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들이 오늘 걷는 그 길을 나는 열여덟 살에 가마 타고 시집왔어.”
월선민박의 박월선 아주머니가 밥상에 올린 이면수(임연수어)구이 흰 살을 발라주며 소광천에서 소광2리로 시집온 사연을 들려준다. 거실 벽 액자에는 결혼한 자녀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밥상에는 아주머니가 산에서 따와 담근 두릅장아찌, 산당귀장아찌, 방풍나물장아찌 무침이 있고, 시장에서 오징어를 사다 직접 담근 오징어젓갈 무침, 텃밭에서 따온 고추·오이·양파로 만든 반찬이 한상 가득이다. 산당귀장아찌를 한 젓가락 입에 물자 향기가 온몸에 퍼진다. 당귀 향기를 칭찬했더니 아주머니가 한마디 덧붙인다.
“옛날에 어느 노인이 딸네 집에 가서 산당귀를 먹고 난 뒤에 물을 마시면서 물도 달다고 했어. 당귀를 먹고 난 뒤에 물을 마시면 설탕보다 더 달어.” 진한 향기 뒤에 단맛이 넘쳐난다.
당귀를 처음 먹는 것도 아닌데, 그 향기와 단맛에 반해 처음 먹는 것처럼 아주머니에게 호들갑을 떤다. 오랜만에 아침밥상을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9시, 울진 시내에서 8시 5분에 출발한 군내버스가 금강송펜션에 도착한다. 이귀남 숲해설사가 버스에서 내린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예약을 해야만 탐방이 가능하다.
금강송펜션을 나와서 소광2리 마을회관 앞을 지난다. 시멘트길 아래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울물 소리가 맑다. 여울물 주변으로 분홍 노루오줌이 하늘거린다. 계곡 주변으로 몇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광리에는 25가구가 살고 있는데 집 주변 텃밭이 도라지, 부추, 고추, 들깨, 토마토, 감자, 고구마 등으로 풍성하다. 길옆으로 빈집도 두 가구 보인다. 울진 시내에 산다는 집주인은 탐방객들이 구경할 수 있게 항아리, 지게, 꿀통 등 옛 생활용품들을 빈집 앞에 내놓았다. 소광리의 작은 박물관인 셈이다.
바지게꾼들이 넘나들던 고단한 삶의 길
마을 길을 뒤로 하고 숲으로 들어선다. 개다래나무를 지나서 개망초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자 저진터재다. 저진은 ‘땅이 젖어 있다’는 의미다. 동해에서 생긴 비구름이 낙동정맥을 넘지 못하고 이 곳에 머물며 여름에는 소나기를 자주 내리고 겨울에는 1미터가 넘는 많은 눈을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늘 젖어 있어 저진터재다.
저진터재는 울진에서 봉화로 연결되는 옛날 교통로로 36번 국도가 포장되기 전에 행상단 선질꾼(바지게꾼)이 다녔다는 십이령 중 하나이다. 십이령 길은 울진장, 죽변장, 흥부장(현재는 부구장으로 불림)에서 각각 출발하여 다른 재들을 넘어 북면 두천리에서 만난다. 북면 두천리에서 봉화까지는 바릿재~새재~너삼밭재~저진터재~새넓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재~노룻재를 넘어야 한다. 몹시 험난한 160리 길이다.
선질꾼은 쉴 때도 지게를 지고 휴식을 취한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다. 울진에서 구입한 소금, 고포 미역, 각종 어물 등을 바지게에 지고 3박 4일을 걸어서 봉화에 도착한다. 십이령을 넘는 동안 지게를 내려놓지 않고 등에 진 채로 바위에 잠시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봉화까지 가서 어물을 팔고 곡류, 대마, 담배 등을 다시 지고 울진으로 향한다.
고단한 행상단의 삶이 깃들어 있는 십이령길은 약 50~60년간 마을 사람들이 간혹 다니는 묵은 길이 되었다. 그런 이 길을 산림청이 우리나라 1호 숲길로 조성하여 개방한 지 5년이다. 현재 1구간(13.5킬로미터)과 3구간(16.3킬로미터)을 예약 탐방하고 있다.
1구간은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이며, 천연기념물인 산양 서식지가 있다. 또한 이 구간에는 선질꾼이 다녔던 십이령 중 4개 령인 바릿재·샛재·너삼밭재·저진터재가 포함돼 있다.
자연과 옛 행상단의 삶과 애환이 서린 길이다. 2구간은 길 끝에 해당하고 3구간은 길 초입에 해당한다. 이 겹치는 구간에는 활엽수림과 단풍나무가 울창해서 10월 말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저진터재를 지나자 하늘말나리가 짙은 주황꽃을 피운다. 주황꽃잎 안에 찍혀 있는 검은 점이 아이 얼굴에 난 주근깨처럼 사랑스럽다. 우거진 잡목 사이로 동자꽃이 해맑게 피었다. 숲해설사가 꽃 이름이 왜 동자꽃인지 유래를 들려준다. 정채봉 시인이 쓴 <오세암>과 비슷한 이야기다.
금강송펜션~못생긴소나무 왕복 7시간 소요
“어느 작은 암자에 노스님과 동자승이 살았어요. 노스님이 겨울채비를 하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갔는데, 잠깐 다녀올 생각으로 동자승만 남겨두고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여러 날에 걸쳐서 눈이 엄청 내렸어요. 노스님은 동자승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요. 드디어 눈이 그치고 허겁지겁 산사로 가는데, 쌓인 눈이 걸음을 더디게 해요. 노스님이 산사에 도착했을 때는 기다림에 지친 동자승이 배고픔과 추위에 얼어 죽었어요. 노스님이 동자승을 땅에 묻자 그 자리에 동자승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꽃의 유래가 처연하다. 기다림에 지친 동자승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 꽃 빛깔이 유난히 진하다. 마치 진초록 제단에 꽃 한 송이 올려놓은 듯하다.
동자꽃을 지나 부드러운 길들이 이어진다. 이끼 낀 디딜방아가 눈에 띈다. 화전민터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은 뒤에 ‘화전정리법’이 공포되고 화전민들은 숲을 떠난다. 화전민터를 지나 삼을 많이 재배했다고 하여 너삼밭재라고 불리는 재를 넘어간다.
여기부터는 임도와 숲길을 번갈아가며 금강송관리사(금강소나무 군락지)까지 이어진다. 약 4.8킬로미터로 비슷한 길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다. 솔바람에 마음을 맡기고 걷는다. 금강송관리사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도시락을 올려놓는다. 물고기들이 다가와서 발을 툭툭 건드린다. 발바닥 열기를 식히고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오른다.
금강송은 예로부터 황장목·춘양목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황장목은 몸통 속이 누런 소나무를 말한다. 심재에 송진이 배어있어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잘 썩지 않고 단단하기 때문에 궁궐을 짓는 데 쓰였다. 춘양목은 울진·봉화·삼척 등에서 벌채한 질좋은 소나무를 춘양역에서 다른 곳으로 실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좀 더 오르면 못생긴소나무다. 잘생긴소나무는 궁궐로 뽑혀가고 못생긴소나무들이 이 산을 지켜온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돌아보는 데 약 1시간이 소요된다. 3구간은 못생긴소나무에서 출발지로 돌아간다. 원점 회귀 코스다. 10분만 더 오르면 미인송이 있는데 미인송이 코스에 들어 있지 않아 조금 섭섭하다. 금강송펜션까지 왕복 7시간이 소요된다. 갈 길이 바쁘다. 먼 길을 일부러 찾아온 탐방객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선질꾼처럼 바쁘게 걸으라 한다. 그러나 나는 새색시처럼 설레며 걷고 싶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8.04