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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층짜리 세계 최고층 빌딩의 화려한 오픈 파티가 있던 날, 규격 미달의 전기배선 사용으로 인해 빌딩은 화마에 휩싸이게 된다. 초고층 빌딩인 만큼 지상에서의 효과적인 진화도 불가능하다.
1974년에 제작된 영화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의 줄거리다. 그러나 오는 2008년부터는 스티브 매퀸이나 폴 뉴먼처럼 지옥 같은 화재현장에서 불과 사투를 벌일 필요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 화마가 넘실거리는 화재 현장에 소방관 대신 로봇이 투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지하철 등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출동해 불을 끄는 소방로봇과 인명구조로봇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오는 2008년 1월까지 개발을 마치기로 했다.
이 소방로봇 개발은 한국원자력연구소 주관으로 동일파텍, 위아, 로템, 삼성중공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왜 원자력연구소인가? 소방로봇 주관기관으로 원자력연구소가 선정되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역시 원자력연구소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B]인류사회 변형시킬 ‘첨단기술’[/B]
원자력연구소가 지난 1988년부터 원자력발전소에 활용할 로봇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 유해한 방사능이 노출된 위험 지역에서 작업을 대신하기 위해서다.
“극한 환경에서 일하는 로봇에 대한 노하우는 어느 연구기관보다 앞서 있습니다.”
‘재난극복 및 인명구조 로봇(이하 소방로봇) 기술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김성호(53)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소방로봇 개발을 담당하는 주체는 원자력로봇연구실이다. 현재 연구원은 모두 12명. 다른 과학기술연구기관의 프로젝트팀과는 달리 모두 정식 직원인 것이 흥미롭다.
소방로봇은 첨단기술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유망기술인 소방로봇은 현재 일본과 중국에서도 적극 개발에 나서고 있어 선점경쟁이 치열하다. 세계미래학회(WFS)가 발표한 ‘21세기 인류사회를 변화시킬 10대 기술’가운데 지능형 로봇이 포함된다.
소방로봇 개발은 크게 4가지 과제로 구성돼 있다. △재난극복 이동 기술개발 및 화점·인명 탐지 기술개발 △재난감시용 공중부양 로봇 기술개발 △실내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 로봇 기술개발 △실외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 로봇개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소방로봇 개발 구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였다.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대참사 당시 지하가 검은 연기로 뒤덮여 아비규환을 이뤘는데도 소방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유독성 연기가 지상으로 계속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아예 사고현장에 접근조차 못하는 등 거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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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한 손실은 연간 3조6000억 원, 인명피해만도 연 430명이 넘는다. 따라서 소방방재청 역시 ‘5분 내 출동’을 목표로 화재진압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나 불가항력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화재로봇을 출동시키면 소방관들이 손쓸 수 없는 곳곳에 배치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백화점이나 불이 나기 쉬운 곳에 (로봇을) 미리 배치한다면 소방관이 출동하기 전에도 화재를 초기에 진압해 대형화재로 번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박사는 말했다.
게다가 평상시에는 아파트 경비, 주민보호, 등하교 학생보호 등의 임무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실은 기대하고 있다.
[B]2015년 1000억 달러 시장 추정[/B]
이처럼 다용도로 쓰이는 극한작업용 필드 로봇의 세계 시장규모는 2015년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원자력로봇연구실의 이성옥(35) 박사는 “2010년부터는 대량 생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원자력로봇연구실은 김 박사가 책임을 맡다가 계속된 연구로 건강이 악화돼 최근 후배인 정승호(48) 박사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김 박사는 그럼에도 소방로봇 개발만큼은 본인이 끝까지 성공시키겠다며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재 소방로봇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외부 인력까지 포함해 모두 17명.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다른 연구도 마찬가지지만 소방로봇 개발이 순풍에 돛을 단 것만은 아니다. 애로사항이 많다. 우선 화재현장 경험이 전무한 것이 연구의 큰 단점이다. 이에 따라 중앙 119구조대와 교류를 맺어 경험을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어릴 때 철모르고 불구경하던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성욱 박사는 ‘어떤 때는 퇴근길에 불이 나는 곳이 없나’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했단다. 기술적 어려움도 있다. 센서 등 첨단장비는 열에 약해 적용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기계식 장치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또 부피가 커진다. 협소구역을 뚫고 들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능형 로봇’을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한계는 남보다 한 발 앞서 달리는 원자력로봇연구실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극한작업 로봇은 앞으로 화재현장뿐 아니라 우주탐사 로봇, 국방기술 등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박사는 소방로봇 개발은 기술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향상으로 선진국으로 가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RIGHT]권영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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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