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벗 삼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본능과 같다. 사무실 책상에 놓인 화분들은 그런 바람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는 작은 화분 하나 관리하기도 벅차다. 아큐플랜트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탄생했다. 어항과 화분을 결합한 아큐플랜트는 둘의 공존으로 화분 관리에 일대 혁신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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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플랜트는 식물과 물고기를 함께 키울 수 있는 어항 겸용 화분이다. 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를 혼합한 제품으로 회사 이름인 ‘하이팟(Hypot)’ 역시 수경(Hydroponic)과 어항(Pot)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어항과 화분을 결합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장점은 관리가 쉽다는 것이다. 어항의 수분 덕에 화분에는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되고, 생태환경 개선으로 어항 청소도 석 달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 여상철(53) 하이팟 대표는 아큐플랜트를 개발하며 숲과 호수를 집 안으로 들인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식물과 물고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의 취향대로 DIY가 가능합니다. 어떤 숲을 조성하고 어떤 호수를 만들 것인지 구상하는 재미도 쏠쏠하죠. 조합에 따라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큐플랜트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큐플랜트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제품이다. 산소공급기로 저소음 USB 소형 기포기를 사용해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고, 소음 역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작다. 화분의 뿌리가 자라 어항까지 내려오면 어항의 생태환경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 둘의 시너지 덕에 3개월 이상 청소를 하지 않아도 백탁 현상이 없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풍부한 천연 가습 효과다. 화분과 어항에 뚫린 세 개의 구멍에서 증발하는 물 자체로 가습 효과가 충분하다. 물론 가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다면 어항 구멍에 스틱 가습기를 꽂아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도 친환경 가습기가 완성된다. 자연을 통한 힐링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다.
숲·호수·물고기를 집 안으로
시작은 단순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아내와 도매시장을 방문했을 때 깡통에 담은 물에서 물고기와 선인장을 키우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다. 물고기와 식물을 함께 키우는 것도 신기했지만, 물과 상극이라는 선인장을 어떻게 물속에서 키울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선인장 농장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처음에는 안 가르쳐주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몇 번 가서 조르니까 몸체에만 물이 닿지 않으면 된다고 알려주셨죠. 물이 뿌리에만 닿으면 충분히 크는데, 선인장 몸에 물이 직접 닿으면 녹아서 이틀이면 죽어버려요.”
당시 아내의 꽃집 수익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구상 중이었던 터라 어항과 화분의 조합이 뇌리에 박혔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원형 어항에 물고기를 넣고 금호선인장을 올려놓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은행과 우체국 창구에 시험 전시를 했다.
처음에는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 문제였다. 금호선인장의 가시가 워낙 크고 억세 화분을 들고 먹이를 주는 일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화분에 틈을 만들어 빨대로 물고기 먹이를 넣어줬지만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먹이를 주기 위한 구멍을 냈다. 먹이 문제가 해결되니 이번엔 어항이 뿌옇게 흐려지는 백탁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산소 공급을 위해 두 번째 구멍을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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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두 개를 뚫고 나니 청소에 사각지대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구멍을 뚫게 됐죠. 어항에 있는 세 개의 구멍은 문제 해결의 증거입니다. 쾌적한 어항 유지를 위한 최적의 개수죠. 원가 상승과 안전성의 문제로 그 이상의 구멍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구멍 뚫린 어항 외관에 대해 디자인권, 실용신안권, PCT국제특허출원까지 마친 상태다.
창업의 핵심은 1% 아이디어와 99% 연구·개발
여상철 대표는 프로그래머 출신이다. 보험회사 전산실과 화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일을 해왔지만 제조업은 처음이었다. 꽃집을 운영하는 아내 덕에 여러 화분을 시도하고 심는 부분만 수월했을 뿐 제품 생산부터 문제 해결까지 모두 직접 부딪혀가며 해결해야 했다. 어항을 만드는 일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제조업이 무너진 탓에 어항의 국내 생산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1만 개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국내에서는 10만 개는 돼야 생산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중국에서는 웬시라는 도시 전체가 어항만 만들고 있더군요. 그때 우리나라 제조업이 버틸 수 없었던 이유를 몸으로 체감했습니다.”
어항의 물이 흐려지는 백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여과기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시판 제품을 이용하려다가 성에 차지 않아 아예 맞춤형 여과기까지 개발하게 됐다.
“별도 생산도 힘들지만, 작은 부분을 끊임없이 수정·보완하는 일이 정말 어렵더군요.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지만 고무호스가 잘 끼워질 수 있도록 홈을 파고, 물 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기둥의 길이를 5mm 정도 늘리고 필터에 구멍을 내는 사소한 일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죠.”
물론 기존의 일이 빛을 발할 때도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동제어 시스템을 개발 중인데, 전공 분야라 물 만난 고기처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자동제어 시스템은 물의 온도와 탁도, 용존산소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제공하고, 필터 교체 시기까지 알람으로 알려준다. 물의 온도가 영상 5℃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히터를 틀고, 2~3일에 한 번씩 자동 분사를 해 화분 관리를 더 쉽게 할 예정이다.
“식물은 잎으로 숨을 쉬는데 잎에 먼지가 많이 쌓이게 되면 기공이 막혀서 잎이 마르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잎에 분무를 하는데, 장기 여행으로 관리하기 어려울 때는 스프레이가 가능한 봉을 꽂아서 며칠에 한 번 분사할 것인지 설정해놓으면 자동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이것이 실현 가능해지면 그때는 아큐플랜트를 즐기기만 해도 좋습니다.”
시니어창업은 청년창업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상철 대표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면 실패했을 때 가정이 무너져서 삶의 바탕을 잃어버리게 되죠. 시니어 창업자들은 가정을 담보로 하는 일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사업 아이템이 아무리 좋더라도 초기 1~2년은 정부 지원으로 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창업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사업자금뿐만 아니라 아이템 검증부터 멘토링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틀을 만들게 됩니다.”
남은 재산을 모두 투자해서 위험한 도전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 경험과 전문성, 창의성, 열정만 있다면 정부의 창업지원정책을 통해 중년의 나이에도 도전해볼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창업 지원금은 굉장히 풍부하다. 자금만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공간, 컨설팅, 마케팅, 디자인, 인건비 지원 등 종류도 다양하다. 예비 창업자라면 준비 단계에서는 보육센터나 인큐베이팅센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니어창업센터’가 대표적인 곳이다. 창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만 40세 이상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경력과 전문성을 지닌 창업자들을 지원한다. 사무 공간, 업무 공간, 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세무, 회계, 법률 전문가들이 멘토링도 해준다. ‘하이팟’이 입주한 ‘성북구 시니어기술창업센터’의 경우 전문가 멘토링, 창업 교육, 시설 지원, 입주 업체 간 네트워킹 등을 활용해 성공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청년 창업자들이 열정을 가졌다면 우리 시니어 창업자들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죠. 그동안 쌓았던 다양한 경험들을 활용하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떠나서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자금과 인력, 마케팅 등 모든 자원이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해서 사업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정부 지원은 보통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방식으로 지원과 보호를 아끼지 않는다. 제휴나 협력에도 훨씬 유리하다. 정부 지원 업체는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할 때 중요한 프리미엄이 될 수도 있다.
시니어창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정부 지원
“처음에는 아토피가 있는 아이 때문에 키우게 되었어요. 천연 가습 효과도 마음에 들었고, 보기에도 예쁘잖아요. 한 번에 두 가지를 키울 수 있어서 좋았는데, 키워보니 두 배 이상의 기쁨이 있더군요.” -구매자 김현주(35·경기 남양주)
“어버이날에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께 카네이션이 심어진 아큐플랜트를 선물했어요. 할머니께서 이런 것도 있냐면서 매우 신기해하시더라고요. 얼마 전에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요즘 얘들 보는 재미로 지낸다고 하셨어요.” -구매자 이영진(23·서울 중랑구)
여상철 대표에게 구매자들의 후기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주었다. 이런 기쁨과 감동을 위해 해외 판매는 당분간 직접 발로 뛸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시장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는데 종교 때문인지 개와 고양이보다 물고기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베트남에서도 중류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집 안에 수족관을 들여놓는다고 합니다. 더운 지역의 특색도 반영된 것이겠죠.”
한 대형 마트의 주선으로 해외 판매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뜨거운 관심으로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아큐플랜트 제품은 사이즈에 따라 5만~15만 원에 판매되는데,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무척 고가임에도 많은 구매가 이루어졌다. 이런 잠재력 덕분에 2015년에 설립된 ‘하이팟’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400만 원에 불과했던 2016년 매출이 1년 만에 1억 2000만 원으로 뛰었고, 올해 예상 매출은 어느새 5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좋은 기운이 서린다고 한다. 아큐플랜트에는 적어도 이런 기운이 가득하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개발이었고, 개발 후에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쁨을 함께했다. 그래서 여상철 대표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큐플랜트를 매개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우리 제품으로 누군가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고 잠시라도 위로를 주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것은 ‘하이팟’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