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평택지부 박성진 사무국장이 6월 22일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평택지부 박성진 사무국장
75일 동안 강제 무급휴직 중이던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노동자 4000여 명이 6월 15일 자신들의 일터로 복귀했다.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근로자의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고, 무급휴직 대상 한국인 노동자들의 2020년 인건비에 대한 선지급을 제의하자 주한미군 사령부가 무급휴직을 철회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한국과 미국의 분담금 액수에 대한 간극이 너무 커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6월 22일 경기도 평택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평택지부 사무실에서 박성진 사무국장을 만났다. 평택지부는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12개 지부 중 가장 많은 1700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우선 정부의 노력으로 일터에 복귀할 수 있게 돼 감사드린다”며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원만히 타결되면 좋겠고,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업무 복귀로 인근 상권도 활기 되찾아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무급휴직을 통보받은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1991년 한국과 미국이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을 시작해 모두 10차례 협정을 맺었지만 무급휴직을 통보받아 한국인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협받은 적은 없었다.
무급휴직 기간 동안 노동조합 집행부는 캠프 험프리스(험프리스 미국 육군기지) 앞에서 무급휴직 철회를 요구하는 철야 농성을 계속했다. 조합원들은 농성에 참석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마저 얼어붙어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대리운전이나 일용직 건설노동자가 전부였다.
“무급휴직 당사자들도 어려웠지만 미군기지에 남아 계속 근무한 이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이 2~3명 몫을 해내야 하는 만큼 고생이 많았다. 이번에 복직해서야 모두 웃을 수 있었다”고 박 사무국장은 말했다.
무급휴직 노동자들이 돌아오면서 미군기지 인근 상권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코로나19가 있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상인들도 좋아하고 점차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무급휴직 사태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과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로 주목받았지만 불평등한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의 군사건설비·군사지원비·인건비 등 항목을 놓고 30년 동안 10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이번처럼 의견 차가 큰 적은 없었다. 미국은 이번 11차 협정에서 애초 5배 증액을 요구했다가 지금은 5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박성진 사무국장은 “미국이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고 규정하고 “우리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주한미군은 일터이며 동료이기도 하다. 협상 주체는 아니지만 협상 타결 내용에서 제3자일 수 없는 처지다. 그는 “국민이 이해할 만한 합리적인 선에서 협상이 잘 타결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무급휴직 중이던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6월 15일부터 각지 미군기지로 복귀했다. 사진은 평택지부 간부들이 노동자들의 복귀를 환영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있다.│평택지부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선해야”
박성진 사무국장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평등한 규정 탓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도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 등 4대 보험에 모두 들어 있지만, 이번에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의 특별법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노무 규정에는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지 아니하는 한 노동관계는 대한민국 법령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대한민국 법령을 따르는 듯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데다 ‘군사적 필요’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임금 협상에서부터 고용주인 미군사령부와 노동조합이 공정하지 않다. 미군은 주둔기지 안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들의 임금과 관련해 미 의회가 정한 ‘페이 캡(Pay Cap)’ 정책을 적용해왔다. 주둔 국가 공무원의 임금 상승률이나 미국 연방 공무원의 임금 상승률보다 많이 임금 인상을 할 수 없다는 정책이다. 협상에 따라서는 공무원들과 대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용하기 나름이다.
박 사무국장은 “5~6년 전에 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동결됐다. 당시 우리나라 공무원의 임금은 꽤 올랐지만 미국의 경기는 좋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며 “이처럼 임금 협상부터 일방적이어서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이 한국인 노동자 4000여 명에게 무급휴직을 통보하자 한국인 노동조합 평택지부가 항의 농성하고 있다.│평택지부
“임금 전액 한국 정부가 지급해줬으면”
부당 해고에 대해서도 이의 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주둔군지위협정 노무 규정에는 이의를 제기하면 한미합동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돼 있지만, 미국이 안건 상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합동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에서 파업을 하면 노동조합 설립이 취소될 수도 있다. 사실상 단체행동은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은 이번 사태의 개선책으로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전액을 한국 정부가 지급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현재 한국인 노동자 임금의 88%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에서 나오고 미군은 12%만 담당한다”며 “하지만 실제 임금 협상은 미군사령부와 해야 해 임금이 미군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 항목을 한국 정부에서 온전히 담당한다면 미군이 한국인 노동자 임금에 간섭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건설비·군사지원비·인건비 3개 항목 중 인건비 항목이 제외되면, 앞으로 ‘무급휴직’ 등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삼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그는 기대했다.
실제로 미군기지를 두고 있는 독일과 일본은 미국과 수차례 협상으로 자국민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았다. 독일은 미군기지 내 독일인 노동자들이 100% 독일 노동법에 적용받도록 했고, 일본은 정부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해 파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박성진 사무국장은 “패전국 입장이었던 독일·일본은 개선됐는데, 처음부터 미국과 동맹국이었던 한국은 여전히 70년 된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노무 규정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찬영 기자
주한미군 노동자 무급휴직은 왜 일어났나
한미 양국은 1991년부터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관한 방위비 분담을 위해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을 체결했다. 군사건설비, 군사지원비, 인건비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 군사비 증가율, 주한미군 규모 등을 기준으로 삼아 인상폭을 정한다.
한국과 미국은 2019년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방위비분담금협정을 맺었다. 2014년에 맺은 9차 방위비분담금협정에서는 2014년 분담금 총액이 전년보다 5.8% 인상됐으며 2018년까지 5년 동안 적용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10차 협정에서 역대 최고 수준인 8.2% 인상률로 총액 1조 389억 원에 1년 협정을 맺었고, 2019년 9월부터 시작된 11차 협정에서는 무려 5배 인상을 미국이 요구했다. 한국이 13% 인상안으로 맞서자 미국은 현재 50% 인상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2020년 4월, 방위비분담금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가량인 4000여 명에 대해 무기한 무급휴직을 통보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버스 운전사, 주방장, 자동차 정비사 등 미군부대 내 다양한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미국의 무급휴직 통보는 방위비분담금협정을 시작한 이후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삼아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조처였다.
한국 정부는 이에 특별법을 제정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근로자의 지원을 위한 특별법’으로 한국인 노동자에게 월 180만 원에서 198만 원의 생계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보험법 제46조에 명시된 ‘구직급여’ 지급 기준을 따른 것이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의 고용이 이뤄지지 않는 기간’에 대한 급여다. 정부는 이어 무급휴직 대상 한국인 노동자들의 2020년 인건비를 선지급하겠다고 제안했고, 미국이 받아들여 6월 15일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두 일터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한국의 인건비 지원 금액은 모두 2430억 원(약 2억 달러)에 이르며, 향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되면 한국이 지급할 전체 분담금에서 차감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