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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대하 사극은 국내 정치상황과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만큼 현재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불멸의
이순신>은 분명 분석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지도층이 중심을 잃고 표류할 때 충만한 애국심과 역발산의
용기, 불굴의 신념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그는 학연이나 지연,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원리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으며 구습을 과감히 타파하고 철저한 준비와 개혁
의지로 부하들을 이끌었다. 그런 이순신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지도자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4시간 달려 찾은 전북 부안군의 <불멸의 이순신>
촬영 세트장. 정영철 총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하던
‘수루(水樓)’에서 기자를 맞았다.
-이순신 역을 맡은 김명민 씨가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사극 출연 경험이
없던 그를 선뜻 캐스팅한 특별한 배경이라도 있었습니까? 이 배역에는 출연을 희망하는
배우가 많아 선정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복수
후보를 놓고 저울질하던 중 연출진이 저에게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 출연했던
김명민 씨를 제안했습니다. 김명민 씨를 불러 조선시대 갑옷을 입혀놓고 보니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과 똑 닮았더군요. 사극 경험도 없고 무명이나 다름없었지만
제가 밀어붙였습니다.”
-드라마 초기, 이 드라마를 즐겨 보던 제 주변에서도 주연 캐스팅이 잘못되었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명민 씨의 외모와 음성을 경험하는 순간 어디에
저런 진주가 숨어 있었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배우에게 기본은 발성 아닙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김명민 씨에게 오디션을 시켜 보니 이순신의 음성이
묻어나옵디다. 이후 제가 주문을 많이 했습니다. 멜로물과는 다르다, 대사를 어떤
때는 천천히 씹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김명민 씨가
툭툭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 아닙니까?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감탄하기 시작했지요.”
-대본도 예사롭지 않더군요. 부산포해전 직전 선조의 출전 명령을 이순신이
듣지 않자 조정에서 좌의정 윤두수를 보내 이순신을 끌어내리려고 하잖습니까? 이때
윤두수가 이순신의 부하 장수들을 협박하자 이순신의 책사 권준이 윤두수에게 이순신과
보낸 ‘시간’ 때문에 이순신을 배신할 수 없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정도
내공 있는 대사를 쓰는 작가의 역량이 궁금합니다.
“배우도
그렇지만 작가도 새로 발굴한 경우입니다. 작가 윤선주는 3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여성이라는 점, 체험이 많지 않은 젊은 신예인데도 대하 사극을 소화해 내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윤 작가는 한마디로 목숨 걸고 취재해
대본을 쓰고 있습니다. 극 중반인 50회까지 박진감이 떨어지고 늘어진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이는 당시 집필 작가가 4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50회 이후부터는
윤 작가가 도맡았고, 이후 감동적인 명대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이순신의 리더십은 현대인들에게도
연구감입니다. 정 감독 개인적으로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순신은
무인으로, 장수였지만 문인이었다면 정승 자질도 있는 분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갖춘 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이순신을 존경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주로 대하 사극만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드라마
연출을 했습니다만, 사극은 <역사 라이벌>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대하 사극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를 계속 제작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대하 사극만 맡은 까닭이라도 있습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경험 때문이었나 봅니다. 대하 사극 총감독 자리가 별것 아닐 것
같지만 회당 제작비 3억∼5억 원을 최종 결재해야 합니다. <태조 왕건>의 야외
세트장을 문경과 안동댐에 만들었는데, 이런 세트장 위치와 건축 방법도 제가 결정했습니다.
하다 못해 배우들이 말을 탈 때 날뛰지 않도록 각설탕을 주라는 주문까지 해야 합니다.
드라마 성격상 부상이 속출하는데, 이런 안전사고도 제가 모두 책임집니다.”
[B]세트장 무너져 4급 장애인 되다[/B]
-힘든
점이 한 둘이 아니겠습니다?
“최근 5년 동안 대하 사극만 하다 보니 신경을
너무 많이 써 머리가 다 빠졌습니다. <태조 왕건>을 연출할 때는 1년5개월
만에 당뇨가 찾아오더군요. <무인시대>를 연출할 무렵에는 세트장이 무너져
서까래에 깔려 왼쪽다리 무릎살이 다 떨어지는 부상을 입었지요. 당시 제작진 15명이
부상했고 저는 기절해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치료 결과 4급 장애인이 되어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살아난 것만도 천운이지요. 대하 드라마는 이처럼
부상 위험이 있어 항상 긴장해야 합니다. <태조 왕건>에서 견훤 역을 맡았던
서인석 씨는 목 부분에 불화살을 맞아 3도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 이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1945년 해방공간에서 1950년
한국전쟁까지 다룬 대하 드라마를 기획 중이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몇 년 연기될
것 같습니다. 일단 <불멸의 이순신>이 104회로 종영되면 당분간 좀 쉴 작정입니다.”[RIGHT]최영재
기자[/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