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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1. 오전 10시-어린아이가 된 아이작[/B]
겨울의 중턱인데도 마치 봄처럼 따뜻하다. 그래서인지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사람들 중 낯설지 않은 외국인도 보인다. 한쪽에서 사람들이 속삭인다.
행인1 : “저 외국사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아냐?”
행인2 : “맞아. 영어 강사 선생님이잖아. 이름이 뭐더라….”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들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선다.
“나 몰라요? 텔레비전에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 못 알아보고 섭섭한데…. 아이작 몰라요? 사인 안 해줄 거예요.”(웃음)
그제야 이름을 알았다는 듯 행인들은 반가운 표정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사인을 받고는 자리를 뜬다.
한국 생활 10년차에 접어든 아이작 더스트(39). 그는 한국교육방송, 아리랑 TV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에서 유명한 영어 강사로 통한다.
“시간이 나면 인사동을 찾습니다. 이곳에 오면 일상에서 탈출한 느낌이 들죠. 삭막한 도시를 떠나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가 잘 조화를 이뤄 살아 있는 느낌이에요. 멀리 가지 않고도 한국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인사동을 수십 번도 더 와봤다는 그도 어느새 수학여행 온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저기 부채 봐요. 예쁘죠? 실용성뿐만 아니라 모양새까지 신경 써서 멋스럽게 만든다는 것이 정말 신기해요.”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B]# 2. 낮 12시-탈의 멋과 달콤한 엿에 빠지다[/B]
인사동 거리를 여기저기 누비는 아이작. 신기하고 재미난 것을 발견한 듯 어디론가 뛰어 들어간다.
아이작 : “탈 얼굴에 써봐도 되나요?”
주인장 : “좀 비싼데(웃음)…. 예, 괜찮아요.”
아이작 : “신기한 탈들이 많네요. 손으로 만들었나요?”
주인장 : “물론이죠. 그래서 비싸요. 탈뿐만 아니라 한국전통문화에는 한국인들의 숨결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죠.”
아이작 :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느낄 수 있는 기분, 묘하게 끌리는 것 같아요.”
어린아이 같던 아이작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한국문화에 심취한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인사동 거리는 아이작으로 인해 또다시 북새통을 이룬다. 아이들은 “아이작이다” “진짜 키가 크다” 하며 주변으로 몰려든다.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를 연상시키는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자~ 줄 서봐요, 사인해줄게”라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작은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다시 거리로 향한다. 주위를 살피던 아이작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달려간다.
“한국 엿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신나게 가위 장단을 맞추는 흥겨운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것 같아요. 엿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도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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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3. 오후 3시-도자기의 고풍스런 멋에 심취[/B]
아이작은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이곳저곳 유심히 살펴본다. 순간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바로 도자기다.
“텔레비전 사극에 나오는 술병 같은데요.(웃음) 한국문화의 미적 감각은 정말 대단합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도자기의 선과 무늬가 매력적이고 아름다워요.”
신기한 듯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요리조리 만지고 살피며 오랜 시간 도자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국문화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작은 찻잔에서도 정성과 따뜻함이 느껴지잖아요.”
그가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과 어려운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쓸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대단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문학 박사인 아버지가 제자의 소개로 새어머니를 만나셨는데, 그분이 바로 한국인이셨어요. 새어머니 덕분에 일곱 살 때부터 한국음식을 먹으며 자랐죠.”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작은 그렇게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새어머니는 영어에 능숙했기 때문에 대화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지만 외할머니는 사정이 달랐다.
“외할머니는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할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외할머니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제가 알고 느끼는 한국문화와 정서는 모두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겁니다.”
[B]# 4. 오후 6시-멋있는 한복, 맛있는 된장찌개[/B]
아이작은 하루 종일 인사동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국문화를 살피느라 조금은 지친 기색이다. 하지만 한국전통의상인 개량한복을 보자 다시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 정말 예쁘다. 입어봐도 되죠? 제가 입으면 한국사람들 반할지도 몰라요.”(웃음)
다시 한번 아이작표 특유의 너스레가 쏟아진다.
아이작 : “근데 저한테 맞는 한복이 있을까요? 어! 이 색깔 너무 예쁘네요. 어때요? 어울려요?”
한복집 아줌마 : “잘 어울리네요. 체구만 서양사람이지 한복 입혀놓으니까 한국사람 같네요. 어때요, 입어본 느낌이?”
아이작 : “생각보다 편안하고 따뜻하네요. 감촉도 좋고. 근데 외할머니가 왜 한복만 고집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몇 시간째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둘러본 그는 배가 고프다며 자연스럽게 한국전통음식점으로 향한다.
“된장찌개·김치찌개 등 한국 전통음식은 정말 맛있어요. 세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잖아요. 그 중에서도 저는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합니다. 구수한 게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맛이죠.”
하루종일 한국문화를 몸소 체험한 아이작. 그는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경험이었다”며 “혼자 보고 느끼기에 아까워 한국문화 알리기 홍보대사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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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 동천~ 이화정~ 얼~쑤, 낙향~ 동천~ 이화정~ 얼~쑤!”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 대학로의 국제교류진흥원. 유일하게 불이 켜진 강의실에서 쩌렁쩌렁한 강사의 목소리와 함께 어눌하지만 친근한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편 “very difficult” “so hard” “it’s too hard” 등 힘들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들이 바로 한국전통무용을 배우고 있는 외국인들이다.
전통무용을 배우며 하나같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강사의 몸동작을 따라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하지만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들이 사뭇 진지하고 신중하기만 하다.
그 중에서도 특출난 몸동작으로 시선을 끄는 이가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무용을 배우기 위해 날아온 어니스트 호질라(27)가 그 주인공이다.
[SET_IMAGE]7,original,left[/SET_IMAGE] 2004년 강릉축제 때 무용수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어니스트. 그는 한국전통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표현할 수 없는 무한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할까요? 춤 동작 하나하나가 저에게 감동을 주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움직임과 열정. 그때 한국무용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B]“한국무용은 우아하고 독특해”[/B]
어니스트는 고국에서 무용가의 꿈을 키우면서도 한국전통무용에 대한 기억에 매달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매력에 이끌려 그는 결국 다시 한국행을 택한 것.
“특화된 나만의 춤을 만들고 전수하기 위해 한국전통무용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무용기법을 접목시킨 ‘어니스트표’ 무용을 말이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은 겁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면서도 강사의 작은 동작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따라하는 어니스트. 그의 열정이 온몸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한국전통무용은 생소한 것 같지만 독특하고 우아하죠. 춤을 추고 있는 한국사람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빨려드는 느낌이 들어요.”
무엇보다 그가 한국생활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보람은 한국전통무용을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안동 지례예술촌을 찾았다. 또 한 번 한국전통무용에 매료당한 순간이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생님께서 직접 전통무용을 선보여 주시는데 가슴이 벅차오르고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한국무용을 배우는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었죠.”
어니스트는 한국에서 배운 기량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무용수가 돼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그는 “필리핀에서 유명한 무용가가 되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세계적 무용가가 되어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 진짜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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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년(紙千年) 견오백(絹五百)이란 말이 있어요. 자~ 다 같이 한 번 따라해 볼까요. 지천년 견오백!” 여기저기서 우왕좌왕하며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찌…쫑…연…켠…오…빽?”
“잘 모르겠어요.” “뭐?” “무슨 소리야?”
초등학교 교실 풍경이 아니다. 한국전통문화인 한지공예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모습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종일 한지 만들기에만 매달린 적도 있어요. 보다 못한 친구들이 ‘한지를 모두 불살라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죠.”(웃음)
지난해 한국을 찾은 몽골 여인 바야르(46) 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 몽골문화예술대학 문화행정학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다양한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것도 잊은 채 한지공예에 빠져버렸어요.”
선생님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까 바짝 긴장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바야르. 한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다르다.
“한지는 종이와 다르게 포근하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합니다. 실용성과 함께 장식성도 뛰어난 것 같아요. 전통을 살린 한지공예품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 사람들한테도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B]“한국전통문화 몽골에도 전수할 것”[/B]
바야르 씨가 한지공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해 전주 종이박물관을 방문하고부터다.
“종이박물관에 갔을 때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특히 한지 옷장, 한지 옷, 드레스 등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 한지공예를 선보인 그들의 열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SET_IMAGE]9,original,right[/SET_IMAGE] 그 후 바야르 씨는 한지공예와 관련된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등 한지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깊어만 갔다. 한지에 풀을 꼼꼼히 바르고 붙이는 바야르 씨. 한지공예를 하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다시 아이가 된 것처럼 흥분된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한복의 느낌과도 비슷해요. 한국전통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한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몽골로 돌아가면 자신의 방 하나를 한지를 이용해 도배하고 한국식으로 꾸며보고 싶다는 바야르 씨.
“빛을 통해 한지를 보면 한지를 만든 재료들이 종이 안에서 노는 듯해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아요. 또 색채감도 좋아서 보고만 있어도 신나죠. 이 느낌 그대로 몽골에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작은 상자 하나라도 남자가 만드는 몽골 문화와는 달리 한국에서 한지를 이용해 여러 가지를 만들어본 그는 “돌아가서도 한국의 향수를 느끼며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한지공예를 통해 한국을 깊이 느끼고 있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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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탓인지 대학 캠퍼스가 한산하다. 하지만 시끌벅적 분주한 곳이 있다. 바로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이다. 교실마다 열심히 한글을 읽고 쓰는 학생들의 열기가 뜨겁다. 이 가운데 한 교실에서 예사롭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 키가 훤칠한 외국 청년이 ‘훈민정음’을 또박또박 읽고 있는 것 아닌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르 서로 사맛디….”
스위스에서 유학 온 기욤 페리(25). 한국생활 1년차인 그는 이제 웬만한 한국사람만큼 능수능란하게 한글을 읽어 내려간다.
“한글에는 리듬이 있어요. 책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몸에 리듬을 타게 되죠. 한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죠.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의 그 느낌은 정말 끝내줍니다.”
페리가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4년 전. 캐나다로 연수를 갔던 그는 우연히 한국 친구를 만나게 됐다. 그를 통해 한글을 배웠고, 그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연수 온 친구 중 한국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통해 처음 한국어를 접했는데, 이상하게 처음 듣는 순간부터 말소리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냥 한국어를 듣기만 해도 좋았죠. 그래서 그 친구한테 한국어를 한 마디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SET_IMAGE]11,original,left[/SET_IMAGE][B]“한글 선생님 되고파요”[/B]
스위스 로잔호텔스쿨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던 페리는 캐나다로 연수를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한글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돌아온 셈이다. 소중한 추억이자 지금 자신이 한국에 있는 이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 유학생이 있는 도시로 밤새 차를 타고 달려간 적이 있죠. 겨우 10분 대화를 나누려고 말이죠. 그래도 얼마나 기쁘던지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글과 한국에 대한 지식에 목말라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스위스 로잔에서 기차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대학에 한글 세미나가 개설됐다는 것이다. 주저없이 세미나에 참가 신청을 했다. 주말마다 왕복 8시간을 통학해야 했지만 그는 신이 났다.
“방학 때 집중적으로 세미나가 열리고, 학기 중에는 주말마다 세미나가 열렸어요. 10명가량 참석했는데, 대부분 저와는 다른 것을 전공하는 사람이었어요. 저에게는 유익한 기회였지요. 한글을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운이 좋았던 것일까. 한글 과정이 끝나갈 무렵, 페리는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의 유학생 모집 공고를 보았다.
“한글을 배우니 한국을 알고 싶어졌고, 한국을 알게 되니 한국이 더욱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한글을 제대로 배우고 써먹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년 후에는 스위스로 돌아가 전공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한국 호텔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호텔 경영자로 일하며 한글 선생님을 하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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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쁜 떡을 어떻게 먹을 수 있어요. 말도 안 되죠. 그냥 장식용으로 두면 안 될까요? 너무 예뻐서 먹을 수가 없어요.” 떡을 만들며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다카코(31)의 말투에 모두가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이 떡 좀 보세요. 쌀로 만드는 것 중에서 한국전통 떡보다 예쁘고 맛있는 건 없을 거예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을 실감했다니까요.”(웃음)
한국에 온 지 2년 된 다카코는 말투나 행동만으로 봐선 한국사람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렇게 한국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음식, 그 중에서도 전통 떡에 대한 열정과 관심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영양사 일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국 음식점을 방문했죠. 제 인생의 목표가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한국 음식들을 보고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죠. 그 중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게 바로 알록달록한 떡이었습니다.”
다카코는 그날 이후 한국전통 떡에 대한 정보 수집에 나섰다. 한 달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배화여자대학 한국 요리학과에 입학했다.
[SET_IMAGE]13,original,right[/SET_IMAGE][B]“한국 떡, 세계에서도 통해요”[/B]
떡을 만드는 다카코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떡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의 솜씨를 인정한다.
다카코 : “어때요? 이 정도면 떡 가게를 운영해도 되겠죠?”
선생님 : “네! 정말 잘해요. 이제 하산해도 되겠어요. 다카코 씨가 이제 저보다 더 잘 만드는걸요.”
다카코 : “정말요? 그럼 당장 내일부터 가게 알아봐야겠네요.”(웃음)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즐거워 보이는 다카코. 하지만 그의 열의와 꿈은 사뭇 진지하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전통 떡을 만드는 최고수가 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그런 다음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전통 떡의 맛과 감동을 전파할 생각이죠. 반드시 해낼 겁니다.”
또한 그는 “한국전통 떡이 생각보다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은 떡을 가장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라고 강조한다.
“한국전통 떡은 찹쌀과 멥쌀을 모두 쓰고 고물도 팥·콩·녹두·밤·깨 등 다채롭습니다. 조리 방법에서도 한국의 떡은 찌는 떡·치는 떡·삶는 떡·지지는 떡 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죠. 이런 것들이 한국전통 떡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직접 만든 떡을 한 입 깨물며 “바로 이 맛이야!”를 연신 외치는 다카코. 그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제가 아직 한국사람의 손맛을 내는 데에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통 떡 만들고 맛내는 법 등 다양하게 배우고 익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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