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기를 사 먹는 시대가 올 줄 알았나. 환경문제가 그렇다. 이렇게 스멀스멀 다가온다. 마스크 쓰고, 산소 탱크 메고, 생수병 들고 다니는 시대가 곧 들이닥칠 수 있다.” 핫핑크색 작업복을 입고 나타난 황현진(33) 대표가 소신 있는 일침을 가했다. 황현진 대표는 돌고래와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이다. 6월 8일 ‘세계 해양의 날’ 행사차 서울을 찾은 황 대표를 만났다. 시원한 바다가 간절해지는 여름의 길목에서 해양 환경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물어봤다. 다음은 핫핑크색을 좋아하는 소녀가 환경운동가가 된 이야기이자, 돌고래를 비롯한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다.
-불법 포획돼 서울대공원에서 4년간 돌고래 쇼를 하다 고향으로 돌아간 ‘제돌이’ 안부부터 물어야겠다. 제돌이는 잘 지내고 있나.
=제돌이가 고향 바다로 돌아온 지 6년이 되었다. 제주 앞바다에 다른 돌고래들과 함께 자주 모습을 보이며 지내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쇼 돌고래 해방운동’을 시작했다.
=2011년 여름, 국제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가 불법 포획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고래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돌고래 쇼 공연을 하는 퍼시픽랜드를 찾아 제주로 날아갔다. 쇼장 한쪽에 작은 문이 있었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었지만 뭔가 느낌이 왔다. 들어갔더니 첨벙청벙 물소리가 났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돌고래를 봤다. “어~ 예쁘다”란 말이 툭 튀어나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30년 된 시설에 녹물은 흘러내리고 수족관 안의 물은 맑지 않았다. 문 열고 나가면 바로 중문 앞바다다. 제 집을 코앞에 두고 여기에 가둬야 하나. 우리에게 이럴 권한이 있나.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6년 전인 2013년 7월 18일, 서울대공원의 서울동물원에서 돌고래 쇼를 하던 제돌이가 고향 바다로 돌아갔다.│한겨레
“강정마을에서 조약골 씨 만나 손잡아”
-그래서 시위를 시작한 건가.
=그다음 날부터 퍼시픽랜드 돌고래 쇼장 길목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불법 포획된 돌고래들입니다. 우리가 쇼를 보지 않아야 돌고래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수줍은 성격의 아이가 고래 모자까지 쓰고 거리에서 외쳤다. 개미 목소리였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어땠나. 8년이 지난 지금도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동물권이란 단어가 생소하던 때였다. 하루 수십km 바다를 헤엄치던 야성을 ‘포기당하고’ 길이 35m, 폭 7~9m, 깊이 3m의 좁고 얕은 수족관에 ‘감금당해’ 있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제돌이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에서 동물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쇼를 보면서 동물들이 어떻게 잡혀왔는지, 어떤 질병에 노출돼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캠페인을 벌이면서 나도 공부를 많이 했다. 내가 알아야 가려진 진실을 제대로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수족관에 갇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수족관이 얼마나 많은 질병에 걸릴 수 있는 곳인지, 먹이를 줄 때마다 약을 먹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렸다.
-1인 시위는 얼마나 지속됐나.
=퍼시픽랜드 앞에서 서너 달 이어갔다. 그러다 생태 전문가를 만나 강정마을을 알게 됐다. 퍼시픽랜드 옆이 바로 강정마을이었다.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인데 해군기지 건설로 시멘트로 덮일 판이었다. 구럼비 바위를 보자마자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 층층고랭이, 돌고래 등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후부터는 강정마을에 머물면서 낮에는 돌고래 시위하고 밤엔 강정마을 지키기 촛불시위를 해나갔다. 이때 조약골(46) 평화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구럼비 바위에서 야생 무리를 보고 “고래가 사는 바다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제돌이를 축하해주는 아이들│핫핑크돌핀스
“생태는 배우지 못하고 쇼만 보는 것”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겠다는 황 대표와 고래가 사는 바다를 지켜주겠다는 조 대표가 꿍짝이 맞았겠다.
=단체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 하반기에 핫핑크돌핀스를 설립했다. 사무실은 없었다. 길 위가 우리의 현장이었다.
-노력의 결과가 2012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에 서울대공원 운영을 책임지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돌고래 야생 방류 결정을 내렸다. 이어 4월에는 남방큰돌고래를 불법 포획해 거래한 퍼시픽랜드에 제주지법이 몰수 판결을 내렸다.
=처음 돌고래 재판이 열린다는 사실에 세상의 관심이 모였다. 우리는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를 하는 돌고래 세 마리가 불법 포획됐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돌고래 쇼의 중단과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이에 박원순 시장이 응답해줬다. 2012년 3월 박 시장이 과천 서울대공원을 직접 찾아가 제돌이를 만났다. 제돌이의 건강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방류 결정을 내렸다. 돌고래를 방류하는 것 자체가 아시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고 남방큰돌고래는 세계 최초다.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간 2013년 7월 18일은 한국 동물복지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진 날이다.
=쇼장 뒤쪽 조그마한 곳에 갇혀 있던 돌고래들이 드넓은 제주 바다로 귀향했다. 제돌이의 방류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전시 동물에 대해 그 이면을 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학습 프로그램이란 명칭하에 동물들을 만난다.
=교육적이라고 말하지만 아니다. 정말 알아야 할 동물의 생태는 거기서 배우고 오지 못한다. 그냥 쇼만 보고 올 뿐이다. 단순히 상업용으로 이용당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만나는 게 좋은 방법일까.
=돌고래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많은 사람이 물었다. 제돌이는 연안성 돌고래다. 제주 바다에서만 산다. 그들이 사는 바다에서 만나는 방법을 생각했다. 2018년 10월에 문을 연 ‘제주돌핀센터’가 그 대답이다. 남방큰돌고래들의 주요 서식처인 신도리 앞바다 인근에 국내 최초 육상형 돌고래 관찰센터를 열었다. 해양 관련 도서 전시 공간인 돌고래 도서관과 해양생태 감수성 교육을 위한 바다 배움터, 텃밭 놀이터, 사무국 등이 들어섰고, 사람과 돌고래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생태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서 바다를 만나는 여러 방법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주려 노력한다. 햇살에 데워진 너럭바위에 누워본다든지, 철썩이는 파도의 노래를 들어본다든지, 수평선 저 멀리를 바라본다든지. 바다가 주는 위안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그곳에 사는 수많은 생명과 그 생명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며 바다 생태계를 터득해나가도록 말이다.
▶핫핑크돌핀스가 매년 여름 진행하는 돌고래학교. 바다를 관찰하고, 돌고래를 관찰하면서 고래와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교육한다.
“꾸준히 하면 느리지만 변화 일어나”
-센터를 찾는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
=제주에 살면서도 ‘한국에 고래가 살아요?’라며 놀라는 친구들이 꽤 있다. 바다로 나가 돌고래들을 만나고 나면 배움을 편지로도 남긴다. ‘제돌아, 미안해 몰랐어.’ ‘다시는 너 갇혔던 곳에 안 갈 거야.’
-단체명에 핫핑크가 들어간 이유는 뭔가.
=씩씩한 느낌이다. 녹색을 대신할 정도로 생명력이 있는 색이다. 붉은색의 따뜻한 느낌도 있으면서 에너지가 넘친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 가미된 명칭이다.
-고래축제나 고래박물관 등을 여전히 관광 개념으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거 맛있는데?’라며 해양동물을 먹거리로 바라보는 시선에 놀랐다. 아직도 고래 고기가 연간 수백t 거래된다. 마냥 비판하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고래가 사는 해양생태계를 알게 하고 그걸 보여주는 축제로 바꿔가고 있다. 이제 고래축제 행사장에서는 고래 고기가 근절되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 고래박물관은 포경을 미화한 전시가 주였다. 점점 학살이 아닌 공존의 축제로 바뀌어가고 있다.
▶핫핑크돌핀스가 매년 여름 진행하는 돌고래학교. 바다를 관찰하고, 돌고래를 관찰하면서 고래와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교육한다.
-두 활동가가 모든 일을 거의 다 한다. 재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방식으로 운동하자는 주의다. 강정마을에서 활동할 때 ‘신나고 짜릿한 꽃밴드’를 만들었다. 우리 스스로 기운내고 즐겁게 운동하자고 만든 밴드다. ‘바다에서 만나요’ 등 돌고래 송을 만들고(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로 고래 모자를 만들어 쓴다. 이런 방식으로 꾸준히 이어가려고 한다. 문구 하나를 쓸 때도 한 톤 낮추고 다정한 색감으로 작성해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지속적으로 알리면 느리지만 변화는 일어난다.
-올해의 목표가 있다면.
=제주 내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대상으로 남방큰돌고래가 제주에 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동물권 교육도 함께 하고 싶다. 연말까지 교육 일정이 쫙 잡혀 있다. 20곳에 찾아가는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식용으로 쓰이는 밍크고래에 대한 보호 캠페인도 계획 중이다. 재개된 일본의 상업 포경도 중단시켜야 한다.
-여성운동 청년 환경운동가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는 쉽게 환경운동가라고 소개한다. 이런 직업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 외 활동에서는 여성운동 청년 환경운동가라고 나를 소개한다.
▶핫핑크돌핀스가 매년 여름 진행하는 돌고래학교. 바다를 관찰하고, 돌고래를 관찰하면서 고래와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교육한다.
“동물원은 인간 중심적 사랑법일 뿐”
-특별한 이유라도.
=처음 활동했던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식구들은 중년 이상의 운동가들이었다. 청년은 날것, 서툰 존재로 인식하고 어린 청년 여성의 운동가가 뭘 할 수 있을까 의문 어린 시선이 많았다. 어디에 관심을 드러내면 ‘세뇌당했어? 거기 좋아하는 누구 있어?’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다. 청년과 여성을 주체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판단하고 묻는 차별적 발언이다. 제돌이 시민위원회에 참여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듣보잡 여성 청년운동가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 주장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하루라도 빨리 바다로 보내는 게 방류를 성공시키는 지름길이라고. 그러나 무시됐다. 그러다 세계적인 돌고래 전문가가 방한해 나와 똑같은 의견을 냈다. 그때 생각했다. 50대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지션이 됐으면 좋겠다고.
▶핫핑크돌핀스는 조약골 평화활동가(맨 왼쪽)와 황현진 여성운동 청년 환경운동가(가운데)가 공동 대표로 있다. │핫핑크돌핀스
-인간이 바다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묻고 싶다.
=원래 그들이 살던 곳에서 살던 방식대로 사는 것. 이것을 지켜주는 게 사랑이다. 동물원처럼 인간 옆에서 살게 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 사랑법이다.
끝으로 핫핑크돌핀스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글을 옮긴다. 오늘도 황 대표와 핫핑크돌핀스가 활동하는 이유이다.
‘돌고래 공연장에서 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비롯해 7마리 돌고래가 고향 제주 바다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7개 시설에 38마리의 고래류가 좁은 수조에 갇혀 있습니다. 모두 바다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돌고래들이 돌아간 바다는 난개발과 해양쓰레기,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고래들이 살 수 없는 바다가 된다면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돌고래 보호구역을 지정해야 합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