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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보훈정책을
펼쳐 왔다. 물질적 지원은 물론 국가 보훈 대상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정신을 선양하는 데 정책의 중심을 뒀다. 또 우리 역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이념을 초월한 ‘통합 보훈정책’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침 올해 5·18 행사에는 대한상이군경회(회장 강달신) 등 그동안 다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단체들이 대거 참여해 참여정부의 달라진 보훈정책을 실감하게
했다. 나라 사랑에는 이념과 상관없이 뜻이 같다는 점을 대내외에 알린 작은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박유철(67) 국가보훈처장은 지난해 9월 취임했다. 박 처장의 할아버지는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인 백암 박은식 선생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것이다.
박 처장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5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를 찾았을 때도 그는 “어렵게 시간을
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국가유공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상처가 아물어
새로운 살이 돋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국가 보훈정책은 물질적 보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새로운 보훈문화를 만들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올해 보훈 관련 주요 행사와 사업을
소개해 주시죠.
“국가보훈처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6월 한 달을 ‘추모의 기간’ ‘감사의 기간’ ‘화합과 단결의 기간’으로 나누어
특성에 맞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모의 기간(6월1~10일)에는 현충일(6월6일) 추념식, 시·군 지역 현충탑
참배 등을 실시하는데 이번 추념식은 전몰군경 유족과 한국전쟁 참전 우방 사절,
사회 각계 대표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월6일 오전 10시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감사의 기간(6월11~20일)에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에 대한 위로·격려
행사와 모범 국가유공자에 대한 각종 포상을 실시합니다. 또 청소년들에게 호국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호국백일장 및 웅변대회를 열고, 보훈음악제·예술제·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도 전국적으로 열립니다.
화합과 단결의 기간(6월21~30일)에는 6월25일 오전 11시 장충체육관에서 제55주년
한국전쟁 기념식을 거행하고 우방 참전용사를 초대해 전적지 탐방 등 행사와 원로
참전용사들에 대한 위로 행사를 가질 계획입니다.”
“국가 보훈이 선진 한국의 정신적 구심점 되도록 할 것”
국가보훈처는
올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사랑 큰 나무’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21쪽
상자기사 참조). 국가유공자의 공헌, 번영과 희망 등의 메시지를 담은 배지 40만
개를 제작해 국민에게 배포하기로 한 것이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함께
과거를 미래를 여는 통로로 만드는 통합의 정신을 확산하기 위함이다. 박유철 보훈처장의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과 공헌의 바탕 위에
이룩되었습니다. 국가 보훈이 곧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국민통합의
정신이며 국가발전의 토대로 승화해야 합니다. 영국 등 선진국도 ‘poppy day’라
하여 매년 특정일에 붉은 양귀비를 가슴에 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보훈가족의
자긍심과 국민의 보훈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촉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화와 혁신을 지향하는 참여정부에서 보훈정책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올해 보훈정책의 큰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올해는
광복 60년을 맞아 독립·국가수호·민주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국가 보훈이 선진 한국 건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독립유공자를 대대적으로 발굴, 포상하고 독립정신을 민족의 정신적 자산으로 계승하기
위해 독립운동사 편찬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을 국민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고, 효창공원을 민족공원으로 조성해 나가겠습니다.
「국가보훈 기본법」이 지난 5월3일 국회에서 의결됐습니다. 후속 조치로 신규
보훈 대상 결정 등 주요 정책 심의를 위한 ‘국가보훈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보훈발전
5개년계획’ 등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보훈가족 고령화에 따른 의료·복지
서비스 강화도 중요합니다. 3차 진료 기능을 갖춘 보훈중앙병원을 2009년까지 건립하겠습니다.
또 범정부적으로 제대군인 지원 기반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지난해 설치된 ‘제대군인지원위원회’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 제대군인 지원정책을 수립하겠습니다.
또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전문 인력을 확충해 취업·창업 지원 범위를 넓히고,
제대에 대비한 사회 적응 교육을 대폭 확대할 예정입니다.”
박 처장은 역대 보훈처장들과 달리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과 그 가족의
자긍심을 고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물질적 보상보다 국민 사이의 자연스러운
호국문화 형성과 자긍심 고취 등이 중요하며, 정책의 초점도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는
‘보훈 소신’을 밝혔다.
“현재 물질적 보상이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충분하게 못해 드려 늘 죄송한
마음이지요. 하지만 이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보훈정책이 보상
차원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한 단계 높여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말씀했지만 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면 무엇합니까? 나라의 정신이 제대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희생·공헌정신 느끼도록 제도 개선”
-광복 60년을
맞아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대대적으로 포상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건국 이후
현재까지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정부에서 포상한 인원은 총 9,694명입니다. 그동안
독립운동 사료를 수집·발굴해 포상했지만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에 비해
포상 인원이 적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난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분들도 포상할 수 있도록 심사 기준을 재조정했습니다.
더욱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독립운동 사료 발굴과 분석·정리를 위해 근현대사
분야를 전공한 석·박사급 전문가 15명으로 ‘전문사료발굴·분석단’도
구성했습니다. 그동안 광복절에 한 번만 포상하던 것을 올해는 지난 3·1절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했고, 11월17일 제66회 순국선열의 날에도 포상할 계획입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올해에만 500여 명이 새로운 포상자가 될 것입니다.”
앞서 박 처장이 언급한 대로 지난 5월3일 「국가보훈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훈을 총괄하는 법규범이 제정됨으로써 보훈의 목적과 이념을 종합적으로
규정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국가 보훈의
중요성을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 5·18민주유공자 등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보훈 대상으로 편입될 때마다 개별 법률을 제정해 왔다. 이로 인해 보훈의
원칙과 기준에 통합성이 떨어지고 정체성 논란이 일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부터 각계 전문가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민관 공동으로 공청회와 워크숍을
개최한 끝에 보훈 기본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보훈 기본법」 제정으로 보훈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5년마다 관계부처 협의와 국가보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 보훈 발전 기본 계획이 새로 수립될 것입니다. 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민관 공동 국가보훈위원회를 설치해 신규 보훈 대상 범위 결정, 보상 원칙 설정
등 주요 보훈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와 자문을 할 것입니다. 또 ‘보훈문화의
창달’이라는 별도의 장을 마련해 공훈 선양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는 나라사랑 정신 교육, 공훈 선양 시설 건립, 의전상 예우, 기념행사,
국립묘지 안장, 국제교류·협력 강화 등이 포함됩니다. 특히 희생·공헌자의
이름을 쓸 수 있는 대상을 도로·거리·광장·공원 외에 공항·항만·철도역
및 지하철역까지 확대해 생활 속에서 희생·공헌자의 나라사랑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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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에 대한 노후복지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15만6,000여 명입니다. 전체 대상자의 52%로 절반을
넘습니다. 지난 2월 보훈처가 국가유공자 노후복지 수요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가유공자나
유족 중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요양이 필요한 대상자가 2만4,700여
명, 요양시설 보호가 필요한 분이 3,120명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올해 안에 국가유공자 노후복지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입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운영하는 노후복지 시설은 수원에 있는 250명 수용의 보훈원
단 1곳뿐입니다. 앞으로 5개 지역(수원·부산·광주·대구·대전)에
각각 200명씩 수용할 수 있는 노인 전문 요양 시설 1개와 양로·요양시설 4개를
순차적으로 건립하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노인성 질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무의탁
독거노인 등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부양의무자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는 전문
간호사를 통한 가정간호 서비스, 보훈 도우미를 통한 가사·간병 서비스 제공
등 복지 서비스를 점차 확대할 생각입니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이 노후를
더욱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보훈정책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것 중 하나가 제대군인에
관한 것이다. 제대군인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찾아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정책의 목표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군 인적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군에서 습득한 노하우를 사회 일자리와 연계하고, 자격과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제대군인 일자리 마련에 최선”
또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대군인지원위원회’를 설치해
공공·민간 부문 일자리 제공 등 5개 분야 41개 과제의 제대 군인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올해는 제대군인지원위원회를 법제화하고, 20년 이상 장기 복무한 제대군인을
대상으로 했던 생활안정지원제도를 10년 이상 복무자에게까지 확대하기 위해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 중이라고 박 보훈처장은 설명했다.
“제대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이를 위해 국가보훈처는 2004년
2월 제대군인지원센터를 설립했습니다. 공무원 3명, 민간 전문 컨설턴트 18명 등
총 21명이 진로상담·취업지원·창업지원·순회상담·행정지원
등 5개팀으로 나뉘어 제대군인의 일자리 찾기를 도와줍니다.
그동안 지원센터는 진로상담(1,458명)·취업지원(279명)·창업지원(32명)
등의 활동을 벌였습니다. 또 1,200여 명에게 직업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을 지원했고,
제대군인 웹사이트(www.vnet.go.kr)를 통해 각종 정보도 제공하고 있죠. 앞으로 지원센터를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제대군인에 대한 총괄적 종합지원기구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독립기념관이 국가보훈처 관할이 됐는데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독립기념관은
올바른 독립운동사 정립의 산실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청소년 등 일반
국민에게 나라사랑의 마음을 심어주는 상징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지난해 12월15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관련 정부 기관과 독립기념관 등
유관 단체들로 구성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팀을 구성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독립기념관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과거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발전한 조국, 그리고 성숙한 내가 존재하는 것은 국가유공자의 헌신과
희생 덕분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매년 다가오는 6월이지만, 올해 호국·보훈의
달은 의미가 큽니다. 보훈문화는 온 국민의 참여와 관심이 있어야만 꽃피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소중한 정신을 계승하고, 보훈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당부드립니다.”
인터뷰 끝 무렵에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국가보훈처장을 맡고 있는 데 대한 감회를
물었다. 박 처장은 “원래 경제 전문가였는데 독립기념관장(1995년9월~2001년9월)을
맡고부터 역사나 민족정신 문제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됐다”며 “근무하는 동안 보훈정신을
높이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IGHT]윤길주 기자[/RIGHT]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1938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상해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이며, 아버지는 박시창 전 광복회장이다. 또 부인
양준자 여사의 할아버지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양기탁 선생이다.
양가 모두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박 보훈처장은 서울고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원에서 석사를, 영국 헐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건설교통부 서기관으로 특채돼 공직에 발을 디뎠으며, 이후 광복회
부회장을 지냈다. 1995년 9월 제4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돼 2001년까지
연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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