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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을 만나러 가는 도중 라디오에서 관광객들이 독도 땅을 처음 밟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월28일 오전 10시10분쯤, 입도 제한이 해제된 지 닷새 만의 일이다. 유 청장의 집무실에는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선명히 표기된 옛 세계지도가 하나 걸려 있다. 고지도는 그가 “유럽여행을 할 때 우연히 입수한 것”이라고 했다.
마침 그날은 유 청장이 정부대전청사 직원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문화강좌를 여는 날이기도 했다. 월 2회씩 격주로 열리는 그의 강연은 전국 각지에서 800여 명의 수강생이 쇄도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광주·부산·울산은 물론 제주도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유 청장은 1시간30분여 인터뷰 시간 내내 특유의 달변으로 문화재 정책의 혁신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문화재 행정의 기본 방향은 “문화유산 속에 서려 있는 인문정신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유산의 상속자가 아닌 중간관리자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문화재 보존정책이나 무형문화재 제도 등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했다는 독도 시설 리모델링 안을 취재진에게 선보였다. “계단과 접안시설은 4월 안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내년이면 독도 시설물 전체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는 흥분된 어조로 “이탈리아 카프리섬의 건축물처럼 아름답게 지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문화재청장이 된 지 6개월여가 지났습니다. 문화재 행정의 비판자에서 실제 집행자가 됐으니 소회가 남다를 텐데요.
“요즘은 아침에 화장실에 들르지 못하면 업무를 끝내고 퇴근 후에야 겨우 일을 치를 정도입니다.(웃음) 그만큼 바빠요. 일례로 매장문화재 발굴 규모가 10년 전보다 10배로 늘어났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150군데 현장에서는 발굴이 한창 진행되고 있어요. 국보나 보물 지정, 천연기념물 보호 말고도 일이 많아요. 문화재나 사적 같은 직접관할구역이 3억4,000만 평인데, 전 국토에 묻힌 문화재, 바다에 빠져 있는 보물선 200여 척, 바닷속에 있는 수중문화재도 문화재청 관할입니다. 한마디로 날아다니는 새에서 무형문화재, 심지어 늙은 나무에 이르기까지 우리 담당입니다.”
-독도가 문화재청 관할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국민도 많을 것 같습니다만.
“저도 청장에 부임한 뒤에야 알았는걸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라 그런 겁니다. 정부 부처 가운데 경찰청·국세청 다음으로 민원이 많은 곳이 여깁니다. 문화재가 되면 사유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해요. 이런 민원을 해소하는 것이 커다란 임무 중 하나입니다. 경주나 부여, 청계천 복원사업은 물론 사찰의 기와 하나 얹는 것도 청장의 관할이거든요.”
-오늘 독도에 관광객들이 처음 입도했답니다. 지난 3월19일 주무청장으로서 독도를 방문하셨는데, 현지에서 본 독도는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독도에 가 보니 일반인 관광을 위해서는 시설이나 환경이 아주 열악하더군요. 문화재청 건축 자문위원인 건축가 승효상 씨와 함께 갔습니다. 독도 방문 후 섬 안의 건축물들을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가 계단에서 난간까지 새로 디자인할 것입니다.”
[B]“독도에는 백두산처럼 영기(靈氣)가 서려 있어”[/B]
-독도의 생태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독도관리기준에 따르면 섬의 환경 보존을 위해 1회 입장객 70명, 하루 입장객 140명으로 제한한다고 들었는데요.
“금강산과 백두산에는 사람을 끄는 영기가 있잖습니까? 독도도 그렇습니다. 독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섬 주변을 돌기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기분이 듭니다. 가본 사람들은 모두 그런 반응입니다. 게다가 괭이갈매기·씀새 같은 바다새들의 서식지예요. 나무가 없는 이유는 돌산이어서가 아니라 새의 배설물 때문입니다. 독도가 천연기념물인 것도 명승지이면서 이렇게 바다새의 서식지라는 점 때문입니다. 5만5,000여 평 중 개방하는 곳은 접안시설 600평, 890m의 탐승로, 등대와 초소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은 사람이 가지 못해요. 70명은 최대가 아니라 최소 인원입니다.”
-관광객 수를 제한한 것에 대해 해운업체나 관할 지자체에서 불평이 나오는데요.
“문화재청이 해야 할 일은 독도 같은 천연보호구역을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독도는 방파제가 없어 풍랑이 세면 접안하지 못하고, 배도 500톤급 이하만 갈 수 있어요. 울릉군에서는 최소한 200명으로 허용 관광객 수를 늘려 달라고 하지만 벤치도 없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갈 하나, 풀 한 포기도 건드리면 안 되는 곳입니다. 4월부터 5월까지는 괭이갈매기가 짝짓기하는 기간인데, 그때는 새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사람까지 공격합니다. 독도에서 꽹과리라도 치면 새들이 모두 날아갈 겁니다.”
-독도 내 시설의 리모델링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승효상 씨가 디자인하고 있는데, 일단 계단과 접안시설은 1차로 4월 말 안에 될 겁니다. 초소나 등대를 손보는 작업은 내년이면 끝날 겁니다. 4월30일 독도 정식 관광이 시작되면 관광지역은 울릉군에 넘겨주고, 나머지 보호구역은 문화재청이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새들이 피해보지 않게 해야죠.”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일본을 강한 톤으로 비판하셨는데, 현재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과 문화나 경제교류는 끊을 수 없을 만큼 긴밀합니다. 제가 ‘한·중·일 국보 300점전’을 제안했는데, 중국에서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오지만 일본은 자꾸 시간을 끌어요. 세 나라의 국보를 함께 전시하면 세계가 놀랄 것입니다.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리더가 될 도덕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에 반성을 해도 믿을까 말까인데,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느 나라가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혁신’이 공무원 사회의 최대 화두인데요. 문화재청의 혁신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제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가졌던 문화재 행정에 대한 불만을 행정지시로 만들다 보니 지금은 그만큼 손댈 데가 많죠.(웃음) 공무원들은 지침이 명확하면 업무를 신속 정확하게 합니다. 혁신적인 기획을 해서 내려주면 신속하게 이뤄지는 거죠. 정부혁신이 성공하려면 부서 책임자를 혁신적인 사람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혁신 사례를 설명해 주시죠.
“고궁과 왕릉 개방 문제로 설명해 보죠. 이런 곳은 지금까지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했는데, 이제는 개방하면서 보존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이번에 개방된 경회루가 대표적입니다. 47년 동안 개방하지 않다 개방하니 매일 닦아야 합니다. 목조 건축물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금방 낡아 버립니다. 왕릉도 마찬가지예요. 출입금지선 밖에서 능을 올려다보면 모두 똑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능 위에 올라가 보면 특별한 배치라든가 조경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왕릉은 소풍가는 곳이 아니라 전통시대 죽음의 공간을 장식했던 최고의 건축물입니다. 문화재를 그러한 건축과 조경과 인문적 정신으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되는 겁니다.
회의를 줄이는 식이 아니라 문화유산 속에 서려 있는 인문적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혁신하겠다는 것이죠. 이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더 많은 문화재를 등재하고, 문화재 주변 편의시설을 최고급으로 바꾸어 문화재의 가치를 한 차원 더 높여야 합니다. 국내 최고의 건축가들이 경복궁과 창덕궁의 화장실을 설계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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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문화재는 원형에 맞게 복원하는 것이 원칙”[/B]
-광화문 현판 교체 등 문화재 복원 문제는 어떻게 푸시렵니까?
“문화재 복원은 원형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광화문 현판을 교체해야 한다는 데는 별 이론이 없습니다. 문제는 시기인데, 가능하면 광복 60주년 전에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광화문의 경우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이곳의 복원사업은 경복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과 연결돼 있습니다. 태종 때 문신인 하륜이 충북 청풍군수의 부탁으로 정자의 비문을 써주면서 ‘한 고을의 정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그 고을 수령된 자의 마지막 일(末事)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 고을에 가서 그 고을의 정자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면 그 고을의 행정과 풍습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게 마지막 일이 될 수 있느냐는 얘기죠. 선진한국으로 가려면 문화가 따라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문화가 이끄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지요.”
-거시적 정책보다 세밀한 행정을 펼치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추사 김정희가 미술을 올바로 보려면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 즉 부릅뜬 눈과 혹독한 세리(稅吏)의 손끝이 필요하다고 했죠. 언론이 무서워 못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느 언론에서 경주의 석탑에 보호각을 씌우지 않고 방치했다고 비판했는데, 돌은 통풍이 잘 되고 햇볕을 받아야 건강합니다. 보호각 씌웠던 불상은 이끼가 끼면서 손상이 심해졌습니다. 말하자면 이제까지의 문화재 행정이 일차방정식을 푸는 식이었다면, 저는 미적분으로 풀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언론도 이제는 미적분을 알고 비판해야죠.”[RIGHT]김재환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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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