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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볼일이 많으신가 봐요. 대통령 옆에서 가방도 좀 들어주고 하면 좋겠는데…. 장관들이 저보다 더 바쁜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4일, 인도를 방문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현지 교민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 장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한 뒤 궁금증이 발동해 당시 ‘바쁜 장관’ 목록에 끼었던 이희범 산자부 장관에게 그 시각의 행적을 물어보았다.
“그때는 인도석유가스 장관을 만나 포스코 인도제철소 건설투자를 논의하던 시각이에요. 자원외교의 주무장관으로서 현지에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거든요.”
이 장관은 베트남 방문 때는 보홍푹(Vo Hong Phuc) 계획투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아침 7시에 회담을 갖기도 했는데, ‘조찬’ 개념이 없는 베트남 관료 방식대로 회담은 장관집무실에서 기업인들과 함께 서류 더미를 쌓아두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SK텔레콤의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서비스 계약 조건을 좀더 유리하게 바꾼 것도, 한국통신이 베트남 초고속망 건설 사업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 자리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순방 뒷얘기를 무용담처럼 풀어놓는 그에게 인터뷰의 첫 질문을 ‘자원외교’로 꺼내지 않는다면 결례가 될 것 같았다.
- 카자흐스탄·러시아와의 자원외교에 이어 이번 인도-베트남 순방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는 언론 평가가 나왔습니다. 주무장관으로서 이번 외교 성과를 평가해 주십시오.
“인도는 자원 보유나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 볼 때 한마디로 거인입니다. 베트남은 중국 다음으로 우리 기업의 투자가 많은 나라지요. 이들 나라와의 자원외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원 소비대국이자 보유빈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자원 확보는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건설이나 미얀마 유전 공동 개발 등을 본격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평가받을 만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인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다녀오셨는데 그들 나라의 어떤 잠재력을 보셨습니까?
“역시 풍부한 자원만큼 부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킬리만탄주(州)의 파시르 탄광이라는 곳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부럽더군요. 30cm만 흙을 파면 그냥 그대로 쓸 수 있는 유연탄이 나오는 거예요. 인도네시아가 부럽기도 하고, 우리 자원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인도음식만큼은 별로 부럽지 않더군요.(웃음) 정상 만찬에서 인도 고유 음식을 내놓았는데 저도 그렇고, 대통령 내외께서도 거의 드시지 못했습니다.”
[B]“에너지 절약형 신공정 기업, 전폭적인 지원 방침”[/B]
- 지난 4월 장관께서는 “유가가 2분기에는 안정세를 보일 것이고, 강제적인 소비절약은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4분기에 접어든 지금 50달러를 넘는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은 강제적인 소비절약이 필요한 때라고 보시는지요?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
“강제적인 소비절약은 에너지 수급 차질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큰 경우에만 취할 수 있도록 법 규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석유를 사오지 못해 수요를 충당할 수 없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높은 유가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수급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고유가 상황을 기회로 삼아 에너지 이용의 효율화와 함께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제적인 소비절약은 국민에게 고통을 강제하는 최후의 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 말까지 ‘에너지원단위 3개년계획’을 수립할 계획입니다. 우리 경제 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체질개선해 가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 ‘에너지 저소비형’ 체질개선에 대해서는 특히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유가시대에 기업의 몫은 무엇이고, 정부의 지원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기업이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전환하려면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입니다. 노후 시설을 개체하고 에너지절약형 신공정을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됩니다. 경영자가 마인드를 갖고 추진해 나가면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노력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도 지원책을 펴나가겠습니다. 이번 달부터 18개의 에너지 절약 혁신 공정과 고효율 건축 기자재 5개를 투자세액 공제 대상에 포함한 것이 그렇습니다. 또 지난 9월에는 에너지 절약 전문기업에 대한 지원금리를 종전 5.25%에서 3%로 낮추는 정책도 펴고 있습니다. 내년 한 해 에너지 절약 분야 예산도 5,000억 원을 잡아뒀습니다.”
- 에너지 절약도 중요합니다만 ‘자주 원유 공급률’을 높이자는 말 역시 유가가 오를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현재까지 얼마나 추진돼 왔습니까?
“우리나라는 1981년 인도네시아 마두라 광구를 시작으로 해외 석유개발 사업에 꾸준히 참여해 왔습니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고 있지요. 지금은 세계 22개국에서 55개의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개발한 원유 매장량은 우리나라 1년 소비량인 8억 배럴에 약간 못 미치는 6억6,000만 배럴에 달합니다. 지금은 비록 3%의 자주공급률을 보이고 있지만 2010년 10% 목표 달성이 먼 얘기만은 아닙니다.”
- 평소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지론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제조업 분야의 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여전히 낙관론을 유지할 만한 상황으로 보십니까?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제조업은 국내 총생산의 29%, 고용의 19%, 수출의 85%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이른바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말은 제가 자주 쓰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현재의 공동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감소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조금씩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공동화 현상은 경제 발전에 따라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다만 제조업의 고부가가치를 꾀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신기술의 접목 등 산업의 복합화를 통해 고부가 가치산업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B]“성장동력산업 인력 양성 적극 지원”[/B]
-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견인차로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는 수출을 꼽습니다. 얼마 전 장관께서는 “수출의 호조세는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하반기 수출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으셨던데요, 하반기 수출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수출증가율 한 자릿수’ 얘기는 고유가가 계속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긴축정책 등 불안 요인을 감안할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시장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고, 또 오래가지도 않을 것으로 봅니다. 지난 9월 한 달 수출액은 210억 달러로, 월간 200억 달러 대를 다시 회복했습니다. 수출액증가율도 23.5%여서 당분간 한 자리로 뚝 떨어질 걱정은 없어 보입니다.”
- 정부가 발표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의 추진 현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10가지 성장동력산업 가운데 산자부가 주관하는 것은 디스플레이, 차세대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등 5개 분야입니다. 산업마다 책임지고 기술 개발을 추진할 ‘기업형 사업단’을 꾸렸습니다. 또 분야별로 산학연(産學硏)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개발을 추진중입니다. 지난해에는 대기업만 32개가 참여했습니다.”
- 최근에는 이들 성장동력산업 분야의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는데요?
“사실 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산자부의 5개 분야에서도 5만2,000여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기부도 얼마 전 박사급 인력만 1만2,000명이 부족하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대학별로 최우수 실험실을 선정해 지원할 계획입니다. 지원은 충분히 할 테니 세계 최고 수준의 인력을 공급해 달라는 것이지요. 또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분야의 대학원에도 시범 지원할 계획입니다.
- 선진국의 통상압력도 한국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환율·관세 등 통상압력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말씀해 주십시오.
“무역 불균형 대응에서는 강약을 조절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유화책으로는 우리나라의 수출이 상대국의 국내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한 방법입니다. 가령 중국의 경우 한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하면 중국경제의 수출과 고용에도 기여한다는 논리로 계속 설득하고 있지요. 구매사절단도 파견하고 수입상품전시회도 열고 있습니다. 반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맞지 않는 조치에 대해서는 ‘새로운 무역장벽’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낼 필요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이 반덤핑 조치를 자동확대하겠다면 ‘반덤핑 조치는 WTO 협정의 규정에 따라서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2월 취임 당시부터 ‘yes but man’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기업인이 혹시 법규에 어긋나는 애로사항을 호소해 오더라도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으로 화답하라는 것이다.
[B]“공무원 氣 살려 기업인에게 신바람 실어줘야” [/B]
- 취임 일성으로 ‘yes but man’을 강조하시면서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정책을 약속하셨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펼쳐 오신 정책을 어떻게 자평하시겠습니까?
“장관에 취임하고 보니 우리 기업들이 활기를 잃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침체도 버거운데 각종 정부 규제, 반기업 국민정서 등이 겹쳤으니 심리적 위축감이 컸지요. 그래서 우리 산자부만큼은 기업인의 사기를 살려 주는 민원 서비스를 펼치자는 생각에서 그런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기업신문고를 개설해 목소리에 귀기울였고, 기업 민원은 한 달 내에 회답을 주자는 원칙도 정했습니다.”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 아울러 조직 내의 활력을 불어넣는 ‘부처 공무원 기 살리기’도 화제가 됐습니다. 어떻게 추진해 오셨고,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저에게 산자부는 친정과 같은 곳입니다. 29년 산자부 생활을 마치고 잠깐(1년10개월) 밖에 있다 돌아와 보니 직원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처져 있더군요. 우리 공무원들이 먼저 신바람나서 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업의 기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공무원 기부터 살려 그 신바람을 기업인들에게 전염시켜야지요. 그래서 장관실을 회의실로 개방하고 직급별로 돌아가며 도시락회의도 갖기 시작했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경어 사용하기’ 운동도 벌였고 직원들의 사적 만남을 위해 제 업무추진비로 ‘호프쿠폰’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적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분위기가 많이 나아진 것을 느낍니다. 얼마 전에는 여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당직근무를 서겠다고 요청해 부 전체가 떠들썩했던 적도 있습니다.”
- 재계에서는 과기부·산자부·정보통신부의 업무가 중복돼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한 의견과 앞으로의 관계 설정, 역할분담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정보산업과 바이오산업이 서로 융합하는 추세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또 기초기술과 응용기술의 구분이 모호해진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 부처가 추진하는 연구개발(R&D) 사업이 중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사업 중복성 평가를 매년 실행해 조정하기 때문에 큰 우려는 없습니다. 과기부는 최근 행정 체계를 개편해 혁신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정책부서로 거듭났으며, 산자부는 응용기술개발 분야를 전담 추진하는 부서로 자리매김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