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김유찬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가 가속하면서 세계 각국은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두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직접적 피해를 본 업종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최근에는 ‘한국판 뉴딜’ 사업을 담은 3차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경제 전시 상황에서 재정지출 확대의 경제적 효과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한 이유를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에게 물었다.
“재정 확대로 인적·물적 자본 파괴 최소화해야”
-정부가 6월 3일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 35조 3000억 원 규모의 3차 추경안을 의결했다.
=추경안의 규모나 구성은 현재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세입경정 11조 4000억 원, 위기 기업 및 산업에 대한 금융 지원 5조 원, 고용 및 사회안전망 강화 9조 4000억 원, 경기 보강 및 뉴딜 투자 11조 3000억 원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으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제 가시화 단계다. 따라서 코로나19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에 대비하는 강력한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제 위기의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의 파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이후 신속한 경제활동 정상화가 이뤄지도록 개인이나 기업의 생존을 돕는 재정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 3차 추경안과 그 안에 담긴 한국판 뉴딜 정책 준비 등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고 규모 면에서도 타당하다고 평가한다.
-코로나19라는 경제 전시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정책을 어떻게 펼쳐야 하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되도록 짧게 겪도록 할 수 있는 정책은 모두 펼쳐야 한다. 경기 침체기가 길어질수록 실업급여, 고용유지지원금, 긴급재난지원금 등에 투입되는 재정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포함한 방역 관련 긴급 지출, 기초 생계유지를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고용유지를 위한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기업 부도 방지를 위한 금융 지원 등에 우선해서 신속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상대적으로 조기에 종식되는 경우, 일부 재원은 경제 회복을 위한 공공투자에 사용될 수도 있겠으나 사태의 추이를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 재정지출 확대로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들보다 위기 상황을 빠르게 벗어날 경우, 세계 시장에서 경쟁 상대국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위기 탈출을 위한 적정 규모의 재정지출 확대는 국가 경제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한 투자다.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 개선도 기대”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정부 부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국민이 많다.
=재정지출을 확대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연구에서 제시하듯 경기 침체기에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경기 부양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의 단계적 하향을 억제해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 재정지출 확대는 L자 회복이 아닌 V자 회복을 이끌 수 있다. 재정지출 확대가 경제성장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국세 수입 증가로까지 이어질 경우 재정의 자기 조달로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도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재정은 단기적 경기 부양뿐 아니라 잠재적 경제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부채는 GDP 대비 4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9.2%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한도에 대해서도 여러 연구에서 재정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인 파브리스 콜라드(Fabrice Collard) 등이 2015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한국은 국가채무비율을 237~363%까지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실효이자비용(국채금리-명목성장률)이 낮을수록 재정 여력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는데, 우리나라의 실효이자비용은 대체로 음(-)의 값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단기 및 중기 재정 여력은 충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본격적으로 풀린 6월 5일 서울 양재동의 한 대형마트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한겨레
“경제 위기 시 경기 부양 효과 더 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큰가?
=정부 지출 확대로 GDP가 증가하는 비율을 보여주는 ‘재정지출 승수’는 평상시보다 경제 침체기에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의회 예산국(CBO)의 연구 자료를 보면, 잠재 GDP가 실제 GDP보다 큰 경기 침체기의 누적재정지출 승수는 0.5~2.5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소득지원(이전지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연구에서는 지출 승수를 2.0으로 분석했다.
미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와 우리나라의 재정지출 승수는 평상시에는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으나, 현재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이 동시에 재정지출 확장에 나서는 경우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들의 재정지출 승수도 큰 폭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재정지출 승수를 평소 수준인 0.45보다는 상당히 높은 1.0~1.5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면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경제 위기 시 재정지출 확대의 경기 부양 효과는 평상시보다는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한다.
-대규모 국채 발행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재정지출의 확대는 통상 국채 신규 발행으로 인한 이자 비용의 증가나 증세를 불가피하게 만들어 재정정책 대응 여력을 축소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유발한다. 단기적으로 이자율 상승으로 투자가 감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자본축적을 저해해 성장률을 낮춘다. 그러나 경기 침체기에는 재정지출 확대의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를 능가한다. 경기 침체기에는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과 ‘이력효과’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력효과는 경제학에서 주로 실업률이 높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상태가 지속할 경우 이후 실제 경제성장률이 하락해 잠재 성장률보다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력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바꿔 생각하면 재정지출 승수로 인한 재정지출 확대의 단기적 경제성장 효과가 그 후의 연도에도 일정 부분 지속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지출 확대의 세수 증대를 통한 자기 조달 기능도 이 기간을 포함하면 강화된다. 한편 경제 침체기에는 민간의 투자를 위한 자본 수요가 크지 않으므로 구축 효과를 통한 투자 감소는 미약하다. 다만 대규모 국채 발행은 자본시장에서 일시적으로 이자율 상승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통화 당국과 정책 조율을 통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현시점 적절한 규모의 증세도 필요”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재정지출 확대와 증세를 동시에 진행할 경우 경기 부양 효과가 상쇄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재정지출 확대 규모와 동일한 규모로 증세하는 것과 재정지출 확대 규모보다 작은 규모로 증세하는 것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경제 침체기에 확장적 재정지출에 대한 글로벌 공조를 전제할 때 긍정적인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먼저 재정지출 확대 규모와 동일한 규모로 증세하는 경우, 기존 연구들에서 경기 부양의 효과에 대해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느 소득계층에서 조세를 부담하게 하느냐, 어느 분야에 재정을 지출하느냐에 따라 경기 부양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소득 상위계층에 조세를 부담하게 하고, 소득 하위계층에 이전지출을 제공하거나 정부투자나 정부소비에 사용하는 경우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재정지출 확대 규모에 비교해 1/2이나 1/4 정도의 증세를 계획하는 경우에도 뚜렷한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정지출이 규모가 큰 예외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일회성 지원금인 경우 정부 부채로, 중기적으로 효용이 지속하는 공공투자 같은 지출인 경우 증세와 부채로 나눠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증세는 경제 위기처럼 어려운 시기에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는 의미가 있고 대외 신인도 제고에도 바람직하다. 경제 위기 시에도 증세가 가능한 나라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적 신뢰가 정착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규모의 공적인 영역을 내포하고, 중부담·중복지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기업이나 가계가 적정한 수준에서 세금을 부담하면서 동시에 경쟁력을 유지하는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가능한 것이다. 뒤로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의 증세를 시행해야 한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