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추진단 안세경 전문위원
11월 24일 국무조정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2024년 OECD 규제정책평가’에서 한국의 규제정책이 3개 분야 중 2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사후평가 분야, 즉 규제를 시행한 이후에도 목적을 달성하는지,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봤을 때 38개 회원국 중 한국이 가장 나았다는 것이 OECD의 평가다. 이 같은 성과에 대해 국무조정실은 다양한 규제혁신 추진체계를 통해 규제혁신 성과를 창출해온 노력이 높게 평가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양한 규제혁신 노력 중에는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규제혁신추진단도 있다. 규제혁신추진단은 여러 부처가 관련이 있고 법령이 얽혀 있는 ‘덩어리 규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2022년 설립된 조직이다. 지금까지 총 257개 인증에 대한 인증규제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공공소프트웨어사업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등 30건의 덩어리 규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5월에는 은퇴자가 인구감소지역에 더 많이 이주할 수 있도록 귀농·귀촌과 농어촌 민박, 노인복지주택 등에 대한 규제개선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규제개선 방안을 마련한 규제혁신추진단 안세경 전문위원은 “지방소멸과 베이비붐세대들의 은퇴 후 삶의 질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이라고 말했다. 16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세대를 지방으로 유인해 지역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동력을 마련하자는 이야기다. 이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오가며 30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던 안 위원의 평소 고민이 담긴 해결방안이기도 하다.
규제혁신추진단의 전문위원 상당수는 안 위원처럼 전직 공무원이다. 정책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직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굳어진 규제의 틀을 깨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이 같은 노력이 왜 필요한 것인지, 규제혁신의 의의와 추진과정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전직 공무원이 규제혁신에 나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현직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퇴직한 후 민(民)의 입장이 되어보니 현직에서 각종 제도와 법령에 싸여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불편함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공직에 있을 때에도 규제혁신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래서 규제혁신추진단이 세워지고 경험을 갖춘 전직 공무원을 채용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관심이 갔다. 그러다 초심을 떠올렸다. 국가에 봉사하고 국민의 생활을 낫게 하고 싶은 청년 공무원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귀농·귀촌을 포함해 지방 이주문제와 관련한 규제를 개선했는데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나?
공직생활의 경험과 개인적인 환경이 맞물려 관심을 가지게 됐다. 30년 넘게 중앙부처와 지자체를 오가며 공직생활을 오래했다. 그러다보니 내려갈 때마다 쇠퇴하는 지역의 모습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1600만 명이 넘는 베이비붐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은퇴 후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은퇴하는 베이비붐세대들은 예전 선배들과는 좀 다르다.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도 있는데 이들 중 꽤 많은 수가 고향 혹은 지역으로의 이주를 염두에 둔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귀농·귀촌한다는 통계도 있다. 은퇴자들의 지방 이주는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다.
그런데 사소한 규제들이 이들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귀농·귀촌을 염두에 두는 사람들, 지역에서 ‘제2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많은 은퇴자들을 지역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규제를 개선했나?
매년 귀농·귀촌인구는 50만 명에 달하는데 귀농자금 지원 절차가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귀농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귀농 및 영농관련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했다. 이걸 8시간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각종 서류는 정부 내 행정정보망을 활용하게 하고 퇴직하지 않은 은퇴 예정자도 지원을 미리 신청할 수 있게 했다.
농어촌민박에 대한 규제방안도 개선했는데?
농어촌민박에 대해 그동안 면적을 제한하고 식사도 제한적으로 제공하도록 규제해왔다. 난개발이나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관광이 트렌드가 되고 농촌경제를 활성화시킬 필요성이 생기니까 이 규제가 문제가 됐다. 소비자를 위해 바비큐장을 설치하려고 하니 면적 규제에 걸리고 주변에 마땅히 먹을 음식점이 없는 농촌마을에서 식사를 제공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농촌마다 환경과 상황이 다르고 운영목표도 다르다. 그러니 지역 실정을 잘 아는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해 주택규모와 식사제공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규제혁신추진단에서 5월에 제안하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7월에 개선안을 발표했다.
규제개선에는 부작용 우려가 따른다.
규제혁신이란 규제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본래 목표하는 바를 더 잘 달성하기 위해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어촌민박에서 삼시 세끼를 제공한다고 하면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위생 부분이다. 그래서 위생교육도 강화하게 했다.
실버타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분양형 실버타운은 투기수요를 조장하는 문제, 부실한 운영 문제 등으로 2015년부터 분양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89개 인구감소지역에 한해서 분양을 허용하고 운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임대형을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부작용 방지 대책을 병행하기로 했다.
이런 규제개선을 통해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나?
귀농·귀촌 규제개선을 통해서는 부담이 줄어드니 귀농·귀촌인구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귀촌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인구감소지역에 잘 운영되는 실버타운이 마련된다면 이 또한 인구를 늘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농어촌민박 활성화를 통해 농촌 소득이 늘어나고 전반적으로 활력이 도는 지방을 만들 수 있다.
규제개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과제를 발굴하고 선정하면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한다.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규제가 개선될 필요성이 있는지 등을 청취한다. 언론에서 미리 보도된 내용이 있다면 충분히 참고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해외 사례도 반드시 참고한다. 이렇게 개선안을 마련해 실무자의 의견을 듣는다.
이 과정에서 반발도 있을 텐데?
소통 역량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무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 규제혁신추진단에서 다루는 규제가 여러 부처 소관으로 얽혀 있는 덩어리 규제다 보니 더욱 그렇다. 실버타운 규제와 관련해서도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함께 관련된 규제를 개선하는데 각 부서의 입장이 달랐다. 그래서 함께 회의를 개최하면서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보고 제도를 개선하되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고심했다.
하나의 규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회의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뤄질 때도 많다. 다들 공직생활을 오래 했고 나름 식견을 갖춘 사람들인데도 이렇게 치열하고 진지한 토론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하나의 개선안이 마련돼 확정됐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김효정 기자
규제혁신 효과 2900건
규제 풀어 148조 원 경제효과
규제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환경규제, 산업단지 입지규제, 토지이용규제 등 핵심규제를 개선해왔다. 2022년 5월부터 이렇게 개선된 규제는 2900여 건에 달하는데 이를 통한 투자창출·매출 확대 등의 경제적 효과는 14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남형기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11월 24일 ‘202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제정책평가’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을 갖고 “정부는 ‘규제혁신이 곧 국가발전’이라고 생각하고 규제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30년 만에 산업단지 입지규제를 해소해 광양산업단지에 4조 4000억 원 규모의 첨단산업 입주를 허용했고 불필요한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 작성의무를 폐지해 연간 3300만 명의 여행자 불편을 해소했다. 41년 만에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허용하고 비수도권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혁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규제개선도 지속하고 있다.
민간전문가가 참여한 규제심판제도를 통해서는 대형마트 영업규제 상생방안을 마련하는 등 18건의 규제를 개선했다. 2023년 11월에는 민생규제 혁신방안 167건이 발표됐다.
남 차장은 “앞으로 정부는 국제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규제정책·제도를 더욱 발전시켜나가고 이러한 제도를 바탕으로 국민이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