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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2월 28일 밤이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충남 천안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남성이 도로변에 쓰러져 있다는 전화였다. 신고를 접수한 부서는 뺑소니전담반. 명승제(53) 반장과 김영석(39) 형사가 한달음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한 명 반장은 쓰러져 있는 사람이 이미 숨을 거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전혀 없었다. 외상이 없다는 것은 뺑소니 차량이 피해자를 ‘역과(차량 바퀴가 사람을 밟고 지나갔다는 경찰용어)’했다는 증거. 뺑소니전담반 형사들의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가내수공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부인, 대학생 딸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던 김모 씨로 밝혀졌다.
사고 현장에서는 자동차 파편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명 반장은 차량이 김씨를 밟고 지나간 것에 착안, 타이어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김씨의 옷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로 보냈다. 며칠 후 회신이 왔다. 김씨의 옷을 적외선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타이어 자국이 뚜렷이 나타난 것.
수사에 활기를 띤 뺑소니전담반은 전남 광주의 한 타이어 공장으로 향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타이어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5톤 화물트럭의 타이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바로 천안으로 돌아와 천안시내 운수회사와 화물업체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용의 차량과 비슷한 트럭은 모두 223대. 이들 트럭의 타이어 자국을 하나하나 비교했다.
[B]3년 연속 뺑소니 검거 전국 1위[/B]
그리고 사고 현장 인근의 한 돼지사료 운반업체의 트럭 25대가 이 타이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곧바로 양돈조합을 드나드는 차량들을 일일이 조사했다. 마침내 범인을 잡는 데 성공했다. 사건 발생 6개월 만이었다.
명 반장이 이끄는 뺑소니전담반은 2001년 480여 건의 뺑소니 사건을 100% 해결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348건 중 290건, 2004년에는 244건 중 213건을 각각 해결했다. 지난해에도 203건 중 181건을 해결, 뺑소니범 전국 최다 검거반이 됐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내리 뺑소니 검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전담반은 명 반장을 비롯해 김영석·박영천·한상진 형사 등 4명이다. 이들의 명성은 철저한 현장조사와 함께 끈기와 집념, 그리고 자동차정비업체·부품센터·대리운전업체 등의 관련업계와 거미줄 같은 연계망을 구축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한 데 따른 것이다.
명 반장은 “현장에 도착하면 머리카락 한 올은 물론 먼지 부스러기도 증거 자료가 된다”고 강조한다. 현장의 차량 파편 등을 정밀 분석하고, 이것을 통해 어떤 차량인지 종류를 알아낸다. 그리고 잠복과 추적을 통해 범인을 검거하고야 만다.
특히 이들의 끈기는 주변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 지난 2003년 발생한 천안 북부대로의 뺑소니 사건 때는 현장에 흘린 엔진오일을 발견, 이를 따라 3km 이상을 추적해 차량의 위치를 알아내기도 했다.
명 반장은 “뺑소니는 피해자의 가정을 풍비박산 내는 것은 물론 자신의 가족도 힘들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지난해 6월 천안 봉명동에서 5살 아이를 뺑소니 사고로 잃은 김모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김씨는 둘째아이를 잃은 뒤 생업은 뒷전으로 미룬 채 직접 범인을 잡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뺑소니전담반과 함께 잠복수사까지도 자처했다. 결국 범인은 잡았지만 피해자 김씨의 가정이 입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B]범인 잡기 위해서라면 밤낮이 없다![/B]
뺑소니 사고 중 전담반의 치를 떨게 만드는 사건도 있다. 바로 일명 ‘무대포’ 차량들이다. 최근 큰 폭으로 늘고 있는 탓에 전담반도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범인 검거도 힘들뿐더러 사고 운전자를 가려내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확실한 증거를 용의자에게 제시하지만 버티기나 우기기로 일관하면 애를 먹게 마련이라고. 운전자와 차량주가 같은 일반 차량과 달리 운전자를 쉽게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최근 한 차량이 피해자에게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히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담반이 추적해 보니 서울 서초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분명 사고현장인 천안 인근에 사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한 전담반 형사들은 황당했다. 명 반장은 “차량의 사고 유무를 확인해보니 용의차량으로 확인됐고, 이상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무대포 차량이었다”며 “무대포 차량이 뺑소니를 한 경우 차량주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빨리 마련해야만 이와 같은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늘어나는 무대포 차량이 범죄에 사용되는 일 외에 이 같은 뺑소니 사건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뺑소니전담반 형사들은 고인이나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쉽게 잠들 수 없다. 명 반장은 “범인을 검거한 뒤 고인의 자녀들이 찾아와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루라도 더 빨리 범인을 잡았어야 했는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전담반 김영석 형사는 “뺑소니는 반드시 잡힌다”며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말처럼 자수를 통해 용서를 구하면 법도 관용을 베풀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담반 형사들은 하나같이 범인 검거가 최우선이라며 밤낮 구분 없이 범인 검거에 나선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건강에 소홀하기가 쉽다. 단적인 예로 2003년 당시 전담반에서 뛰었던 김효중 형사가 신부전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뺑소니범 검거에 매달리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한 탓이다. 전담반 형사들은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저렇게 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모두 “몸을 챙길 겨를이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울고 있을 피해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RIGHT]최재영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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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