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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할인점의 급속 확산,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재래시장의 상권이 위축되고 있다.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최근 정부가 내놓은 재래시장 육성대책은 그래서 '가뭄의 단비' 같은 정책으로 꼽힌다.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한 「재래시장 육성법」도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법안이다. 재래시장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용적률을 700%까지 완화하고, 올해부터 5년간 7,0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겪는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회 산자위의 입법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9월 현재 전국 시·도 집계 결과 총 1,096개 재래시장의 19만4,020개 점포 가운데 17.7%에 해당하는 3만4,394개 점포가 비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이 내놓은 '2005년 재래시장 활성화 종합대책'은 이 같은 위기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대대적인 처방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기청은 지난 1월17일 창업벤처국 산하에 재래시장소기업과를 설치해 재래시장 회생과 육성을 중요 업무의 하나로 격상시켰다. 장기적이고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
한 것이다.
시장을 특성별로 육성한다는 대전제 아래 온라인 점포 분양, 물류창고와 저온창고 설치 등 공동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최돈구 재래시장소기업과 과장은 “올해 안에 시장 특성별 현대화 모델과 선진국 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해 소비자의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재래시장 만들기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사업의 핵심은 4가지다. 시설현대화·경영혁신·상거래 기법 개선·상인조직 육성이 그것이다. 개별 시장의 문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시장정비사업 구역선정 권한을 중기청에서 시·도로 이관한 것도 과감한 조치다. 오는 4월까지 시·도별 사업선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도록 돼 있다. 3월에는 재래시장의 시설 및 경영 현대화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시장경영지원센터'를 설립해 시장 정비사업 자문과 상담을 지원한다.
중기청 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는 재래시장의 쇼핑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질척거리는 골목과 비위생적인 시설물, 열악한 주차 공간, 비좁은 주변 공간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재래시장 특유의 활력과 인간미에 현대적 유통시설의 편리와 청결을 더하겠다는 목표다.
시설 현대화 및 환경개선사업 지원에 올해에만 1,068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전국 171개 재래시장이 그 대상이다. 주차장 설치를 최우선으로 지원하고 아케이드 설치, 도로 정비, 시설물 개량, 안전시설 보강 등이 뒤따른다. 주차장 진입로 등 도시계획시설에 대해 올해부터 상인들의 부담이 면제되는 것도 희소식이다. 한국전력 측과 협의하에 전신주 이설 비용을 50% 감면하고 아케이드의 도로점용료를 감면하며 새로 설치하는 시설물에 대한 지방세도 감면된다.
시장 상인들이 월 수십만 원씩을 들여 개인적으로 이용하던 저온·물류창고도 이제는 공동 이용시설 설치를 지원해 해결하도록 할 방침이다. 공동 이용시설 설치는 해당 시장 한 곳에 3억 원씩 총 66억 원을 지원한다. 저온창고와 물류창고, 공동배달 콜센터가 설립되고 수산시장의 해수 공급 시설 등이 이 같은 지원을 받아 활성화된다. 상인들은 10%만 부담하면 된다. 국비 60%, 지자체 예산으로 30%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재래시장 안의 빈 점포를 공익 장소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다. 여성상담실, 주부교실, 고객서비스센터, 지역특산품 판매 장소, 청년상인 육성 공간 등이 그것이다. 재래시장이 지역 문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상인들의 평생직장 공간으로 기능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지역 관광지와 연결해 관광상품으로 개발
전문가들은 시설물의 현대화 못지않게 재래시장 특유의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회생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대형 할인점에 맞서기 위해서는 ‘틈새’를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래시장 특유의 ‘에누리 정서’ 와 옛것에 대한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과 아울러 시장별 특성을 살리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유통 컨설팅 그룹 '인터원'의 원창희 대표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전문 프랜차이즈 업종 발굴, 전략적 제휴와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래시장의 강점을 살리면서 그 이상의 혁신을 도모해야 동네까지 점령한 거대 유통센터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기청은 올해 4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재래시장의 신(新)마케팅을 지원한다. 시장축제, 세일 및 경품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명절이나 지역 행사와 연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다반사로 하는 각종 행사를 재래시장의 ‘지역 밀착성’이라는 특성과 결합하겠다는 의도다.
재래시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는 것도 아이디어 중 하나다. 지역 관광지와 재래시장을 연계해 하루 관광 후 특산물 쇼핑을 통해 저녁 반찬거리를 사 귀가한다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 여성·주부단체와 연계해 재래시장 이용 캠페인을 실시한다. 설과 추석 등 명절에는 TV 광고를 하고, KBS의 인기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 적어도 주 1회 지방 재래시장을 홍보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지난 2년여에 걸쳐 30억 원을 투자해 환경개선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수원 지동시장은 이 같은 마케팅 기법 도입의 대표적 사례다. 지동시장은 환경개선사업 후 매출이 급속히 증대했다. 계속된 불황에도 불구하고 중기청 조사에서 매출이 늘었다고 응답한 상점이 34%에 달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지동시장은 팔달문시장, 영동시장과 함께 3개 시장 공동상권을 형성해 팔달문시장축제나 수원성곽 관광과 연계해 관광객을 유치했다. 고객센터를 설치해 주민들의 불만 상황을 접수했고, 상인교육장을 설치해 시장 특성에 맞는 마케팅 기법을 교육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7년째 청과류 상점을 운영하는 지원영(38) 씨는 "축제 때는 매출도 늘지만 지역민이나 방문 고객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어 사는 맛이 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중기청은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지속적인 시장 발전이 어려운 만큼 지동시장처럼 상인 교육과정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이 같은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착, 확산시킨다는 복안도 세웠다. 올해는 상인 5,000명이 교육 대상이다. 할인점의 점원보다 상품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월등하게 높은 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기청 재래시장지원과 김종국 사무관은 "상인들을 찾아가는 교육, 맞춤식 교육이 재래시장 상인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생업에 바쁜 상인들을 직접 찾아가 영업기법, 경영혁신, 고객관리 및 서비스 제고를 중점 교육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상인'에서 '상인 지도자'로 키운다는 것도 상인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다.
우선 농수산물·의류·액세서리·생활용품 등 상품별 전문지식을 한 차원 높게 습득시키며, 시장경영 및 공동사업에 필요한 상인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생 300명에게 방학 중 점포 경영 체험활동을 실시하고, 젊은 상인을 재래시장 통신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수립했다. 4개 팀 25명으로 구성돼 4월부터 본격 가동할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상인교육의 중추가 될 예정이다.
온라인 쇼핑몰 구축, 공동상품권 발행
고객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대책 중에는 재래시장 온라인 쇼핑몰 구축 등 선진 상거래 기법 도입 지원이 있다. 재래시장 상인을 위한 온라인 디지털 점포는 2005년 말까지 약 8,000개, 2007년까지 1만8,000개를 분양한다. 온라인 상에서 전국 재래시장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시장 상인 간 B2B, 고객과의 B2C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젊은 층의 고객을 재래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미래 재래시장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대표적 전자상거래망 중에는 현재 운영중인 'e남대문'이 있고, 인천어시장 등이 본격적인 거래망 구축을 준비중이다. 현재 250개의 재래시장이 홈페이지를 구축해 온라인 쇼핑몰에 링크돼 있으며, 주로 주변 지역의 물품 주문에 온라인을 활용한다.
중기청이 선진 상거래 기법 도입을 위해 야심적으로 도입한 제도가 재래시장 공동상품권 발행이다. 목표는 전국의 모든 재래시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동상품권을 통용시키는 것이며, 시장 상인회를 활용해 가맹점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현재 포항 죽도시장과 청주·충주·횡성·화천 등 5개 지역 시장에서 공동상품권을 사용하고 있다. 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래시장 방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규모 고객 창출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2002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재래시장 지원 정책에 힘입어 상당수 재래시장이 회생과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약 17억 원의 투자를 받은 서울 망우2동 우림시장의 경우 2002년 매출이 237억 원이었으나 2003년에는 320억 원으로 늘었다. 환경개선사업 최초의 시장으로 기록된 우림시장은 쇼핑카트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주변을 정리해 빈 점포가 한 군데도 없는 알찬 시장이 됐다.
35억 원을 투자한 청주 육거리시장은 1일 방문객이 1만 명 수준에서 1만3,000명으로 늘었다. 아케이드를 설치해 통행량이 늘었고 상품권 발행, 방송 시스템을 설치해 고객을 유치했다. 이 시장 상인 박정인 씨는 "재래시장이 더 이상 사양길을 걷는 매장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시켜준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밖에 주차타워를 건설하고 상인신용금고를 운영하는 부산진시장, 56억 원을 투자해 시장 주변을 일신한 논산 화지시장 등도 빈 점포가 없는 '대단한 재래시장'으로 급성장해 정책의 효과를 입증하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중기청 재래시장소기업과 최돈구 과장은 재래시장의 미래를 이렇게 전망했다.
"정부의 지원과 맞물려 상인,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장 살리기를 위한 자발적 노력이 확산되는 것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다. 젊은 층이 이용을 기피하면 재래시장의 미래는 없다. 그러나 시설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시장에는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자금 지원과 더불어 선진국의 경영기법을 연구해 아이디어를 꾸준히 제공하면 대형 쇼핑몰과 공생할 수 있는 특유의 재래시장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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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시장은 200여 명의 상인이 똘똘 뭉친 재래시장으로 꼽힌다. 2002년 대규모 시설 현대화 직후 불황에도 기죽지 않는 활력을 키워나갔다. 노점상 가건물도 지어 정규 상점과 노점이 공생하는 길을 연 것이 이 시장의 특징. 40년 역사의 우림시장이 환골탈태한 과정을 들어봤다.
-정부의 재래시장 육성정책이 시장 회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상가 현대화 과정에서 약 17억 원에 달하는 자금 지원도 물론 컸다. 그리고 여러가지 불편했던 법규와 조례들을 시장 상인들의 요구에 맞춰 개선해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직접적인 지원도 고마웠지만 TV 광고, 프로그램을 통한 대대적 캠페인을 벌여 재래시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환경정비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나?
"정부 지원금 12억3,000만 원, 민자 5억 원을 들여 공동화장실, 주차장, 주야간 경비사무실, 상인들을 위한 체력단련실 등을 새로 지었다. 아케이드를 정비해 쇼핑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대단히 중요한 변화다. 골목길 시장이 환골탈태하면서 전국 400여 곳의 재래시장 상인이 견학을 왔다. 온라인 택배, 캐릭터 사업, 명절 사은잔치 등도 환경정비사업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백화점·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와 비교해 우림시장만의 강점이 있다면?
"우림시장은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상인과 고객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상품 정보나 지식도 할인점 직원이 우리 상인을 따라올 수 없다. 상품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나눌 때 정도 나눌 수 있다. 노점과 정규 상인이 평화롭게 공존해 다양한 상품과 독특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우림시장이다. 사람이 많지만 정서적으로 썰렁한 대형 할인점과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 우리 시장에는 있다."
-법률상의 문제, 제도상의 개선 여지가 있다면?
"재래시장은 서민들이 찾아온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재래시장에는 시장버스가 필요하다. 일괄적으로 다 없애버린 버스 운용 제도를 재래시장에 한해 융통성 있게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면 어떤 점이 가장 아쉬운가?
"정부에 다 해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규모 지원 이후 자잘한 것들은 상인들이 돈을 모아 해결했다. 지금 가장 큰 현안은 공동 물류창고 건립이다. 대부분의 상인이 매달 큰 부담을 느끼는 사안이다. 몇천 만 원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닌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상인들도 걸맞은 액수를 갹출할 용의가 있다."
-인터넷 쇼핑몰의 활성화 정도는?
"이제 시작 단계다. 상인끼리의 거래, 주변 음식점 식자재 등이 인터넷을 통해 거래된다. 배달할 때도 정을 듬뿍 담아 배달하는 것이 우리 쇼핑몰의 자랑이다. 더 키울 것이다."
-상가 환경개선 이후 매출 변동은 어느 정도인가?
"2002년 개선 후 1년 만에 30%의 매출 신장이 이뤄졌다. 불황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매출 변화였다. 그 후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도산하는 다른 재래시장에 비하면 굉장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자부한다."
-앞으로 상가 번영을 위한 복안이 있다면?
"시장 상인들이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길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지역주민과 일체감을 느끼며 노점상들도 절대 홀대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작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임천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