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풀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8월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정책 현안들의 향후 지향점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질문 내용·사전 각본 없는 자유토론 형식의 기자회견을 진행함으로써 특유의 소통 행보의 모습을 이어갔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 정책이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이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정책을 살피고 당면한 안보와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하며, 일자리·주거·안전·의료 같은 기초적인 국민 생활 분야에서 책임을 높여 속도감 있게 실천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을 연신 언급하며 진정한 국민주권시대가 시작됐다고 지난 100일을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공식 출범은 100일 전이었지만 사실 새 정부는 지난겨울 촛불광장에서 시작됐다”며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광장을 가득 채웠지만 그것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국민의 결의로 모였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국민의 희망이 문재인정부의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100일 동안 국가 운영의 물길을 바꾸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과제를 실천해오며 취임사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고 통합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고 언급했다.
“진정한 국민주권시대 시작”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지난 시간에 대해 속단하거나 과장된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제 물길을 돌렸을 뿐”이라며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과제와 어려움을 해결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 향후 5년의 국정운영 키워드로 ‘정의’를 내밀었다. 문 대통령은 “모든 특권과 반칙,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중단 없이 나아갈 것”이라며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했던 권력기관이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만전을 기해온 국정개혁 과제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보훈 사업 확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이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치매 국가책임제, 어르신들 기초연금 인상, 아이들의 양육을 돕기 위한 아동수당 도입은 국민의 건강과 미래를 위한 국가의 의무”라며 “사람답게 살 권리의 상징인 최저임금 인상, 미래세대 주거복지 실현을 위한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 모두 국민의 기본권을 위한 정책”이라고 힘 줘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의 끝맺음에서도 국민의 가치에 무게를 실었다. 문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국정운영의 가장 큰 힘”이라며 “다시 한 번 국민께 감사드리며 국민의 마음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는 문 대통령의 모든 정책 근간에는 국민이 있음을 다시금 일깨우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에는 외교안보·정치·경제·사회 등의 영역을 망라한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한반도 안보위기와 복지정책, 재원 마련 방안에 주안점을 둔 질문이 쏟아졌지만, 문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견해를 밝혔다. 특히 현 복지정책을 위한 추가 증세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시켰다.
▶ 기자회견 질의응답 중 파안대소하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미리 준비되지 않은 파격적인 ‘소통 기자회견’으로 기록됐다. ⓒ청와대
문 대통령은 “앞으로 소득재분배 균형 등을 위해 추가 증세 필요성에 공론이 모인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으나 현재 정부가 발표한 복지정책은 현 증세 방안만으로도 충분히 재원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나하나 꼼꼼하게 재원 대책을 검토해 설계된 정책들”이라며 “곧 발표될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얼마나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늘어난 지출에 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방침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안보 상황에 대해 기존의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우리 동의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 군사행동을 정할 수 없다”며 “전쟁은 없다는 말을 국민들은 안심하고 믿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 위기설을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며 자제를 당부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이 레드라인(정책 전환의 기준점)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며 “또다시 도발할 경우 북한은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에 직면할 것이다. 더 이상 위험한 도발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치와 개헌 등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을 강하게 고수했다.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들에 대한 실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 정부와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국정철학을 함께하는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하려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이 시대의 과제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국민 통합, 내 편 네 편 편가르기를 종식하는 통합의 정치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부터 함께해왔던 많은 동료를 발탁하는 것은 소수에 그치고, 과거 정부에 중용됐거나 경선 과정에서 다른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라도 과거를 묻지 않고 발탁했다”며 “앞으로도 지역 탕평과 국민 통합의 인사 기조를 지켜나가겠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다”며 “국회 개헌 특위에서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국민 주권적 개헌 방안을 마련하면 대통령도 그것을 받아들여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말했다. 다만 개헌 특위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정부가 개헌 특위 논의 사항을 이어받아 자체적으로 개헌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진국 탈원전은 수년 내 원전을 멈추겠다는 계획이나 제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은 급격하지 않다”며 “탈원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60년 동안 원전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대체 에너지를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아무런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무각본 형태로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25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앉아 자유롭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기자들의 돌발질문에도 소신껏 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00일간 지지율, 80%대 전후 유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리서치가 8월 11~12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33.1%가 ‘매우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체로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45.5%까지 더하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은 78.6%다.
대부분 연령대에서 8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인 가운데 19~29세가 90.2%로 가장 높았고, 60세 이상은 62.1%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호남과 대구·경북이 각각 91.0%, 67.7%의 지지율로 최상위, 최하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이 8월 14~15일 전국 성인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84.1%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리얼미터가 8월 14일과 16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71.2%로 나타났다. 취임 100일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역대 정부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앞서 한국갤럽이 5월 31일~6월 1일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국정수행 지지율을 집계했을 당시 84%로 조사된 점에 비춰볼 때, 출범 초기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자회견 질의응답 요약
“적폐청산 노력 임기 내내 계속될 것”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에 이어 한 시간 가까이 청와대 출입 내외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손을 든 기자들 가운에 한 명을 지목해 질문을 받고, 문 대통령이 즉석에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외교안보·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 현안과 관련해 심도 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취재진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연합
광복절 경축사에서 모든 걸 걸고 전쟁을 막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 북미 간 긴장상태로 국민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어떠한지, 미국과 어떤 공조를 하고 있는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온 국민이 합심해 이만큼 나라를 일으켜 세웠는데 전쟁으로 그 모든 것을 다시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은 기필코 막을 것이다. 북한 도발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가하더라도 결국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합의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번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수출의 3분의 1을 차단하는 유례없는 강력한 경제 제재를 결의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그 제재에 동참하고 있으며 그것은 달리 말하면 전쟁을 막기 위한 합의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우리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서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그 모든 옵션에 대해 사전에 한국과 충분히 협의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래서 ‘전쟁은 없다’는 말을 우리 국민들이 안심하고 믿길 바란다.”
우리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대화’와 ‘포용’이라는 투 트랙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대북정책에서 레드라인이 정책 전환 기준선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이란 어떤 것인가.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 생각한다. 북한이 점점 레드라인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 이 단계에서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아야 한다. 도발을 계속한다면 북한은 더욱 강도 높은 제재 조치에 직면하고 결국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위험한 도발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 1번이 적폐청산이다. 부처별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진행 중일 걸로 보인다. 우선순위 적폐청산이 무엇인지, 그 기한은 어떻게 설정했는가.
“적폐청산은 우리 사회를 불공정하게 불평등하게 만들었던 많은 반칙과 특권을 일소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 노력은 1~2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정부 임기 내내 계속될 것이다. 이번 정부 5년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과제도 아닐 것이며 앞으로 여러 정권을 통해 그것이 제도화되고 관행이 돼, 문화로까지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득 주도 성장론, 특히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많이 실행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세제개편안 이외에 추가적인 세제 개편, 즉 증세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구상이나 대책은 어떠한가.
“정부는 이미 초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침을 밝혔다. 사회 불평등 해소나 소득 재분배 균형을 위한 추가적인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의 공론이 모아진다면 그리고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부도 그것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발표한 여러 가지 복지정책들은 지금까지의 증세 방안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하리라 본다. 실제로 재원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증세 방침을 밝힌 것이다. 증세를 통한 세수 확대만이 유일한 재원 대책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재정 유출에 대해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서 세출을 절감하는 것이다.”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지만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닌가. 문재인정부가 생각하는 부동산 대책 로드맵과 부동산 보유세 인상 검토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서민들이 높은 주택 임대료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도 부동산 가격의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역대 가장 강력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부동산 가격이 또다시 오를 기미가 보인다면 주머니 속에 넣어둔 더욱 강력한 대책을 꺼낼 것이다. 보유세는 추가적인 복지 재원의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검토할 수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아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