이 뚜렷했다.
그동안의 소감을 묻자 이 수석은 “TV를 켜면 잠깐 화면조정 시간이 있는데 지금
그런 시간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며 “빠르게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혁신관리수석실이 어떻게 혁신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혁신관리수석실에서 하는 일을 설명해 주십시오.
“혁신관리수석실에는
혁신관리비서관실·민원제안비서관실·제도개선비서관실 등 3개 비서관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부 혁신의 방향과 구체적 추진전략 수립 등 정부 혁신업무를
총괄적으로 관리하죠. ‘인터넷 신문고’나 ‘국민참여마당’ 등을 통해 수집되는
국민의 민원과 고충을 반영해 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제도 개선을 통해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리려고 합니다. 또 각 부처에서 운용하는 각종 민원 제도와 처리시스템의
개선업무를 통해 정부 민원 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주요한 과제로 생각합니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
-혁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혁신이란 한마디로 ‘창조적 파괴의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혁신을 위해 파괴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파괴나 변화만 있고
창조나 가치창출이 없다면 혁신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고장 나지 않으면 고치지
말라’는 것을 ‘멀쩡해도 고치라’로 바꾸는 것이 혁신의 핵심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파괴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산업사회에서 통용되던 가치·관행·규칙을
버리고 지식정보화사회에 맞는 가치와 문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예컨대 산업사회가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시대’였다면 지식정보화사회는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라고 할 수 있죠. 구시대 행정이 정지된 과녁에 화살을 쏘는
것이라면 지금의 행정은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속도와 유연성, 자율성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기동성을 확보해 창의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정부가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혁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급격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세계 질서가 글로벌 경쟁체제로 재편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지식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경쟁력이 핵심 가치로 등장했어요.
경쟁력은 변화와 혁신 없이는 나올 수 없습니다. 산업사회에서 옳다고 생각되던 가치·관행·규칙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죠. 지식정보화시대에 맞는 가치와 정신을 추구하는
창조적 파괴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 혁신은 2만 달러 시대
동북아 경제중심을 이루기 위한 핵심 전략이기도 하죠. 민간기업의 경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끊임없이 경영 혁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정부 부문은 그동안 혁신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 혁신을 더 이상 미루게 되면 정부가 국가 발전이나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될 것입니다. 과거 정부의 혁신은 구호성·이벤트성으로
주로 부조리 척결, 부패 방지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정부의 조직문화·제도·업무절차·조직구조·관리기법
등 행정 전반을 혁신해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부, 존재 이유가
충분한 정부로 다시 태어나려는 것입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최근 들어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혁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데, 그동안의 혁신과 관련한 성과를 말씀해
주십시오.
“공직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권위적이고 중앙집권적
지시행정에서 벗어나 국민의 입장을 생각하는 자율행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업무 처리의
투명성도 크게 높아졌죠.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성과로 승부하기보다 인연이나
연고를 찾아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사 등에서 우대받으려는 풍토가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능력이나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성과관리시스템이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시각에서는 공직사회 혁신이 미흡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혁신의
성과를 국민이 흡족하게 체감하기에는 2년의 기간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특히
지난 2년은 주로 중앙정부 수준에서 혁신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으로 혁신을 확산하고 실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성과가 여러 부문에서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조직 혁신보다 전반적인 문화나 마인드 변화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공직사회에
이런 분위기는 잘 조성되고 있는지요?
“조직(하드웨어) 혁신은 장관이나
혁신 리더들이 노력하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2년 동안 하드웨어 부문에 대한 혁신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죠. 그러나
선진 시스템과 인프라를 운용하고 작동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조직문화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일하는 방식과 사고, 조직문화를 새롭게 형성하는
소프트웨어 혁신은 하드웨어 혁신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됩니다. 일부
혁신 선도 부처에서는 혁신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아직 미흡한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혁신에 동참하지 않고는 조직에서 견디기 어렵다는 인식이
공직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어요. 그러므로 조직문화나 구성원들의 마인드도 빠르게
혁신될 것으로 보입니다.”
“혁신장관회의 구성 방안도 검토”
-지금은
달라졌습니다만 과거 국내외에서 우리 정부를 3류로 평가했습니다. 정부의 경쟁력을
민간기업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우리는
경제주체들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기업과 자본이
살기 좋고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국가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개방경제에서 정부 혁신의 목표는 우리 국민과 기업을 국내에 머무르게 하고 외국기업·자본·기술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일류 혁신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행정의 정보화·과학화·전산화
등 전자정부를 이른 시일 내에 실현해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또 과거 연공서열 위주에서 능력 위주로 인사를 혁신해 공직자들을 정예화·전문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공직자들이 자기 업무에 애정과 긍지,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 관리와 문화도 혁신해 나갈 계획입니다. 정부의 일류경쟁력 확보는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는 공직사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혁신을 통해 이루어낼
것입니다.”
-이 수석께서는‘혁신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조했는데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인천국제공항에 하루 400여 대의 항공기가 사고 없이
이착륙할 수 있는 것은 관제탑(Control Tower)에서 지시·조정·통제를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적은 비용을 치르면서 최대의 변화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 혁신 업무의 관제탑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정부 혁신 업무는
정부혁신위원회, 행정자치부 정부혁신본부 등을 중심으로 많은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들이 추진하고 있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관 간 마찰과 갈등을
없애고 협력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의
일류경쟁력 확보는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는 공직사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혁신을 통해 이뤄낼 것입니다."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할 정부 혁신업무는 무엇입니까?
“중앙부처
위주에서 지방자치단체, 지방 교육청, 정부 산하기관으로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혁신의 속도와 강도를 높여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정부 혁신을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국가 혁신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
혁신 역량을 높이고 관계부처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므로 혁신장관회의를 구성·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혁신의 최종 목표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중앙부처 공직자 위주로 혁신을 추진한 결과 국민이 혁신의 필요성이나
성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국민적 지지나 성원 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혁신이 될 수 있도록 홍보에도 적극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와 함께 혁신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환경을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경쟁력의
원천이 능력이나 창의성, 신지식이 아니고 연고나 인간관계라면 아무도 어렵고 힘든
혁신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조직 전반의 개방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혁신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혁신을 하다 보면 갈등과 저항은
필연적입니다. 각 기관이나 혁신 리더들이 혁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 장애물과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혁신적 조직이나 공직자들이 우대받을 수
있는 혁신 친화적 환경이 조성되도록 하겠습니다.”
“보상 없는 혁신은 성공하기 어려워”
-이
수석께서는 공무원의 혁신 참여를 위해서는 성과관리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씀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성과관리를 해 나갈 계획입니까?
“혁신은 리더의
열정에서 시작되지만, 혁신을 성공시키는 열쇠는 구성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나라나 기업들의 경험을 보면 혁신이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변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지 못한 데 있어요. 변화에
대한 조직의 냉소주의가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상 없는
혁신은 성공하기 어려워요. 성과를 낸 구성원에게 인사와 예산으로 적극적인 대우를
해 주고, 그렇지 않은 구성원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차별화가 혁신 동참을 유도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올해부터는 연초 대통령께 보고한 부처 업무계획을 대상으로 연말에 성과평가를
하게 됩니다. 우수 부처에는 정부 차원에서 예산과 인사상 보상이 뒤따를 것이며,
우수한 성과를 낸 구성원에게는 상응하는 보상도 이뤄질 것입니다.”
이 수석은 인터뷰 내내 혁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혁신관리수석으로 간다니까 주변에서 걱정하더군요. 첫번째는 대통령이 혁신
9단인데 5단도 안 되는 사람이 과연 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염려였습니다. 두번째는
혁신이라면 어렵고 고달픈 것인데 힘들겠다고 걱정하더군요. 아마 혁신이 과거처럼
부조리·부패척결만 하는 일쯤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혁신은 국민을
잘살고 발전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것인데 최선을 다해야죠.”
과거에는 국세청장을 지내고 나면 장관급으로 가는데 차관급으로 가서 서운하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 수석은 공직사회에서 계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직자는 얼마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경쟁력은
혁신에서 나오는데 이 업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고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자리에 있는 동안 되도록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윤길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