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옛날 “나는 새도 힘들어 쉬어간다”는 뜻의 새재를 단풍에 취한 사람들이 가뿐하게 넘는다. 물론 이즈음에는 계곡에도 탐방로에도 사람들이 붐벼 걷는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새재 넘어 소조령길 1코스인 새재길은 약간의 불편함을 즐길 수 있으면 대중교통이 편하다. 새재길은 경북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옛길박물관에서 시작해 제1·2·3관문을 오른 뒤 충북도청이 관리하는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충북 괴산 원풍리 고사리마을에서 끝난다. 대중교통으로 다니면 경북 문경에서 걷기 시작한 길을 충북 괴산에서 마치고, 충주 수안보에서 온천을 즐긴 뒤에 귀가하는 당일 코스도 가능하다.
영남대로 세 길 중 가장 짧은 길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서울과 부산을 잇던 길이다. 여기에는 세가지 길이 있다. 각각 죽령, 조령, 추풍령 고개를 넘어야 하는 길이다. 이 중에서 왕래가 가장 잦은 곳은 문경과 충주를 잇는 조령(새재)이었다.
조령은 부산에서 한양까지 가는 가장 짧은 코스로 14일이 걸렸다. 죽령은 풍기와 단양을 잇는 고개로 15일은 꼬박 걸어야 한양에 당도할 수 있고, 추풍령은 김천과 영동을 잇는 고개다. 죽령보다 하루 더 걸려 16일이다. 이 이야기는 새재길의 시작인 옛길박물관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옛길박물관은 길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영남대로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고, 그 옛날 조선 선비들의 길에 대한 철학과 문학을 엿볼 수 있다.
제1관문(주흘관) 가는 길에는 ‘문경전통찻사발축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흰 무명을 입은 도공이 찻사발을 만드는 모습이다.
도공 뒤편으로 새재길이 햇빛에 반사되어 희게 빛난다. 주흘관 뒤로 주흘산, 조령산 자락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흰 길이 홍예문 뒤편으로 사라진다.
산은 깊고 길은 산으로 이어졌다. 숙종 34년(1708)에 쌓았다는 주흘관 홍예문을 지난다. 드라마 <태조 왕건> 세트장 입구에는 20여 기의 선정비가 줄지어 서 있다. 경상도 관찰사, 문경 현감 등 다양한 직책이 새겨진 선정비다.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이 갈려 나갈 때 백성들이 돈을 모아 선정비를 세워줬다.
문경새재는 폭이 5미터는 될 듯한 넓은 흙길이다. 호젓한 옛길 느낌보다는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이 매력이다. 특히 조잘조잘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계곡 주변 단풍이 일품이다. 단풍이 절정에 달할 때 계곡 너른 바위에 앉아 있으면 알록달록한 거대한 솜사탕 속에 쏙 빠져 있는 것처럼 달콤하고 황홀하다.
작은 인공 연못들을 지나고 돌담이 보인다. 조령원터다. 조선시대에 공문을 지닌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한 곳이다. 터를 봐서는 여러 개의 건물이 있었을 것 같다. 현재는 나무판자로 지은 집 한 채가 쓰러질 듯 서 있다. 돌담 입구 근처에 깨진 항아리가 눈에 띈다. 항아리 밑동에는 우산이끼가 시들어 있고 그 사이에 솔방울이 하나 떨어져 계절을 알려준다.
전설과 함께 전해 오는 아름다운 풍광
조령원터를 나와서 제2관문 방향으로 걷자 몸통에 ‘V’자 모양의 상처가 난 소나무가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말기(1941~1945)에 일본이 연합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송진을 채취한 자국이다. 소나무를 살펴보고 조금 오르자 교귀정이다. 교귀정은 떠나가는 관찰사와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장소이다. 항일의병전쟁 때 불에 타 방치됐던 것을 1999년에 다시 세웠다. 교귀정 앞에 휘어진 소나무가 멋스럽다. 교귀정에서 제2관문(조곡관)까지 1킬로미터이다.
새재 넘어 소조령길은 영남대로 960리 중 문경새재~괴산~충주로 이어지는 90리 길이다. 1코스 새재길 9.1킬로미터, 2코스 소조령길 8.8킬로미터, 3코스 마당바우길 8.6킬로미터, 4코스 달래내길 9.6킬로미터이다. 2코스 소조령길은 고사리마을에서 시작해 작은 새재 소조령(小鳥嶺: 330미터)을 넘어 옛 안부역이 있던 대안보마을을 지나 충주 수안보온천관광안내소가 종점이다.
마당바우길은 수안보온천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안에 있는 마당바위를 지나 수회리를 거쳐 사과탑에서 끝난다.
달래내길은 다시 사과탑에서 시작해 대림산성 흔적을 따라 걷다가 명장 임경업을 기리기 위해 숙종(1697년) 때 세운 충렬사에서 마무리된다. 코스마다 약 3~4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코스가 아름답다. 그러나 1코스를 뺀 나머지 코스는 대부분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교귀정 앞 계곡은 풍광이 아름다워 용추폭포(팔왕폭포)라 불린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신 ‘팔왕’과 선녀가 어울려 놀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그 위의 꾸구리바위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 ‘꾸구리(토종 민물고기)’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꾸구리가 물밑에서 움직이면 바위가 들썩거릴 만큼 힘도 셌단다. 그런데 이 꾸구리는 사람처럼 별나게 젊은 새댁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면 희롱을 일삼았단다.
꾸구리에 관한 뒷이야기는 없지만 억측은 가능하다. 희롱당한 젊은 새댁의 남편에게 잡혀 펄펄 끓는 솥에 갇혀 추어탕이 됐을 것이다. 송아지만한 크기였으니 동네잔치를 벌이고도 남았겠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이런저런 전설들이 남아 있어 재미난 동화를 들려준다.
조곡폭포를 지나자 제2관문(조곡관)이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직후인 선조 27년(1594)에 충주사람 신충원이 계곡이 좁고 산세가 험한 응암에 쌓은 성이었다. 불에 타 홍예문만 남은 것을 1978년에 복원했다. 조곡관을 지나 조곡약수에서 물을 마신다. 문경새재아리랑비를 지나 이진터를 지난다.
고개 곳곳에는 전쟁의 역사와 가을이 무르익다
이진터에서 제3관문(조령관)까지 2.1킬로미터이다. 조령관은 숙종 34년(1708년)에 지었으나 1896년 항일의병전쟁 때 불타 없어지고 1967년에 복원했다. 새도 쉬어간다는 새재마루를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가뿐하게 오른다. 그런데 새재마루에 올라선 뒤 상처투성이 길을 걸어왔음을 깨닫는다. 솜사탕 같은 가을 단풍에 취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역사책을 넘기고 있었다.
길은 역사였고, 나는 역사를 걸었다.
조령관 홍예문을 지나 약 50미터만 내려가면 ‘백두대간 조령 표지석’이 있다. 여기부터가 충북 괴산이다. 내리막길을 따라 걷자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곳에 고사리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조령산 자연휴양림의 소나무 사이를 빠져나가자 고사리마을이다. 수안보온천으로 가기 전에 원풍리마애불좌상을 보고 가려고 택시기사와 요금 흥정을 한다. 택시기사 뒤로 관광지 입구 좌대에 나와 있는 꾸지뽕나무 빨간 열매가 가을 햇살에 더욱 농익는다. 모든 것이 꼬실꼬실 마르는 가을이다. 영남대로 한 페이지에 단풍잎을 꽂아둔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