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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묘한 고민에 빠졌다. KDI는 분기마다 경제전망치를 발표하는데,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해의 5.0%보다 더 높은 5.3%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유가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원-달러 환율 역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경제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현 원장은 담당 연구진에게 “전망치가 혹 높게 나온 건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연구원들이 강하게 주장해 연구원들을 믿고 재검토 없이 발표했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너무 장밋빛 전망이라며 비판하겠구나”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4월 17일자로 보도된 경제전망 기사는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의 언론이
‘KDI, 하반기 경기위축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1분기 6.2%, 2분기 5.8%, 3분기
5.1%, 4분기 4.4%라는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 전망치를 그래프로 그리면서 마치 경기가
1분기 정점을 찍고 서서히 가라앉는 것처럼 기사를 내보냈다. ‘장밋빛 전망’ 비판을
우려했던 KDI는 보도가 나온 그날, 오히려 “하반기 경기위축을 전망한 게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야 했다.
유가급등·환율하락에도 성장률 전망치 올라
경기전망이란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해석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국제유가 상승 △환율하락(원화절상) △차이나 쇼크 등 이른바
3대 악재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형국이다. 정부가 지난 연말 예상했던 유가·환율
연평균 전망치는 54달러(두바이유 기준), 달러당 1010원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12일 유가는 67.58달러, 환율은 949.02원으로 벌써 예상치를 한참 빗나갔다.
그런데 KDI의 성장률 전망치가 5.0%에서 5.3%로 올라갔고, 며칠 뒤인 4월 27일
한국금융연구원도 성장률 전망치를 4.7%에서 5.2%로 0.5%포인트 올렸다. 5월 3일
수정 전망치를 내놓은 LG경제연구원은 전망치(4.7%)를 올리지 않았지만 낮추지도
않았다. 유가상승과 환율하락은 분명 악재인데 왜 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올라가는가?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유가상승은 절대 악재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상승, 소비위축, 기업경쟁력 약화, 투자위축이 잇따른다.
국제유가는 지난 연말 53.49달러에서 올해 들어 24.4%나 올랐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소비자가격(ℓ당)은 1462원에서 1543.25원으로 5.6% 오르는
데 그쳤다. 환율하락이 유가상승분을 상당 부분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로 안정세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물가상승을 막는데다
기업이 비용절감 등으로 유가상승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굳이 환율 덕분이 아니더라도 ‘세계의 공장’ 중국의 존재는 ‘유가상승-인플레이션-스태그플레이션-세계경제
공황’이라는 도식을 깨뜨리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국제유가 최고치는 제2차 석유파동 시기였던 1980년 4월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97.55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일부 외국기관은 세계경제가 ‘유가 100달러’도 견딜
수 있다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국제유가가 매우 불안한 상태를 보이는 건
사실이나 경제의 대응능력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1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4.8%로 지난해 4분기의 1.7%를 크게 웃돌았다.
일본은행은 최근 일본의 경기확대가 200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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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대응력까지 종합적으로 봐야
일부에서는
계속되는 환율하락을 이유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적자 반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하락은 수출경쟁력은 떨어뜨리지만 반면 물가안정과 내수확대를
불러오는 ‘양날의 칼’이다. 금융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품질 등 비가격 쪽으로 상당 부분 이전됐고, 수출이 환율보다 세계경제 여건에 더
좌우되는 형태로 변했다”는 점을 들어 환율하락세에도 적자 반전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정경제부 자료를 봐도 수출이 환율보다는 글로벌 경기변동에 훨씬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과 수출상대국 소득 간 상관계수는 2000년 이전 0.05에서 지난해에는
0.74까지 급증했다. 이에 반해 외환위기 이전 0.59였던 수출의 환율탄력성은 지난해에
0.30으로 낮아졌다. 총수출이 늘어나는 데 환율이 기여한 몫은 외환위기 이전 27.9%에서
외환위기 이후에는 2.3%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총수출 성장에 대한 외국경기 기여율은
외환위기 이전 37.8%에서 48.3%까지 올라갔다.
최근 중국의 금리인상, 성장률 하락 전망 등 ‘차이나 쇼크’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게 경제연구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은 애초 9%대 후반으로
전망됐으나 10.2%라는 예상외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8.2%에서 9.5%로 상향조정했다.
최근의 경제위기론이 다소 부풀려진 측면은 있지만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각 연구소의 성장률 수정전망치가 올라간 건 내수회복으로 1분기 성장률(6.2%)이
예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성장률 전망치를 분기별로 나눠보면 상반기는 예상보다
높고 하반기는 예상보다 낮다. KDI 수정전망치는 3분기 5.1%, 4분기 4.4%다. 애초
전망치인 하반기 4.7%보다 0.05%포인트 정도 하락한 셈이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성장률을 당초 4.2%로 봤으나 수정치에는 4.0%로 낮췄다.
중국 금리인상 등 ‘차이나 쇼크’도 과장
유가·환율은
현재까지는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위기’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폭이 축소되면서 환율이 다시 상승하면 지금처럼 유가상승을 환율하락이 상쇄하는
것과 정반대로 오히려 유가상승 압력이 배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압력은 유가·환율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등 우리 경제의 취약층부터 정조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도 투자와 고용을 꺼려 우리경제의 성장엔진이 서서히 꺼질 수도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 하반기 경제는 유가·환율의 긍정·부정적인
영향력 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상황이란 예정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 나간다. 결국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외부변수에 대해 내부 적응력을 얼마나
키워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가계·기업·정부 등 경제주체가 변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그러나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