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스벨트추진단 이상준 단장
세네갈, 감비아, 기니, 가나, 카메룬, 우간다. 아프리카 대륙의 허리쯤에 있는 이들 여섯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2023년 시작한 작은 실험이 결실을 맺었다. K-라이스벨트 시범사업을 통해 신품종 벼 종자 2321톤이 수확된 것이다. 기존에 아프리카에서 주로 생산되던 벼 종자보다 쌀 수확량이 많고 품질도 우수한 종자들이다.
K-라이스벨트 사업은 쌀 생산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수확량이 많은 벼 종자를 생산하고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K-라이스벨트 구축 사업을 통해 아프리카 빈곤국에 쌀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 시작이다. 두 달 뒤 아프리카 8개국 장관이 서울을 찾아 K-라이스벨트 사업 참여를 공식화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K-라이스벨트 사업은 단지 식량을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 각국의 쌀 생산성을 높여 식량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라이스벨트 사업을 총괄하는 이상준 농림축산식품부 K-라이스벨트 추진단장은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현재 K-라이스벨트가 추진되고 있는 국가는 7개국이다. 이들 국가 대부분의 주식은 쌀이다. 그러나 자급률은 낮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7개국에서 연간 소비되는 쌀은 1172만 톤 정도 된다. 그러나 생산량은 627만 톤에 그쳐 소비량의 절반이 훌쩍 넘는 양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프리카에서 주로 재배되는 벼 종자는 1헥타르(㏊)당 1.5톤에서 많게는 3톤의 쌀이 생산되는 데 그친다.
그런데 K-라이스벨트 사업을 통해 생산된 벼 종자에서 쌀은 1헥타르당 5~6톤을 거뜬히 수확할 수 있다. 수확량이 많을 뿐 아니라 품질도 좋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이런 벼 종자로 농사짓는 생산단지가 조성된다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 단장은 “2027년부터 1만여 톤의 다수확 벼 종자를 생산하고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 주민 3000만 명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이 단장에게 물어봤다.
K-라이스벨트 사업에 관심을 갖는 아프리카 국가가 많다고 들었다.
K-라이스벨트 사업이 공식 출범한 2023년 7월부터 8개 나라가 MOU를 맺었다. 이 중 기니비사우를 제외한 7개 나라에서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6월에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이 대거 참석했던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도 K-라이스벨트는 단연 관심을 끌었다. 일회성 물적 지원을 넘어서 성장 기반을 다지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상회의에서 앙골라, 짐바브웨, 말라위, 마다가스카르 등 4개 국가와 MOU를 체결했다. 2023년에 MOU를 맺었던 기니비사우, 시에라리온, 코트디부아르를 합하면 총 14개 나라가 K-라이스벨트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왜 K-라이스벨트가 필요한가?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서도 쌀은 주식이다. 그런데 쌀 공급량이 소비량보다 훨씬 적고 그마저도 효율적인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K-라이스벨트 사업이 추진되는 7개국은 자급률이 더 낮다. 아프리카 전체 쌀 자급률이 69%인 반면 7개국만 두고 보면 자급률은 43.3%에 그친다. 쌀 자급과 새마을운동 성공이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 우리의 경험처럼 아프리카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쌀 자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K-라이스벨트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K-라이스벨트는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된다. 첫째는 종자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현지 전문인력을 양성해서 수확량도 많고 품질도 우수한 벼 종자를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된 우수 종자를 농가에 품질 저하 없이 보급하는 것이 두 번째다. 이러한 생산과 보급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종자 생산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세 번째다.
종자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K-라이스벨트 사업이 추진되기 전에도 종자 개발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에는 농촌진흥청(KOPIA)이 현지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 KOPIA 센터는 카파치(KAFACI)라고 불리는 대륙별 협의체를 통해 농업기술 역량을 기르는 사업을 여럿 추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종자 개발인데 아프리카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벼 품종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미 개발된 벼 종자는 5가지로 5개 나라에서 시범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번에 생산된 2321톤의 종자가 이 과정에서 생산된 것인가?
그렇다. 이번 수확은 K-라이스벨트가 정식 추진되기 전에 시범적으로 생산한 결과다. 그럼에도 당초 목표를 훨씬 상회하는 수확을 거뒀다. 현지 연구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한 데다 농가 계약재배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 효과를 거둔 것 같다.
이렇게 개발된 종자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은 어떻게 이뤄지나?
종자 생산단지를 만들기 위해 각국과 협조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농가를 상대로 기술 지도도 하고 생산된 종자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시설 등의 부분도 지원한다. 우리 종자를 공급받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영농단계별 교육 영상도 만들었는데 마을마다 집합교육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생산과 보급 과정에서 ‘K-농업’의 힘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 아프리카의 쌀 산업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농업의 아프리카 진출도 수월해질 수 있다. 애초에 K-라이스벨트 사업 자체가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종자 생산과 보급을 위해서는 한국 농업에 대한 홍보도 필수다. 이미 보급돼 있는 종자 대신 우리 종자를 선택하게 하려면 우리 기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우리 농업, 농기자재에 대한 인식도 높아질 것이다.
농업 인프라를 조성하다 보면 농촌 환경도 개선될 것 같은데?
인프라가 공급되려면 도로가 잘 닦여야 한다. 수로도 개선될 것이다. 종자 생산을 위해서는 교육도 이뤄진다. 교육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마을에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다. 벼 한 톨에서 시작하는 사업이지만 아프리카 농촌 전반을 개선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주민들 입장에서도 식탁이 안정되면 삶의 질도 나아지겠다.
K-라이스벨트 사업은 농업 ODA 사업이지만 다양한 ODA 사업과 연계해 이뤄질 예정이다. 예를 들어 학교 급식에 안정적으로 쌀이 공급된다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현지에서 보건·교육 분야 ODA를 펼치고 있는 여러 부처와 협업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을 생각하면 쉽다. 식량이 확보되면 보건, 교육, 산업 모든 분야에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K-라이스벨트 사업이 한국 ODA의 ‘플랫폼’이 될 수 있겠다.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ODA 프로그램을 한데 모아 지역 단위 개발이 이뤄질 수 있게 된다면 K-라이스벨트 사업이 플랫폼으로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쉽지는 않은 과정일 것 같다.
하나하나가 다 도전이다. 우리는 간혹 아프리카 국가들을 ‘하나의 대륙’이라는 틀에서 한데 묶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모두 다른 환경과 제도를 갖춘 개별적인 지역이다. 다시 말하자면 7개 나라에서 벼 종자를 하나씩 생산하려면 7가지 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에서는 벼 종자 연구가 과학 관련 부처라면 어느 나라에서는 교육 관련 부처다. 법령도 모두 다르고 진행 속도도 모두 달라 일일이 파악하고 숙지해서 진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시행착오도 겪었을 것 같은데?
지금도 겪고 있다. 한번은 A국가와 협의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 상태에서 A국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막상 협정을 체결하려니 한 가지 과정이 더 남았다고 했다. 재무부 별도의 추가적인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이게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 14개월이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오래 걸리게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대사관, 한국에 있는 A국 대사관 등 외교 역량을 동원해 고위급에서 교류하고 수십 번 뛰어다닌 끝에 4개월 만에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지난 6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MOU를 체결한 앙골라, 짐바브웨, 말라위, 마다가스카르는 기존 ‘벨트’ 국가들보다 남쪽에 있는 국가들이다. K-라이스벨트가 아프리카 남부로 확대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K-라이스벨트가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해 아프리카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대표적 ODA 사업이 되길 바란다.
김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